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사바하>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장재현 감독이 ‘검은 사제들’에서 한국적 ‘엑소시스트’와 ‘콘스탄틴’을 시도했다면, 오는 20일 개봉될 ‘사바하’는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의 ‘성스러운 피’(1996)의 컬트와 브라이언 싱어의 ‘엑스맨: 아포칼립스’의 판타지에 불교와 더불어 동양적 주술과 신화를 제대로 버무린 글로벌 비빔밥이다.

1999년 강원도 영월에서 쌍둥이 소녀가 태어난다. ‘괴물’인 언니는 ‘그것’이라 불리며 방치되고, 동생 금화(이해인)는 태아 때 그것에게 다리를 물어뜯긴 탓에 장애아로 자란다. 엄마는 후유증으로 죽고, 아버지는 자살한다. 의사는 그것이 금방 죽을 것이라 했지만 멀쩡히 살고, 금화는 외톨이로 자란다.

쌍둥이를 키우는 조부모는 그것과 어두운 금화 때문에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수시로 이사를 다니며 2014년을 맞았다. 박 목사(이정재)는 극동종교문제연구소를 차려놓고 사이비 종교를 사회에서 몰아내는 데 힘쓰는 척하지만 사실은 돈벌이가 우선이라 교계에서 사이비 혹은 이단으로 내몰린다.

현재 그가 집착하는 종교는 불교와 밀교를 차용해 사천왕을 모시는 사슴동산이다. 불교계의 지도자를 만나 그 종교의 이단과 폐단을 주장하지만 잘 먹히지 않는다. 다행히 그곳에서 고등학교 후배 해안 스님(진선규)을 만나 사슴동산의 경전을 찾으면 불교계가 움직일 것이란 조언을 받아낸다.

▲ 영화 <사바하> 스틸 이미지

영월 터널에서 실종된 여중생의 사체가 발견되자 강력계 황 반장(정진영)이 바삐 움직인다. 부검 결과 뱃속에서 부적과 생 팥알이 발견된다. 박 목사가 사슴동산 영월 교단에 심어놓은 프락치 요셉(이다윗)이 그 사무실을 뒤지는 사이 여중생 살인 용의자 철진을 찾아 황 반장이 그곳으로 출동한다.

그러나 철진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박 목사는 그의 배후에 나한(박정민)이 있음을 알게 된다. 요셉은 사무실 열쇠를 확보한다. 교단의 전원이 퇴근한 밤에 박 목사와 요셉이 잠입해 현장을 샅샅이 뒤진 끝에 경전을 발견하는 데 성공한다. 경전의 의문점을 풀던 그들은 엄청난 음모와 비밀에 경악하는데.

앞쪽은 워밍업을 하듯 비교적 가볍게 몸을 푼다. 연구실의 유일한 직원 권사가 해안에게 노골적으로 추파를 던진다거나, 토라진 권사에게 박 목사가 이번에 한탕 해 푸껫으로 여행도 가고, 공기청정기도 사자는 식이다. 주지가 고급 커피를 즐겨 마시고 그의 깊은 산 중 절엔 고급 승용차가 드나든다.

그러나 인트로의 “내가 태어날 땐 염소들이 심하게 울었다"라는 내레이션의 음산함을 이내 이어받아 내내 괴기스럽고 공포가 충만한 분위기로 시종일관 진행되니 정신만 바짝 차린다면 미스터리 스릴러, 오컬트 호러 등의 장르적 재미를 충분히 만끽할 수 있다. 전체의 흐름은 전일론과 이원론이다.

▲ 영화 <사바하> 스틸 이미지

영화는 특정 종교에 대한 맹신이나 폄훼의 소지를 피해 인간의 삶과 거기서의 ‘참과 거짓’에 대해 묻는다. 금화 가족은 “우린 귀신과 함께 살고 있다"라며 그것을 귀신으로 부른다. 이는 모든 인간은 뭐라 정의 내리기 힘들지만 두렵고 혐오스러운 미지의 존재와 공존하고 있다는 상징적 중의법이다.

또한 각 종에 대한 전일론과 이원론의 대립의 문제 제기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기독교는 뱀을 사악함과 간교함의 상징으로 그린다. 기독교도가 아닐지라도 동물애호가만 아니라면 뱀에 대해선 부정적이다. 그러나 생물학자 에드워드 O. 윌슨은 몽사 개념을 들어 신과 악마의 2가지 마법화의 도식으로 봤다.

더 나아가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독수리와 뱀을 긍지와 지혜의 메타포로 그린다. 이교 지도자가 “세상은 진흙”이라며 진흙 속에서도 고고히 생존할 수 있는 연꽃을 강조하는 이원론과 같은 맥락. 그러나 해안은 “기독교적 이분법으로 선과 악을 구분하면 곤란하다"라는 일원론자.

그는 불교엔 악이 없다고 강조한다. 다만 인간의 욕망과 집착이 있을 뿐이라는 것. 원래는 악마였지만 부처를 만난 뒤 악마를 잡는 악신으로 변전한 사천왕과 그를 모시는 사슴동산은 전일론으로 만난다. 그들의 경전 중 두드러지는 항마경이 상징적 요한계시록 같다는 주장 역시 궤를 함께한다.

▲ 영화 <사바하> 스틸 이미지

“세상엔 빛과 어둠이 연결돼있다”, “사바세계에선 모든 게 연결돼있다”, “죽음은 열반”이라는 언명 등이 그 뜻을 계속 잇는다. 신탁, 마취적 도취, 가치관의 혼돈, 신과 인간의 경계, 참과 거짓의 의문, 그리고 진정한 신의 정체성에 대한 심오한 테제가 영화를 관통한다. 한국 오컬트의 수준을 단숨에 바꿨다.

메시아의 탄생에 대한 신탁이 내려지자 예수가 태어날 즈음 헤롯 대왕이 베들레헴의 2살 이하 남자아이들을 학살했다는 걸 예로 든 박 목사의 “크리스마스가 즐거운 날이니?”라는 질문과 이교도의 “군인에게 살생은 애국”이라는 주장은 이 세상의 모든 이율배반에 대한 한탄, 모순의 아포리즘이다.

그래서 박 목사의 “우리 하나님은 어디서 무엇을 하려는지 한번 만나보려고”라는 말은 폐부 깊숙한 지점을 관통한다. 아프리카에서 한 소년이 테러를 자행했는데 그 이유를 물으니 “신의 뜻”이라고 했다는 시퀀스는 과연 무엇이 정교고, 무엇이 사교인지, 사이비의 기준이 뭔지를 감히 묻는다.

쌍둥이 자매와 나한의 정체, 사슴동산의 실체 등에 대한 궁금증을 따라가다 보면 상상을 불허하는 반전이 거듭되고, 박정민의 묵직한 연기력에 사로잡힌 뒤, 의외의 존재의 등장에 목덜미가 서늘해질 것이다. 박 목사의 “어디 계시나이까?”라는 독백은 섬뜩한 전율과 긴 여운을 남긴다. 122분. 15살.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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