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sbs 화면 캡처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SBS 금토 드라마 ‘열혈사제’가 11%대의 시청률로 미니시리즈의 사각지대였던 주말의 패러다임을 새로 쓰고 있다. 영화 ‘극한 직업’으로 명실상부한 ‘제일 뜨거운 여배우’가 된 이하늬를 비롯해 ‘기묘한 가족’으로 코믹 연기의 지평을 넓힌 김남길과 크게 망가진 김성균 등의 캐스팅이 단연 돋보인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캐스팅이 전부가 아니다. 마치 ‘내부자들’이나 ‘베테랑’을 보는 듯한 기시감이 결코 클리셰에 그치는 게 아닐 정도의 수준으로 서사를 펼쳐나가고, 과감하게 종교를 매개로 정의의 가치관을 비롯해 그 수단과 방법을 묻는다. 만화적 기교를 차용한 코미디의 재미도 과감하다.

김해일(39, 김남길)은 10년 전 국정원 대테러 특수팀원으로 활약할 당시 실수로 아이들을 폭사시킨 트라우마로 인해 구원을 얻고자 가톨릭에 귀의, 사제가 됐지만 사고를 친 후 스승인 이영준 주임신부의 서울 구담성당으로 흘러들어온다. 금연의 금단현상과 분노조절장애에 소주 의존증까지 있다.

구담구는 정동자 구청장, 강석태 서울지검 특수수사부 부장검사, 남석구 구담경찰서장, 국회의원, 사이비교주 등이 조성한 카르텔이 실질적으로 지배한다. 카르텔은 폭력조직 두목 황철범 대범무역 대표를 앞잡이로 내세워 각종 범죄로 이권을 챙기면서도 언론과 유착해 여론을 조작, 기득권을 유지한다.

▲ 사진=sbs 화면 캡처

가톨릭 신자 박경선(36, 이하늬)은 석태의 부하 검사로 실력은 뛰어나지만 철저한 정치적 지향성을 지녔기에 충성심이 강하다. 구담경찰서 강력팀 구대영(40, 김성균) 형사는 허세만 충만한 겁쟁이로 철범의 부하들에게조차 절절맨다. 그의 파트너로 정의감 넘치는 신입 서승아(28, 금새록)가 배정된다.겉으론 평화롭던 이 동네는 해일의 등장으로 심상찮은 기운이 감돌더니 영준이 갑자기 죽음으로써 거센 태풍의 소용돌이가 일기 시작한다. 영준을 아버지이자 영혼의 스승으로 여겼던 해일은 여러 가지 타살의 의혹을 제기하지만 석구의 명을 받은 대영 등 경찰은 물론 경선조차 자살로 밀어붙인다.

더 나아가 언론은 영준의 성추행 의혹을 보도하며 타살의 의혹을 한방에 날리려 한다. 평소 철범의 심복 장룡 등은 무슨 이유에선지 성당에 수시로 나타나 영준에게 시비를 걸었지만 영준은 점잖게 그들을 타일러 돌려보냈다. 보다 못한 해일이 물리력으로 제어하려 했지만 영준에게 야단만 맞아야 했다.

이제 4회(이틀) 방송됐지만 향후 흘러갈 서사의 뼈대는 대충 보인다. 영준이 카르텔의 결정적인 비밀을 알고 있었기에 제거됐을 것이다. 나약했던 대영과 비겁했던 경선은 해일의 훌륭한 조력자로 활약하며 정체성을 찾을 것이며, 무조건 정의감만 앞섰던 승아는 형사로서의 테크닉을 확장시켜 나갈 것이다.

▲ 사진=sbs 화면 캡처

물론 이 과정에서 해일도 강박장애에서 벗어나 자아를 되찾거나 재설정할 것이고, 더 깊은 종교적 성찰도 이룩할 것이다. 부패한 기득권자들을 소모재로 한 권선징악이란 일반화의 드라마를 통해 이 ‘철부지’ 주인공들의 성장기를 그리겠다는 건 뻔하지만 캐릭터와 에피소드, 그리고 철학이 강렬하다.

가장 튀는 배우는 김성균이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2011)로 단숨에 스타덤에 오른 그는 ‘보안관’ ‘채비’ 등 일부를 제외하면 조폭, 살인마 등 주로 악역을 전담해왔지만 이번엔 제대로 망가졌다. 시작부터 거창하게 조폭 사무실에 뛰어들었다 발가벗긴 채 쫓겨나는 식이다.

무능하고 나약하며 허풍만 가득하다. 권력에 아부하고, 폭력에 비굴하다. ‘극한 직업’에서 ‘여배우’의 거품을 걷어낸 이하늬는 이번엔 표리부동한 부정적 여성의 전형을 그린다. 겉으론 직업에 충실하지만 미남을 밝히는 천박하기 그지없는 인격이라 관성적인 성당 출입을 신성한 믿음이라고 착각한다.

김남길은 블랙코미디적 요소와 깊은 내면적 통찰이 공존하는 아주 강렬한 캐릭터를 만났다. 영준을 한없이 존경하면서도 때론 그와 종교관과 인생관으로 대치할 만큼 자존감과 주체적 이념을 갖췄다. 또 돋보이는 인물은 이들 3명보다 비중은 적지만 캐릭터는 결코 작지 않은 철범(고준).

▲ 사진=sbs 화면 캡처

그는 카르텔의 지도자들에게 충성을 맹세하지만 어딘지 서늘하다. 도대체 속내를 알 수 없는 그는 검정고시로 고졸 자격을 취득한 뒤 방송통신대에 진학했는데 하필이면 철학이라니! 고준은 왠지 ‘범죄와의 전쟁’의 김성균과 ‘달콤한 인생’의 황정민을 보는 기시감이 드는 강렬한 존재감의 다크호스다.

그도 그럴 것이 ‘변산’에서 박정민과 개펄 대결을 펼친 조폭 용대 역, ‘청년경찰’에서 조선족 두목 영춘 역 등을 맡아 조폭 두목에 ‘최적화’된 배우임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장동건과 유오성의 ‘친구’를 기점으로 조폭 장르, 혹은 조폭 전담 배우의 새 시대가 열렸다면 고준은 하나의 분기점으로서 명증하다.

기존 TV 드라마와 달리 종교를 매개로 한 고뇌의 철학이 매우 진하다. 해일은 분노조절장애가 있지만 영준이란 컨트롤타워 덕에 사고와 거리를 둘 수 있었다. 하지만 영준의 죽음으로 분노가 제어에서 벗어나고, 그건 곧 정의 구현으로 연결될 전망이다. 그런데 철범에게서도 억제된 분노의 아우라가 풍긴다.

둘은 히어로와 빌런이라는 상반된 캐릭터지만 그들의 분노의 근접인이 카르텔 같은 것이라면 궁극인은 거시적 세계정세라는 공통분모가 보인다. 대척점의 주인공이 묘하게 닮은 이항대립. 해일의 ‘일화기억’(사고)과 철범의 ‘의미기억’(소외)이 야기한 폭력은 과연 이 사회에 어떤 교훈과 경고를 주는가?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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