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8군 동원 신군부 제압하려 했다 [김문 작가 칼럼]

김문 작가l승인2019.01.10l수정2019.01.10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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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김문 작가가 쓰는 격동의 현대사를 주도한 군장성들의 이야기]

▲ 사진=채널A 화면 캡처

미 8군 동원 신군부 제압하려 했다.

이 장군은 12.12를 회상하면서 위컴 주한미사령관이 미8군을 동원해 신군부를 제압하려 했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12월15일 오전 미 군사고문단장이 이 장군을 급히 찾았다. 이 장군과는 평소 잘 아는 사이였다. 장소는 미 8군 영내에 있는 고문단장실이었다. 이 장군이 약속장소에 도착해보니 위컴 사령관이 혼자 앉아 있었다. 그는 주위의 눈을 피하느라 고문단장 이름을 사용했노라고 귀띔했다. 위컴 사령관은 추상같은 말을 했다.

“내 말의 초점은 반란이냐, 혁명이냐를 규정하는 것입니다. 반란이면 응당히 제압해야만 합니다. 본국에서도 성격규정을 빨리 해달라는 주문이 왔습니다. 국방부 장성 중에서 이 장군이 가장 객관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소. 다시 묻겠습니다. 혁명이오, 반란이오?”

위컴은 똑같은 질문을 세 번씩이나 했다. 이 장군은 ‘노’라고 대답했다. 이 장군은 또 “12.12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자 위컴은 “내가 생각하기엔 당신도 틀렸소. 분명히 반란이오.”라고 선을 그었다. 이 날은 그렇게 헤어졌다.

이튿날 또 연락이 왔다. 같은 장소에서 위컴을 다시 만났다. 어제 했던 질문을 여러번 반복했다. 이 장군도 역시 “12.12를 인정해야만 평화스럽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위컴은 원리원칙에 투철한 전형적인 직업군인이었다. 미 육사 출신인 그는 월남전에서 명성을 날렸고 미국의 최정예부대인 101공정사단장과 합참본부장 등을 거쳐 1979년 7월 한국에 부임했다. 전두환 소장이 12.12 직후 위컴이 어떤 행동으로 나오는지 가장 궁금하게 여겼던 것도 바로 이런 점 때문이었다.

이 장군이 위컴을 만났다는 사실이 보안사 요원들에게 체크됐고 이는 전두환 소장에게까지 즉각 보고됐다. 이 장군이 위컴을 만나 사태제압을 권유했다는 거짓내용도 첨부됐다. 때문에 장군은 즉시 예편조치됐다.

2년 후 어느 날 정래혁 국회의장이 급히 불렀다. 가보니 미 8군 부사령관이 있었다. 정 의장은 이 장군에게 “훈장을 받게 생겼소.”라고 웃으며 말했다. 사연인 즉 위컴이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미 정부에 훈장 서훈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공로는 12.12사건 직후 위컴한테 해주었던 조언이 한반도 평화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는 것이다. 이는 이 장군이 아니었다면 위컴은 반란군을 제압했을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역사의 흐름에 있어서 그 변수란 많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 사진=채널A 화면 캡처

□ 12.12 사건 요약

1979년 10월26일 대통령 박정희가 암살된 뒤 합동수사본부장을 맡고 있던 보안사령관 전두환과 육군참모총장이자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간에는 사건수사와 군인사문제를 놓고 갈등이 생겼다.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세력은 군부 내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하여 정승화가 김재규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10.26사건 수사에 소극적이고 비협조적임을 내세워 정승화를 강제 연행하기로 계획했다. 이를 위해 11월 중순 국방부 군수차관보 유학성, 1군단장 황영시, 수도군단장 차규헌, 9사단장 노태우 등과 함께 모의한 후 12월 12일을 거사일로 결정하고 20사단장 박준병, 1공수여단장 박희도, 3공수여단장 최세창, 5공수여단장 장기오 등과 사전 접촉을 했다. 그리고 12월 초순 전두환은 보안사 대공처장 이학봉과 보안사 인사처장 허삼수, 육군본부 범죄수사단장 우경윤에게 정승화 연행계획을 수립하도록 지시했고 그 계획에 따라 12일 저녁 허삼수, 우경윤 등 보안사 수사관과 수도경비사령부 33헌병대 병력 50명은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에 난입하여 경비원들에게 총격을 가하여 제압한 후 정승화를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강제 연행하였다.

총장의 연행과정에서 저항할지도 모르는 특전사령관 정병주, 수경사령관 장태완, 육군본부 헌병감 김진기는 보안사 비서실장 허화평에게 유인되어 연희동 요정의 연회에 초대되었다. 연회 도중 총장의 연행사실이 전해지자 정병주, 장태완 등의 육군장성들이 대응태세를 갖추려 하였으나, 이미 전두환이 박희도와 장기오에게 지시하여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점령하게 함으로써 육군지휘부를 무력화시킨 후였다.

이 사건의 주도세력인 전두환과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재임한 1993년 초까지 12.12는 집권세력에 의하여 정당화되었으나, 그후 김영삼정부는 하극상에 의한 쿠데타적 사건이라고 규정했다.(두산백과)

▲ 김문작가

[김문 작가]
전 서울신문  문화부장, 편집국 부국장
현) 제주일보 논설위원

김문 작가  gamsam10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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