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위 출범은 5공화국 탄생의 전주곡 [김문 작가 칼럼]

김문 작가l승인2019.01.20l수정2019.01.20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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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김문 작가가 쓰는 격동의 현대사를 주도한 군장성들의 이야기]

▲ 사진=ktv 화면 캡처

국보위 출범은 5공화국 탄생의 전주곡

당시 최규하 대통령은 80년 5월11일부터 중동순방길에 나섰으나 학원소요 사태 등 국내의 심각한 사회불안으로 귀국 예정 일자를 하루 앞당겨 16일 밤 김포공항에 도착, 청와대로 향했다. 최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신현확 국무총리로부터 그동안 국내에서 있었던 학생소요 등 당면문제에 대해 보고를 받고 대책을 논의했다.

이보다 며칠 앞서 보안사령부 정보처(처장 권정달 대령)에서는 계속되는 소요사태와 무장공비 침투사건 등으로 시국에 대한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고 판단, 국내외 긴박하게 돌아가는 각종 정보를 종합하여 전두환 사령관에게 ‘극비보고서’를 올렸다. 내용은 전국계엄확대와 국보위출범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최규하 대통령은 귀국 이튿날인 5월17일 저녁 9시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전국 일원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최 대통령은 특별성명을 통해 “이 중대한 시기에 일부 정치인, 학생 및 근로자들의 무책임한 경거망동은 이 사회를 혼란과 무질서, 선동과 파괴가 난무하는 무법지대로 만들고 있어 우리 국가는 중대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면서 “이러한 상태가 계속된다면 우리의 국기마저 흔들리게 할 우려가 없지 않아 단안을 내리지 않을 수가 없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 사진=ktv 화면 캡처

그러나 이튿날부터 촉발된 5.18민주항쟁으로 국내는 다시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말았다. 결국 5월21일 최 대통령은 신현확 내각으로부터 총 사퇴서를 받고 국무총리서리에 박충훈(朴忠勳) 무역협회장을 임명하는 등 개각을 단행했다. 다음 날 전두환 사령관은 청와대로 가서 최 대통령에게 ‘국보위’라는 비상대책기구의 필요성을 건의했다. 최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흔쾌히(?) 수락했다. 이로부터 열흘 뒤 국보위는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대통령자문 보좌기관으로 정식 발족됐다.

국보위 창립 핵심멤버로는 당시 중앙공무원교육원 부원장으로 있던 정관용(鄭寬溶)씨와 야전지휘관이었던 최평욱(崔枰旭 육사16기)씨였다. 국보위는 삼청동에 사무실을 두고 최평욱 씨가 인선임무를 맡으면서 시작됐다. 당시 국보위 의장은 최 대통령, 그리고 위원은 국무총리를 비롯 각 부처 장관과 중앙정보부장, 청와대비서실장, 합참의장, 각군 참모총장, 보안사령관이 임명하는 10인 이내로 한정했다. 그러나 이는 형식일 뿐 실권을 쥔 전두환 사령관에 의해 모든 것이 좌지우지됐다.

국보위는 이렇게 해서 국가권력의 중추역할을 하는 조직으로 출범했으며 공직자 숙정, 사회악 척결과 사회정화운동, 교육개혁, 기업체질 강화와 중화학투자 등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 12개 관련사업을 펼쳐나가면서 사정의 칼날을 매섭게 휘둘렀다. 1980년 6월4일부터 7월31일까지 있었던 대대적인 공무원 숙정 작업만 하더라도 입법부 11명, 사법부 61명, 행정부 5천418명 등 공직자 5천490명과 국영기업체, 금융기관 및 정부산하단체 등 127개 기관 임직원 3천111명 등 8천601명이 국보위의 서슬퍼런 칼날에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갔다.

삼청교육대는 허삼수 아이디어였다

▲ 사진=ktv 화면 캡처

이 때 그 유명한 삼청교육대도 운영됐다. 삼청교육은 사회정화위 간사였던 허삼수씨 아이디어에 의해 시작됐다고 당시 관계자는 말한다.

계엄사령부는 1980년 8월4일 계엄포고 제13호(불량배 일제검거)를 발표, 국보위상임위원장을 중심으로 사회악 일소를 위한 특별조치를 단행했고 이 조치를 근거로 대대적인 삼청교육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국보위는 이보다 사흘 앞서 국민의 혐오와 원성이 대상이 되는 조직폭력, 상습폭력, 치기배 등 퇴폐적인 사회악 제거에 역점을 두고 8월1일을 기해 군경합동으로 대대적인 ‘사회악’ 소탕작전을 벌였다. 당시 우리 사회는 박 대통령 시해사건 이후 혼란기를 틈타 폭행, 강간, 금전갈취 등을 일삼는 조직폭력이나 불량배들이 기승을 부렸다. 때문에 이들의 전면소탕과 순화교육의 필요성이 절실했고 일반 국민들도 이를 환영하는 분위기가 많았다.

그래서 국보위는 8월1일부터 11월27일까지 4차례의 단속결과 6만여명을 연행했으며 이중 절반이 넘는 3만9천여명이 군부대의 삼청교육대에 넘겨졌다. 나머지 3천여명은 구속되어 재판을 받았으며 1만7천여명은 훈방됐다. 구속과 삼청교육, 훈방 등의 분류작업은 검사 및 경찰서장이나 간부, 보안부대요원, 헌병대요원, 중앙정보부직원, 사회정화위원 등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에서 이루어졌다.

삼청교육의 실행은 3사단(당시 사단장 박세직), 26사단(사단장 박희도), 33사단(사단장 안필준), 특전사, 여군교육대 등 전후방 20개 사단에서 무장군인의 감시 아래 1981년 1월까지 계속됐다. 그러나 이 기간동안 삼청교육생 50여명이 사망하는 등 정치적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켜 1989년 국회청문회 등의 5공비리와 결부되어 크게 문제가 된 바 있다.

▲ 김문 작가

[김문 작가]
전 서울신문  문화부장, 편집국 부국장
현) 제주일보 논설위원

김문 작가  gamsam10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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