'말모이', 우리말 사랑의 '독립학개론' [유진모 칼럼]

유진모 칼럼니스트l승인2019.01.05l수정2019.01.14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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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말모이>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오는 9일 개봉될 영화 ‘말모이’(엄유나 감독)는 장르, 흥행 성적, 평가 내용 등을 모두 떠나 한국 영화사에서 특별히 주목해야 하고, 한국 영화인들이 레퍼런스로 삼아야 할 값어치를 지녔다. 그 이유는 국어학이나 철학 등에서나 다룰 법한 내용을 독립정신에 연결해 주체의식을 고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는 1940년대 일제강점기 말. 일제는 조선의 민족정신을 멸절시키기 위해 창씨개명과 조선말 금지 정책을 폭력적으로 실시한다. 하지만 지식인 정환은 지하에 조선어학회를 설립해 8도의 사투리를 모으고 그중에서 표준말을 정해 우리말 사전을 만듦으로써 독립의 디딤돌이 되고자 애쓰고 있다.

이광수 등 일부 작가들이 앞장서 일제의 정책에 응원가를 보태는 굴종의 사조 속에 학회의 당파성에 힘을 보태는 이는 의외로 무식한 전과자 판수. ‘도시락이든 벤또든 배만 부르면 된다’던 그는 학회원들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분기탱천에 공명해 자발없는 둥싯둥싯한 아둔패기의 삶에서 환골탈태한다.

‘돈도 아닌 말을 대체 왜 모으냐’고 했던 판수는 자본주의로 제국주의를 펼쳐나가려던 일제가 바라던 전형적인 노예근성자거나 얼치기였다. 그러나 난생처음 글을 배우고 호기심에 소설을 잡더니 새벽녘에 책장의 끝을 보는 확장으로 눈물을 흘린다. 그건 말의 처녀림과 언어의 숫눈길을 처음 밟아본 감격이다.

▲ 영화 <말모이> 스틸 이미지

민족은 의사소통이 가능한 언어를 함께 사용하는 한 문화권과 생활권의 사람들을 뜻한다. 여기서 언어는 곧 접근성의 공간성이고, 의사소통의 한 울타리 공동체의식과 직결된다. 소크라테스는 저작을 안 남겼을 정도로 글보다 말을 중요하게 여겼지만 하이데거에 오면 언어와 말의 ‘틀’이 규정화된다.

이 영화는 언어(문자화)의 실존론적-존재론적 기초를 말로 보는(소크라테스) 한편 언어를 발성화를 지시하는 용어적 표현으로, 말을 발성화된 언어의 실존론적 본질로 준거하며 소쉬르와 하이데거에 접근한다. 영악한 일제가 먼저 구조주의에 근거해 조선의 민족성을 말살하기 위해 조선어의 구조를 깨뜨린다.

롤랑 바르트의 기호학은 기호의 의미작용을 통한 외연의미와 함축의미를 구분함으로써 현대 자본주의의 계급을 정당화하는 교묘한 신화론을 경고한다. 영화는 천황을 신격화한 일본 제국주의를 그것과 동일하게 그려낸다. 학회원들의 목표는 8도의 사투리를 그러모아 표준어를 정해 사전을 만들자는 것.

그건 언어의 본질구성틀을 규정함으로써 존재구성틀을 정립하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정환은 소쉬르의 공시성과 통시성을 정확하게 인식한다. 일제강점기가 끝난다는 강렬한 믿음 아래 곧 도래할 새 세상을 위해 당시의 공시성을 근거로 정태적으로 우리말의 기준을 세워 민족혼을 바로 세우자는 것.

▲ 영화 <말모이> 스틸 이미지

말과 언어는 시대에 따라 변한다. 기표가 변하면 기의 역시 변한다. 정환은 정확하게 그걸 파악하고서 중세와 근대의 군주제를 넘어 민주주의의 새 시대를 맞아야 하는 우리 민족이 그 때 사용해야 할 통시성적 언어까지 염두에 둔 것이다. 학회원들의 사투는 역사의 기록이고, 역사를 지킴이다.

사투리와 한 말에도 기표와 기의가 다양하다는 게 재미있다. 한 사물에 대한 전국의 기표는 제각각이다. 그럼에도 의미가 같다는 건 한민족이란 기의의 통일이다. 또한 ‘노랑’이란 한 기의에 ‘노랗다’ ‘노르스름하다’ ‘노르께하다’ 등의 다양한 기표와 기의의 서술어가 존재한다는 선진성도 부각한다.

‘말모이’는 영화적으로만 보자면 구태적일 수 있다. 그런데 세상만사는 여차하기 마련이다. 영화는 감독에겐 예술이지만 관객에겐 다양한 목적이고 수단이다. 자본이 결부된 대중문화에서까지 다양성의 당위성의 목소리가 높은 이유는 문화와 예술의 경계선이자 그 이음새이기 때문이다. 징검다리 겸 중개자.

그래서 이 영화가 눈길을 끄는 것이다. 워낙 주연이 많긴 하지만 투톱이라고 할 수 있는 유해진과 윤계상에겐 특히 중요하다. 그동안 유해진은 주로 코미디로 돋보였고, 상업적으로 취약했던 윤계상은 ‘범죄도시’로 징크스를 깼다. 유해진은 코미디를 싹 뺀 건 아니지만 관객의 감동을 정조준 한다는 게 다르다.

▲ 영화 <말모이> 스틸 이미지

윤계상은 ‘범죄도시’에서 매우 강렬한 악역 장첸으로 흥행과 손잡았지만 이번엔 정반대 편의 스마트한 지식인 역이다. 배우에게 특정 장르나 캐릭터 하나만큼은 확실하다는 신뢰감도 중요하지만 그 어떤 장르와 캐릭터라도 작가의 의도에 완벽하게 맞출 줄 아는 게 진짜 연기파 배우라 불리는 고수다.

그래서 유해진과 윤계상의 이번 도전은 의미가 크고 의의가 장대하다. 작품과 배역에 대한 궁구한 연구가 돋보이는 두 사람의 캐릭터의 푸진 향연은 윤계상이 쑥스럽지 않을 만큼 ‘대결’이라 봐도 무방하다. 특히 판수의 아들과 딸을 연기한 조현도와 박예나의 양념 역할은 고추장처럼 아리게 깊다.

이 영화는 단 한 번도 ‘대한독립만세’를 외치지 않는다. 태극기를 흔들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왜 우리 순국선열들이 전 재산을 내놓고, 가족도 저버린 채, 목숨을 초개처럼 내던져가며 독립운동을 했는지 정치한 영화적 장치와 벼린 날 같은 우의로써 웅변하는 공교함을 보여준다.

올해로 훈민정음 창제 576년을 맞는다. 글로벌 시대에 영어는 물론 일어도 배워야겠지만 생활과 문화에서만큼은 유네스코가 세계 2900여 종의 언어 가운데 최고로 평가한 한글에 대한 자부심을 지키자는 호소가 러닝타임 내내 울려 퍼지는 듯해서 감동이 증폭되고 민족정신이 새삼 우러나오게 한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유진모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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