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말모이>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영화 ‘말모이’(엄유나 감독)에서 일본 제국주의는 조선의 혼과 민족정신을 완전히 말살하기 위해 전 조선인에게 창씨개명과 일본어로만 소통할 것을 명령한다. 일자무식에 전과자인 판수는 조선어학회에서 일하며 우리말을 깨우친 뒤 우리말 사용을 이단시하는 아들을 깨우쳐주기 위해 노력한다.

글로벌 시대이기에 영어는 배워야 한다. 필요에 의해 일본어에도 능숙해지는 건 당연하겠지만 국내의 일상에서 굳이 일본어를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쯤은 누구나 안다. 일제강점기 때 적지 않은 매국노들이 일본어 실력을 으스댄 이유는 내선일체사상에 마취된 어긋난 우월감 탓이었다.

그 풍조가 매국노 위주로 정부를 꾸린 이승만 때문에 잔존해 20세기를 관통하고 21세기에도 잔존해있는 걸 인정한 뒤 바로잡아야 마땅하다. 안중근, 세종대왕 등에게 부끄럽지 않은가? 공개석상에서 국회의원이 ‘겐세이’란 말을 천연덕스럽게 내뱉는 게 적나라한 실상이란 걸 알아야 한다.

지난 7일 KBS2 아침 방송에서 남자 아나운서는 ‘송해 선생님’이라고, 여자 아나운서는 ‘산신령 아버님’이라고 각각 시청자에게 말했다. 개인적으로 그들을 만났을 땐 그렇게 부를 수 있다. 하지만 방송에서 시청자에게 소개할 땐 누구를 막론하고 객관적으로 언론의 ‘윤리강령’에 따라야 마땅하다.

▲ 영화 <말모이> 스틸 이미지

방송 등 언론은 불특정 다수의 국민을 대상으로 하기에 철저하게 제3자적 시점이어야 한다. 극존칭은 물론 웬만해선 존칭을 생략한다. 그래서 직책에서 님 생략, 성인에겐 ‘씨’, 미성년자에겐 ‘군’과 ‘양’이란 의존명사로 예우를 한다는 약속. 선배‘님’도 과한데 선생님과 아버님은 매우 지나친 데다 틀렸다.

자체에 존칭이 내포된 선생에 ‘님’이란 높음과 존경의 뜻을 담은 접사까지 붙인 건 매우 사사로운 시각이다. 아버님은 정말 실소를 자아내게 하는 호칭이다. 송해는 모든 시청자의 선생님이 아니다. 특정인을 아버님이라 소개한 건 전 국민을 그의 자식으로 만든 만행이다. 방송인으로서 수준 미달이다.

YTN은 8일 저녁 뉴스에서 ‘비건, 현재로썬~’이란 자막을 내보냈다. 다수가 격조사 ‘으로서’와 ‘으로써’의 사용처에 대해 혼란스러워 하는 건 맞지만 언론은 아주 쉬워야 마땅하다. 현재는 지금의 시점을 지정하는 명사지만 이 땐 자격의 의미를 공유하기에 ‘서’가 맞다. 작가도 보도에선 언론인이다.

KBS에서 요즘 유행하는 ‘갬성’을 설명하기 위해 한 교수와 인터뷰를 했다. 그런데 그 교수는 천연덕스럽게 ‘이것과 저것은 틀리다’라고 말했다. 교수가! ‘다르다’와 ‘틀리다’의 용법은 ‘서’와 ‘써’의 그것과는 차원이 완전히 다르다. 이건 일제의 잔재와 더불어 현 이념대결에도 확대해석이 가능하다.

▲ 영화 <나랏말싸미> 스틸 이미지

일본어에는 ‘다르다’와 ‘틀리다’의 의미가 함께 내재돼있지만 우리는 두 단어가 확연하게 구분된다. 틀리다는 잘못됐다, 옳지 못하다 등의 뜻인데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고 해서 틀리다고 하는 건 최근 더욱 심화된 우리 사회 내 이념, 성별, 세대별, 단체별 등 다양한 계층 간의 갈등과도 연결된다.

좌파(좌익), 우파(우익)라는 말은 1789년 프랑스 혁명 직후 소집된 국민의회에서 의장석 기준 오른쪽에 지롱드파(왕당파)가, 왼쪽에 자코뱅파(공화파)가 각각 앉은 데서 기원한다. 그 의미는 현대에도 이어져 왕 등 기득권의 편에 서면 우파고, 노동자나 민중의 편에서 서면 좌파인데 우리나라는 좀 왜곡됐다.

우익은 좌익을 빨갱이로 매도한다. 빨갱이는 이승만이 자신의 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자신에게 반대하면 폭력 전복세력이라고 규정한 부정적 단어다. 민주주의가 국민이 주인이란 건 분명히 법으로 정했는데 자신이 국부라며 나라의 아버지, 즉 왕 행세를 한 이승만의 망령을 잇는 건 구태적 노예근성이다.

아마 그래서 기득권 세력을 지지하거나 그들을 ‘어르신’으로 여기는 보수세력이 개혁세력을 ‘틀리다’고 하는 것은 아닐까?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념은 이루 셀 수 없는데 자신이 가진 보수주의 하나만 옳고 다른 건 다 그르다고 하는 건 지나친 도그마라고 하기에도 낯 뜨거운 과대망상이다.

▲ 영화 <콜드 체이싱> 스틸 이미지

만약 그들의 주장대로 공산주의(사회주의)와 진보가 전 국민을 불행하게 만든다면 마르크스&엥겔스의 ‘공산당선언’과 존 로크의 ‘통치론’은 인문학의 필독서가 됐을 게 아니라 진작 폐기처분됐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철학의 일가를 이뤘고, 로크는 미국 ‘독립선언문’과 헌법의 기초가 됐다.

최근 리암 니슨은 영화 ‘콜드 체이싱’을 홍보하는 과정에서 인종차별적 발언을 했다는 구설수에 올랐다. 구찌는 한 스웨터 신제품이 흑인을 비하한다는 논란에 휩싸이자 그 제품 판매를 중단했다. 각자에 따라 해석이 다르겠지만 필자의 시각엔 랑그(언어)와 파롤(말)에 대한 이해 부족이 살짝 엿보인다.

니슨은 예전에도 인종차별이 의심되는 말을 한 ‘전과자’이기에 이번 비난에 대한 근거는 존재한다. 그래서 경험이 풍부한 67살의 대스타의 그 말의 근거는 랑그 아니면 치매다. 그의 랑그는 ‘흑인이라 죽이고 싶었다’가 아니라 ‘성폭행범은 흑인이었기에 그 흑인을 죽이고 싶었다’일 가능성도 있는 것.

그러니 방송과 인터넷의 말과 글이 얼마나 중요할까? 랑그는 단어 선택, 조합, 억양, 발음 등에 따라 천변만화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우수성을 인정받는 우리말은 더욱 그렇다. 세종대왕을 주인공으로 한 ‘나랏말싸미’란 영화까지 나온다. 우리말이 민족혼이라면 표준어는 일종의 ‘사회계약론’이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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