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메리 포핀스 리턴즈>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1975년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안겨주고, 어른들에게는 잃어버렸던 꿈을 되살려준 ‘메리 포핀스’가 ‘메리 포핀스 리턴즈’(롭 마셜 감독)로 돌아왔다. 전편으로부터 20년이 흐른 1930년대 대공황 시대. 조지 부부는 세상을 떠났고, 그들의 남매 마이클(벤 위쇼)과 제인(에밀리 모티머)은 성인이 됐다.

제인은 미혼이지만 은행원 마이클은 지난해 상처하고 애나벨, 존, 조지 3남매를 키운다. 일요일에 은행의 변호사가 방문한다. 아내의 치료비 등에 쓰느라 주택을 담보로 받은 대출금 상환이 3개월째 밀리는 바람에 오는 금요일 자정까지 그 전액을 한꺼번에 갚지 못하면 집을 빼앗길 처지에 놓인다.

궁즉통이라고 남매는 아버지가 남긴 은행 주식을 떠올리고 그걸 찾기 위해 책장과 다락 등을 뒤지지만 마이클이 예전에 그린 그림과 낡은 연만 나올 따름이다. 실망한 마이클은 그림은 주머니에 넣고 연은 밖에 버린다. 연이 바람에 날리고 때마침 밖에 나왔던 조지가 연줄을 잡았다 하늘로 올라간다.

위기의 순간 거짓말처럼 메리 포핀스(에밀리 블런트)가 나타나 조지를 구하고 애나벨과 존까지 데리고 집으로 온다. 포핀스는 예전에 그랬듯 이번에도 뱅크스 가문의 아이를 돌보는 보모를 맡겠다고 나선다. 마이클은 반가우면서도 포핀스의 인건비를 걱정하지만 제인은 일단 맡기자고 설득한다.

▲ 영화 <메리 포핀스 리턴즈> 스틸 이미지

나이가 든 삼촌 도스로부터 은행장 자리를 물려받은 윌리엄(콜린 퍼스)은 매우 탐욕적인 사람이다. 그는 마이클의 아버지의 증권이 있는 걸 숨긴 채 그의 집을 빼앗을 수순에 돌입한다. 한편 포핀스는 가로등 점등원 잭(린-마누엘 미란다)과 함께 세 아이를 데리고 환상적인 동화 속 여행을 떠나는데.

비주얼, 음악, 특수효과 등에서 전편보다 한층 강해진 만큼 재미와 메시지도 강화되고 심화됐다. 디즈니 특유의 ‘동화와 신화를 믿어라’라는 주문을 각박한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 꿈을 잃은 채 살아가는 어른들에게 주입하는 한편 세상만사를 바라보는 ‘관점’의 중요성을 강하게 설파한다.

이른바 ‘생각 뒤집기’다. 어려서 포핀스의 기적을 몸소 체험하며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치면서 꿈꾸는 청소년으로의 성장과정을 거친 마이클은 그러나 가장인 현재 생활고에 찌든 ‘꼰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래서 그는 어느새 포핀스의 동화의 나라가 환청과 환시였다고 치부한다.

포핀스와 나란히 서서 뱅크스 가족의 꿈을 되살려주고, 희망을 띄워주는 존재는 잭, 연, 풍선이다. 너덜너덜 구멍이 뚫려 볼품도 없고, 제 기능도 상실했을 법한 연은 포핀스를 불러오고, 잭은 그녀의 제1 조력자가 된다. 아이들은 풍선(꿈)을 갖고 싶지만 식품 외에 지출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형편.

▲ 영화 <메리 포핀스 리턴즈> 스틸 이미지

그래서 아이들은 하루 지난 빵을 살 정도로 일찍 철이 들어버렸다. 포핀스는 굳이 설명하거나 설득하려 들지 않는다. 그저 “오늘 아니면 안 돼”를 좌우명으로 “문이 열릴 때까지 여기에 있을 것”이라는 책임감을 보일 뿐. “논리는 존재의 기본”이라는 논거에 반해 “불가능도 가능”하다는 관념론을 앞세운다.

3남매는 일찍 세속적인 ‘어른’이 됐고, 마이클은 그들보다 덜 성숙한 ‘어른이’로 퇴락했다. 포핀스가 드러낸 외양적 명분은 3남매의 양육이지만 사실은 본래적 존재를 상실한 마이클을 위해서였다. 성이 Banks인 은행원이 은행의 횡포에 행복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다는 설정은 마르크스적이다.

그와 엥겔스는 ‘자본론’에서 ‘부르주아지의 지배와 소유관계는 주기적 경제공황이라는 위협을 초래한다’는, ‘독일 이데올로기’에서는 ‘분업과 사적 소유가 만든 사회적 힘이 개인의 소외를 낳는다’는 이론을 펼쳤다. 은행이 소득을 낳는 구조는 노동에 의한 중농주의나 중상주의와는 확연히 다르다.

자본주의 사회의 일상적 종교인 물신숭배 사상이다. 마이클의 어린 시절의 동화를 담은 그림 한 장이 엄청난 가치를 발휘한다는 발상은 자본주의의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동화와 애니메이션과 신화를 우습게 여기지 말라는 강력한 주문을 외운다. 바로 디즈니가 앞장세우는 이데올로기다.

▲ 영화 <메리 포핀스 리턴즈> 스틸 이미지

여기에 영국의 전통을 은근히 자랑하는 자존심도 더한다. 런던의 명물인 빅 벤 시계탑과 본차이나로 유명한 로열 덜튼 도자기다. 포핀스가 말하는 문은 마이클의 닫힌 동화 나라의 문이고, 그걸 여는 방법은 스스로 관점을 바꾸는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불가능하다고 포기했던 게 가능해지는 것.

왜? ‘잃어버린 적이 없는 건 빼앗길 수도 없기’ 때문. 그래서 오늘 해야 할 일은 미루지 말고 오늘 해야 한다. ‘해 뜨기 직전이 기장 어두운 법’이므로. “우린 엄마를 잃지 않았다.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라는 막내의 언명이 그런 관념론이고, 잭의 사다리는 야곱의 사다리(예수)라는 희망이다.

마이클의 2펜스는 레나토 카스텔라니 감독의 ‘2펜스의 희망’(1952)에서 빌린 듯하다. 키에르케고르가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쓴 절망을 이겨낸 희망으로 되찾는 인간으로서의 행복이란 의미다. 시간을 되돌린다는 건 시계적 시간성이 아니라 에라이그니스(본유화, 하이데거) 혹은 근원적 시간성이다.

점등원들의 군무는 화려하다 못해 스턴트가 연상될 만큼 아크로바틱 한 역동성을 보여준다. 하이라이트의 “다 끝이라고 할 때 이제 시작이란 걸 보여줘”라는 대사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감독은 관능적인 ‘시카고’와는 다르게 상업적 가족 뮤지컬 영화의 교과서를 썼다. 130분. 전체. 2월 14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