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사바하>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지난 20일 개봉된 영화 ‘사바하’(장재현 감독)가 ‘극한 직업’의 흥행 독주를 저지하며 흥행 선두에 올랐다. 화제는 호불호의 논란을 야기하기 마련. 이 영화에 대해서도 그런 극단의 반응이 나오고 있는데 기존 한국의 오컬트 스릴러에 비교할 땐 확실히 진일보했다는 데엔 대체로 긍정하는 분위기다.

윌리엄 프리드킨이나 프란시스 로렌스, 그리고 ‘엑소시스트’(1975)와 ‘콘스탄틴’(2005) 마니아 입장에선 불쾌할지 몰라도 ‘사바하’가 그와 유사한 내용과 수준의 철학을 추구한 건 명증하다. 싫은 기호도 인정하되 다른 한편의 열광하는 관객들의 취향 역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도 있을 듯하다.

‘엑소시스트’. 노신부 메린이 이라크 북부에서 고분을 발굴하던 중 악마를 상징하는 유물을 발견한다. 미국의 인기 여배우 크리스는 어린 딸 리건이 악령에 빙의되자 젊은 신부 카라스에게 엑소시즘을 부탁하고, 카라스는 유경험자 메린에게 도움을 청해 두 신부와 간교한 악령 간의 싸움이 시작된다.

권투 선수 출신 카라스는 홀어머니를 방치해 죽게 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악령과의 대치에서 내내 불안하고 초조한 이유는 ‘과연 그런 엄청난 악을 행한 내가 악을 물리칠 수 있을까’라는 의문 때문이다. 그런데 악령도 허세와 달리 정신력이 약해 카라스가 뿌린 가짜 성수에 고통스러워 비명을 지른다.

▲ 영화 <엑소시스트> 스틸 이미지

​왜 하필이면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런 죄도 없는 리건에게 고대의 악령이 깃들었을까? 이혼한 크리스는 남자관계가 복잡하고 연예스타란 이유로 딸에게 소홀하다. 악령이 지배하는 리건은 내면을 잃었기에 고통을 모를 것이다. 오히려 그런 딸을 바라보며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크리스가 무척 괴롭다.

사투 중 메린이 먼저 죽고, 지쳐 한계를 느낀 카라스는 최후의 방법을 선택한다. 악령을 자극해 자신에게 이동하도록 유도한 뒤 창밖으로 투신해 지루한 싸움을 끝낸다. ‘콘스탄틴’. 자살을 시도했던 콘스탄틴은 지옥행을 피하기 위해 인간에게 깃든 악마를 지옥으로 돌려보내는 퇴마사로 일하고 있다.

여형사 안젤라가 쌍둥이 이사벨의 자살의 진실을 밝혀달라고 의뢰하고 콘스탄틴은 의식을 통해 지옥에 다녀와 자살이 진실이라고 알려준다. 그런데 타락천사 루시퍼의 아들 마몬이 인류를 멸절시키기 위해 현세계로 이동하려 한다는 비밀과 더불어 그 매개체가 이들 쌍둥이 자매였음이 드러난다.

‘사바하’. 강원도 영월에서 의문의 쌍둥이 자매가 태어난 지 16년. 사이비 종교 퇴치로 돈을 버는 박 목사가 수상한 신흥 종교 사슴동산의 실체를 파헤치는 중이다. 소녀들의 의문의 실종 및 타살 사건이 연속되고, 박 목사는 여기에 사슴동산 간부 나한과 쌍둥이 자매가 연관됐다는 심증을 굳힌다.

▲ 영화 <콘스탄틴> 스틸 이미지

​이 영화들은 공통점이 많다. 먼저 오컬트 스릴러라는 장르적 DNA만큼은 명징하다. 또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를 묻고, 변신론(호신론)에 반발해 종교의 정통성에 의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신과 영혼을 학문과 지식의 영역에서 추방한 뒤 삶의 희망과 행복의 영역에서 부활시킨 칸트적 성찰을 추구한다.

이는 중세의 권위적이고 타락한 가톨릭에 맞선 마틴 루터의 용기와 장 칼뱅의 지성이 분연히 외친 개혁과 금욕의 의지에도 맞닿아있다. 일각에선 ‘엑소시스트’나 ‘콘스탄틴’의 일정 부분에 대해 불편해한다. ‘사바하’에 대해서도 한 특정 종교가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유는 칸트를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이 영화들은 ‘오직 믿음’을 앞세운 루터보다는 아예 로마에서 개신교를 떼어낸 칼뱅에 가깝다. 메린이 루터 혹은 바티칸이라면 카라스는 칼뱅 혹은 프로테스탄트 교회다. 콘스탄틴이 술과 담배를 입에 물고 살고, 박 목사가 신분을 이용해 금전을 편취하며 사리사욕을 챙기지만 정의와 이성은 부동적이다.

믿음이 흔들린다는 점에서 카라스와 콘스탄틴과 박 목사는 닮았다. 두 사람이 어머니의 죽음과 자살에 대한 ‘원죄’를 지닌 데 비해 박 목사의 트라우마는 드러나지 않았다. 다만 그가 성직에 있는 건 믿음보단 생계가 우선이란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믿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의심과 동거 중이다.

▲ 영화 <사바하> 스틸 이미지

​금화와 쌍둥이 언니 ‘그것’은 범신론(주자학, 이기이원론)-무신론-불가지론 대 유신론의 대립을 환유한다. 상어 중 난태생종 새끼는 어미의 뱃속에서 형제들과 적자생존의 사투를 벌인다. 금화는 자신의 다리 불구를 태아 때 ‘그것’이 상어처럼 자신을 물어뜯었기에 그렇다고 인식해 ‘그것’을 혐오한다.

금화의 식구처럼 모든 사람들은 ‘그것’을 귀신이라 부르고 악마라 여긴다. 이는 인종차별과 장애인에 대한 비뚤어진 시선 등의 사회적 차별과 왜곡을 은유적으로 비난하는 것이다. 사슴동산은 과연 이단일까? 부자들이 드나들고, 고급 커피를 마시는 스님이 있는 절에만 부처(불심)가 존재하는 것일까?

‘사바하’는 일부 기독교나 불교 신자들이 불편할 여지는 없지 않다. 하지만 배급사, 제작사, 감독 등이 바보가 아니라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신도를 거느린 쌍두마차를 자극함으로써 돈을 벌 수 있으리라고 오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신의 존재를 묻는 범신론적 입장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돈을 위해 사이비 종교와 싸우는 척했던 박 목사는 비밀과 신비주의와 의문투성이가 양파처럼 뒤덮인 사슴동산의 실체에 근접하곤 “나의 신이 뭐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라며 전의를 불태운다. 과연 눈에 보이고 경험한 게 전부일까(유물론, 경험론), 프로메테우스적 우주의 일부분에 불과한 걸까?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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