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영화 ‘말모이’(엄유나 감독)의 주인공 판수는 범죄가 일상인 일자무식자다. 생계를 위해 조선어학회에 입사한 뒤 우리말 지킴이들과의 대화에서 “벤또든 도시락이든 그게 뭐가 중요해, 먹고사는 게 중요하지”라고 웅변한다. 생물학적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민족주의적 관점에선 무지하기 그지없다.

또 작가 동익은 이광수 등 일부 문인들이 일제 지지 성명을 내자 치욕이 극에 달해 분뇨를 투척한다. ‘항거: 유관순 이야기’(조민호 감독)와 ‘자전차왕 엄복동’(김유성 감독)이 오는 27일 개봉된다. 내달 1일은 3·1만세운동 100주년 기념일이다. 국회의원은 공식 자리에서 ‘뿜빠이’, ‘겐세이’를 외친다.

최근 KBS2 ‘내 고향 스페셜’의 홍합 채취 장면에서 ‘그것도 못 따? 따지는 데’라는 자막이 나왔다. 잘못된 띄어쓰기다. ‘다시 우럭 재도전’이란 자막은 ‘역전앞’이다. 한 아나운서는 ‘택시기사님들’이라고 했다. 일상이 아니라면 님은 과하다. 빌리어드TV에선 ‘어의상실’이라는 어이없는 자막이 나왔다.

KBS2 ‘해피 투게더’에 출연한 이상윤은 ‘나시’라고 했다. 스포츠 프로그램 및 관련 뉴스, 예능 등에선 ‘시합’이란 단어가 쏟아진다. ‘감사합니다’ ‘야채’란 말이 거리낌 없이 쓰인다. 언어만 보면 아직도 일제 강점기인 듯, 아니면 친일파들이 언론과 문화는 물론 생활의 상당한 부분을 점령한 듯하다.

▲ 영화 <말모이> 스틸 이미지

우리나라와 일본이 중국의 한자 문화권에 걸친 건 맞다. 그러나 일본이 한자를 이용해 자신들만의 고유 언어로 만든 것까지 사용하는 건 분명히 일제의 잔재다. ‘감사’, ‘야채’, ‘시합’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 단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 건 어른과 정부의 잘못이긴 하지만 각자의 의식도 중요하다.

연예인과 방송인은 여느 명사나 언론인 못지않게 여론 형성에 지대한 영향력을 가진 인사다. 특히 이제 막 인식과 직관과 이념의 완성을 눈앞에 둔 청소년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에선 최소한 공개적인 자리에서만큼은 언행이 곧아야 한다. 올바른 우리말은 그 첫 번째다.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연예인은 시청자를 즐겁게 만드는 게 책무다. 민소매란 우리말을 두고 나시란 일본어를 사용한 건 웃기자는 의도는 아닌 게 명명백백하다. 평소 우리말 알기와 사랑하기에 무심하고 무책임했던 결과일 것이다. 연예인에 자격 여건이 있는 건 아니지만 교양은 중요하다.

작가를 컨트롤하는 연출자는 자막 교육에 신중하고 첨예해야 한다. KBS2 드라마 ‘하나뿐인 내 편’이 음주운전이 의심되는 시퀀스에 대해 사과한 사례에서 보듯 올바른 우리말 지키기에도 성심성의껏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지극히 당연하다. 자격 미달은 당연히 퇴출 사유다.

▲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 스틸 이미지

우리는 유관순 열사의 처연하지만 숭고한 짧은 생애, 그리고 친일 매국노 정춘영에게 어떤 지독한 고문을 받았는지 읽고 들어서 알고 있다. ‘항거’는 고향에서의 만세운동으로 투옥된 후에도 만세운동을 그치지 않았고, 일본에 당당했으며, 고문과 죽음 앞에서 결연히 독립을 외친 유관순을 담았다.

우리가 막연하게 알고 있던 그 1년여의 옥중 독립운동을 105분의 영화로 만든 이유는 모든 걸 떠나 애국자의 위상을 바로 세우고, 친일 매국노를 제대로 가리며, 민족정신과 국가의 위상을 올바로 정립하자는 의도만큼은 확실하다. 그런 측면에서 ‘자전차왕 엄복동’은 또 다른 ‘손기정’이란 자존심이다.

기성세대는 요즘 ‘애’들이 신조어와 인터넷 언어로 국어를 크게 훼손한다고 개탄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거울을 들여다볼 필요는 있다. 일본인도 잘 안 쓰는 일본어의 잔재를 생활 깊숙한 곳에 심어놓은 장본인은 과연 누굴까? 국회의원이 ‘겐세이’를 외치고 교수가 다른 걸 틀리다고 말하는데.

필요에 의해 정확한 일본어를 구사해야 할 때를 제외하면 방송 등 언론이 우리 표준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건 굳이 강조할 필요 없는 당연지사다. 일상에선 구어체일지라도 가능하면 바른말, 고운 표현을 지향하는 게 우리말을 지키는 애국은 물론 개인의 교양 차원에서 바람직하고, 사회적으로도 건전하다.

▲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 스틸 이미지

영화 ‘베테랑’에서 도철(황정민)이 비리에 연루된 동료 형사를 핍박한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라는 대사가 한때 유행했었다. 영화적 특성상 가능한 표현인데 이는 그만큼 우리 사회 곳곳에 일제의 잔재가 뿌리내리고 있으며 그래서 사회적 계도와 전 국민적 계몽 운동이 필요하다는 반증이다.

국민의 심부름꾼으로서의 직분을 수행하는 자리에서 일본어와 막말을 일삼는 국회의원은 지역구 주민들이 눈여겨봤다 총선 때 배제하면 그뿐이지만 일부 언론인과 방송인의 무책임 혹은 무지는 차원이 다르다. 국회의원의 그릇된 언어 구사는 언론이 지적하지만 방송과 인터넷은 그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O. 윌슨의 유명 저서 ‘Consilience’가 번역 출판되면서 ‘통섭’이란 단어가 한때 유행했다. 지식은 거시적 통합을 이룰 수 있을지 몰라도 우리말과 일본어의 통섭은 불가역적이고 반역적이다. 생물학적으로 일본인에 우리 유전자가 섞였는지는 몰라도 민족혼은 다르다.

컴퓨터, 인터넷 등 번역이 늦었거나 불편한 경우, 오렌지, TV처럼 자리 잡은 사례 등을 제외하면 무조건 우리말이 우선이다. KBS1 ‘우리말 겨루기’가 무려 8%대 시청률을 기록하는 건 시청자의 우리말에 대한 큰 관심과 더불어 그만큼 잘 모르거나 사용하지 않는 우리말이 많다-신기하다-는 양면성이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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