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왕이 될 아이>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영화 ‘왕이 될 아이’(조 코니쉬 감독)는 브리튼족 켈트인의 전설인 엑스칼리버와 아서 왕의 서사시를 모티프로 한다는 점에서 ‘킹 아서: 제왕의 검’(가이 리치 감독, 2017)보다 스케일은 좀 작지만 합목적성에 의거하면 명쾌하다. 대놓고 아이들의 환상의 세계를 겨냥한 재미와 교훈을 갖춘 성장 동화다.

먼 옛날 아서 왕의 이복누이 모가나(레베카 퍼거슨)가 아서의 엑스칼리버를 탈취하지 못하고 지하세계에 봉인된다. 우더 왕이 적통 후계자를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후 현재. 중학생 알렉스(루이스 서키스)는 같은 ‘왕따’라는 이유로 베더스(딘 차우무)를 구해준 후 랜스와 케이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그러던 어느 날 공사장에서 우연히 엑스칼리버를 뽑은 후 아서의 마법사 멀린을 만나게 된다. 멀린은 4일 후 개기일식이 오면 모가나가 지하의 군대를 이끌고 영국을 멸망시킬 것이라며 그 전에 군대를 만들어 선제공격을 할 것을 촉구하고, 알렉스는 베더스, 랜스, 케이에게 기사 작위를 수여한다.

알렉스는 오래전에 아버지가 떠난 후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다. 그제야 그는 아버지가 남긴 ‘원탁의 기사’ 책과 그 안에 아버지가 쓴 ‘넌 과거의 그리고 미래의 왕’이란 글귀를 이해하게 된다.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만날 당하던 ‘지질이’가 아니라 ‘왕이 될 운명’을 타고난 아이였던 것이다.

▲ 영화 <왕이 될 아이> 스틸 이미지

그는 친구들과 함께 아버지가 머물렀던 곳으로 추정되는 한 섬마을로 향하고 그곳에서 고모를 만나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모가나의 지하세계로 향하는 통로를 찾아내 마성이 극에 달한 그녀와 마주하는데. 한마디로 목적이 확실해서 상큼하고 깔끔한 방학용 판타지 액션이다.

주제는 ‘과연 산타 할아버지는 존재할까’다. 1세기 초 수도사 성 니콜라스에서 시작돼 동화와 상술이 신화적 현존재로 만든 산타는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동화를 믿으면 산타는 그 판타지 그대로 다가오지만 척박한 현실에 대입해 코웃음을 치면 산타도 꿈도 그 사람의 인생에서 사라지기 마련이다.

이 영화는 대놓고 그런 신화와 꿈에 대한 명증성과 상징성을 논한다. 산타의 원조인 성 니콜라스는 오래전 세상을 떠났지만 그 정신을 이어받은 ‘아버지 산타’부터 ‘복지가 산타’까지 수두룩하니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하다는 말이 나온다. 믿음과 불신, 영웅과 루저, 사랑과 무관심, 진실과 거짓말의 대립이다.

워낙 명백한 주제와 결론을 상정해놓고 달려가는 영화다 보니 엑스칼리버의 신화는 아서뿐만 아니라 모든 브리튼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판타지가 된다고 그럴듯하게 주장한다. 알렉스는 현실의 진실을 설파하는 엄마에게 설득당할 뻔하다 멀린의 마법에 마술이 눈속임만은 아니라고 깨닫는다.

▲ 영화 <왕이 될 아이> 스틸 이미지

영화는 초반부터 비천금속을 귀금속으로 만드는 과거의 연금술사를 등장시킴으로써 믿음이 무가치한 사물을 귀한 물건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관념론적 해석을 내놓는다. 알렉스의 존재를 안 믿는 학교 선생들과 학생들을 설득하기 위해 멀린이 마법을 펼치는 것은 유물론 해체의 시퀀스다.

철저하게 어린이를 겨냥한 영화니만큼 그들의 눈높이에 맞춘 유머가 다수 포진돼있다. 알렉스가 자신이 아서를 잇는 왕이라고 하자 친구들이 ‘버거킹? 킹콩? 라이언킹?’이라고 놀리는 식. 또 알렉스는 아서, 루크(‘스타워즈’), 해리 포터처럼 자신도 아버지 없이 버려졌다는 점에서 영웅이라고 주장한다.

감독은 교묘하게 ‘반지의 제왕’ ‘해리 포터’ ‘엑스칼리버’ 그리고 ‘돈 키호테’를 오가며 ‘꿈은 이뤄진다’를 외친다. 서로마제국의 멸망 때 이미 로마제국은 사라졌다고 전제한 뒤 유럽의 자존심을 브리튼이 지켜야 한다는 이념을 저변에 깔고 ‘독재자가 권력을 장악한 영국을 구하자’라고 노골적으로 외친다.

멀린이 입은 티셔츠의 ‘레드 제플린’은 그런 면에서 의미심장하다. 미국에서 탄생한 록을 받아들인 영국은 1960년대 말 하드록이란 최고의 히트 상품을 만들어내 미국으로 역수출하고 세계 팝시장을 석권했는데 그 대표 밴드가 바로 레드 제플린이다. 제플린은 대놓고 외치는 브리튼의 자존심이다.

▲ 영화 <왕이 될 아이> 스틸 이미지

세계적 불가사의 유물인 스톤헨지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태양신 숭배 사상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스톤헨지가 여기선 차원 이동의 문으로 묘사된다. 그건 “전설은 소문에 불과해. 힘 있는 자들이 변조하기도 하지”라는 대사와 연관 지을 수 있다. 역사와 신화는 승자의 몫이라는.

기승전결이 확실한 구조를 띠고 있으며 매 시퀀스에 교훈적 메시지를 담는 걸 잊지 않는다. “이 땅은 지도자를 잃고 분열됐다”라며 “기사도에 복종하라.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을 존중해야 한다”라고. 또 “서로 미워하는 건 악마의 속임수니, 서로 사랑하면 악마가 설자리가 없다"라는 식이다.

5명의 주인공의 인종은 대놓고 영국이 유럽의 중심임을 당당하게 주장하는 설정이다. 알렉스, 랜스, 멀린은 전형적인 유럽인종과 유대인의 색깔이 혼재돼있고, 베더스는 인도 계통이며, 케이는 아프리카 출신 흑인이다. ‘화이트 워싱’과는 차원이 다른 이런 인종화합의 메시지는 좋은 교훈이다.

엑스칼리버가 알렉스를 선택한 건 그의 혈통이 아니라 자질 때문이었다는 건 영화의 메시지의 매조짐이다. 아이들에게 각자의 역할을 맡긴 뒤 그들의 은밀한 성장 경험을 통해 한편의 드라마를 써가는 ‘어린이는 내일의 주인공’이란 깔끔한 동화다. 120분. 전체. 1월 16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