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유치를 위한 비장의 승부수 [김문 작가 칼럼]

김문 작가l승인2019.02.06l수정2019.02.06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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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김문 작가가 쓰는 격동의 현대사를 주도한 군장성들의 이야기]

올림픽 유치를 위한 비장의 승부수

해방 이후 최대의 경사로 일컬어지는 88서울올림픽의 유치계획은 원래 1979년 6월부터 검토되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당시 주한미군철수문제 등과 관련, 카터 미대통령과 서먹한 관계였던 것으로 알려진 박정희 대통령이 대미관계는 물론 특히 정치,경제, 안보 등의 대북관계에 있어서도 결정적 우위를 차지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올림픽 유치계획을 처음으로 거론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계획이 구체화되기도 전에 부마사태가 발생하는 등 시국불안으로 뚜렷한 진전이 없다가 10.26총성과 함께 박대통령이 사망하자 이같은 계획은 자연스럽게 5공화국으로 넘어오게 되었고, 결국 1980년 11월 30일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지시로 올림픽 유치신청서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제출되면서 유치활동이 본격화되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81년 1월 6일 대한올림픽위원회(KOC)는 올림픽 유치계획을 위한 실무반을 편성했고 3일 뒤에는 아시안게임 유치 전담반의 출범식도 아울러 가졌다.

하지만 유치계획은 처음부터 순탄치가 않았다. 경쟁국인 일본의 방해공장으로 인해 여러 난관에 부딪쳤고 설상가상으로 당시의 불안한 국내정세는 갈수록 국제사회에서 불리하게 작용되었다. 따라서 유치계획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비관론마저 거세게 일기 시작했고 이러한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당시 유학성 안기부장은 앞서 언급했듯이 체육인과 기업인들을 중심으로 전담 로비팀을 구성하는 등 올림픽유치를 위한 비장의 ‘승부수’를 띄었던 것이다. 그 결과 81년 3월 28일 NOC(각국 올림픽위원회)대표단이 서울의 올림픽 준비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내한했고 4월 4일에는 IOC본부 조사단이 한국을 방문하기에 이르렀다.

이같은 한국의 올림픽 유치노력은 그 해 7월 29일부터 8월 1일 사이에 열린 이탈리아 밀라로 ANOC(각국 올림픽위원회 총연합회)총회를 계기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당시 이 총회에는 조상호(曺相鎬)KOC위원장을 비롯한 전상진(全祥振)부위원장 등이 참석, 각국 올림픽위원들을 상대로 서울올림픽의 유치 타당성을 적극 설득했으며 때마침 금상첨화격으로 세계의 주요 통신사들도 이같은 한국의 노력을 앞다투어 보도하기 시작했다.

나고야 시민대표 11명 일본유치 반대 캠페인

▲ 사진=ktv 화면 캡처

멀게만 느껴졌던 서울올림픽 유치의 꿈이 보다 현실적으로 접근되는 순간이었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우리측 관계자들은 여세를 몰아 ‘끝내기 작전’을 펴나갔다. 1980년 9월 3일 당시 박영수(朴英秀)서울시장, 정주영 올림픽추진위원장, 조상호 KOC위원장, 유창순(劉彰順) 무역협회회장, 이원경(李源京)KOC고문, 이원홍(李元洪)KBS사장 등 6명의 공식 대표단이 구성되었고 그 해 9월 18일 드디어 독일의 바덴바덴으로 향했다. 이와 때를 같이 해 일본 나고야에 살고 있는 시민대표 11명(재일동포)도 바덴바덴 현지에서 ‘일본의 올림픽 유치를 반대한다’는 캠페인을 벌여 극적인 효과마저 연출해 냈다. 일이 이쯤되자 일본측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같은 일련의 ‘시나리오’는 유학성 안기부장에 의해 극비 구성된 ‘특별전담반’에서 이루어졌음은 물론이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바덴바덴총회’가 열리는 운명의 날이 밝아왔다. 1981년 9월 30일 서울 남산 깊숙이 자리잡은 안기부집무실의 유 부장은 아까부터 책상 위에 놓여진 하얀 봉투를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었다. 사실 유 부장은 어제 하오 청와대를 방문, 전 대통령에게 그 동안의 로비활동 등을 종합 보고하는 자리에서 올림픽 유치와 관련, ‘이제는 안심해도 좋다’는 낙관론을 피력한 바 있다. 그러나 항상 변수는 있는 법. 유 부장 자신은 여간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올림픽 유치계획이 실패로 돌아가는 날에는 전 대통령에 대한 허위보고의 책임은 물론 국제적인 망신살도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는 뜬 눈으로 지난 밤을 지샌 뒤 오늘 아침 일찍 사무실에 출근, 사표가 들어 있는 흰 봉투를 보며 ‘낭보’가 오기만을 학수고대 하고 있었다.

바로 이 때 서울과 바덴바덴을 직통으로 연결한 전화벨이 요란스럽게 울렸다. 순간 유 부장은 현지에 급파된 요원임을 직감했다. 그런데 과연 예상대로 환호가 담긴 목소리일까, 그의 손이 한순간 파르르 떨렸다. 유 부장은 애써 진정을 되찾으며 수화기를 들었다. “부장님, 성공입니다. 드디어 해냈습니다.”라는 흥분된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흘러나왔다. 그 요원은 이어 “이제 남은 것은 사마란치 IOC위원장의 공식발표만 남겨놓고 있습니다.”고 덧붙이는 것이었다. 순간 유 부장은 가슴속으로부터 복받치는 감격을 억누르며 “그래 수고했어. 다들 애썼어.”하며 수화기를 내려놓곤 곧장 청와대로 전화를 걸어 이같은 바덴바덴으로부터의 제 1성을 전했다. 이로부터 약 3시간 뒤 사마란치의 ‘쎄울 꼬레아’가 전파를 타고 전세계에 울려 퍼졌다. 결과는 52대 27, 압도적인 표차의 승리였고 그토록 기세 좋았던 일본측을 완전히 제압하는 순간이었다. 이와 때를 같이 해 유 부장의 집무실에는 그 동안의 노고를 축하하는 전화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청와대의 허화평(許和平)정무수석도 유 부장에게 전화를 걸어와 전 대통령도 무척 기뻐하고 있다고 전했다. 온 국민이 환호한 이 날, 어찌 어느 누가 이를 두고 감격적인 순간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사표까지 써놓고 전력을 다했던 유 부장으로서는 더할 수 없는 일생일대의 보람이었다.

86아시안게임’마저 따내

이틀 뒤 정주영 올림픽추진위원장, 조상호 KOC위원장 등 그동안 백방으로 뛰며 일등공훈을 세운 한국측 대표단 일행이 김포공항에 보무도 당당히 도착했다. 유 부장이 ‘개선장군들’을 직접 맞이하기 위해 공항에 나갔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이 때 유 부장이 한 말이 걸작이었다. 귀빈실을 통해 입국하는 이들을 보자 유 부장은 “이거 올림픽 마피아단이 돌아왔구만!”이라고 큰소리로 외쳤던 것이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폭소가 터져나오는가 싶더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영접나온 사람들과 서로 얼싸 안으며 재회의 기쁨을 나누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 당시 조상호 KOC위원장은 “그 때 우리 일행들은 각국 IOC위원들(82명)의 얼굴을 익히기 위해 사진과 이름을 별도로 기록한 서류를 항상 가지고 다녔다”면서 “일본은 통역원을 데리고 다녔지만 우리는 직접 영어, 불어 등을 구사하여 그들과 보다 친숙해질 수 있었다”고 당시의 유치전략 노하우를 회고한 바 있다.

이 날 저녁 청와대에서는 성대한 파티가 열렸다. 전 대통령은 유치단과 감격의 악수를 나누며 그 동안의 노고를 각별히 치하했다. 그리고 유 부장은 기업인들과 따로 만나 “내일 17시까지 경비(로비자금) 사용 내역을 보내주시면 즉시 결제해주겠소.”라는 말을 건넸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업인들은 “국가를 위해 한 일이니 청구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한결같은 답변을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환영 리셉셥은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다. 분위기가 어느 정도 무르익자 이번에는 ‘86아시안게임’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러자 누군가가 “까짓것 아시안게임은 북한으로 줘버립시다.”라고 말했는데 다른 참석자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유 부장은 △88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끝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86아시안게임을 유치해서 경험을 축적해야 하고 △이는 대북관계에 있어 안보의 우위는 물론 한반도 평화정착의 획기적인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며 △따라서 국민총화는 물론 국가장래의 발전을 제시할 수 있는 새로운 전기도 아울러 마련될 것이라는 등의 명분을 내세워 86아시안게임 유치도 올림픽 못지 않게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역설했다. 이 같은 논의는 2주 후 청와대에서 다시 재개되었는데 유 부장의 주장대로 아시안게임도 유치한다는 원칙을 세우게 되었다. 결국 이렇게 해서 그 해 11월 26일 인도 뉴델리에서 개최된 AGF총회에서 북한을 물리치고 86아시안게임 유치권마저 따내기에 이르렀다.

▲ 김문 작가

[김문 작가]
전 서울신문  문화부장, 편집국 부국장
현) 제주일보 논설위원

김문 작가  gamsam10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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