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mbn 화면 캡처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지난 14일 시작된 MBN ‘오늘도 배우다’는 세대 간, 이념 간의 분화와 대립이 첨예한 요즘 시대에 참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고, 그래서 뭔가 찡한 느낌을 주는 예능이다. 왜 촛불 대열과 태극기-성조기 부대가 대치하는지, 조부모와 손주의 대화는 어떻게 단절됐는지의 이분법적 이원론이 테제다.

정통 콩트 코미디와 시트콤이 사실상 역사의 뒤안길로 넘어간 뒤 예능 프로그램이 대세인 게 요즘 추세지만 예능의 지나친 홍수 속에서 자기복제와 커닝을 거듭하는 소모전으로 답보상태에 있는 것 역시 인정할 일이다. ‘오늘도 배우다’ 역시 그 한계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지만 캐스팅이 변별력이다.

김용건(75) 박정수(66) 이미숙(59) 정영주(48) 남상미(35). 70대에서 30대까지 1명씩인 이들은 10~20대가 이끄는 최신 트렌드에 도전함으로써 세대 차이를 극복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시대에 뒤떨어진 ‘아재’ 마인드와 아집을 버리고 생활과 문화의 변화에 동승해 ‘아직도 청춘’을 외치는 것.

제목은 다섯 베테랑 배우들이 하루하루를 배우로서 살아가는 정체성의 재확인과 더불어, 유행과 변화에 뒤진 ‘어른’들이 겸손한 자세로 젊은이들의 공시적 세태에 조심스레 노크를 한다는 중의적 표현이다. 김용건은 자신의 SUV에 올라타 선글래스를 착용한 뒤 오디오에서 모모랜드의 ‘뿜뿜’을 튼다.

▲ 사진=mbn 화면 캡처

중간에 이미숙과 박정수를 픽업하면서 손수 문을 열어주고, 미리 준비한 커피를 대접한다. 일찌감치 좌석 열선을 켜놓는 센스까지. 아이돌의 음악을 듣고, 젊은이 못지않게 멋을 부리면서 ‘남자란 동서고금을 통틀어 여자에게 이런 매너를 갖춰야 한다’라고 웅변하는 듯 도어맨 역할을 하는 신사의 태도.

2회에서 이들이 찾은 곳은 서울 해방촌. 서울 속의 외국이라는 이태원의 한 거리를 즐기기 위해 이들은 미리 SNS로 ‘맛집’과 이국적 펍을 검색했고, 그 순서대로 삼겹살과 첨단 유행을 즐겼다. 숱한 ‘먹방’이나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등이 연상되긴 했지만 고른 세대의 체험 예능이란 게 달랐다.

‘꽃보다 할배’처럼 할아버지 세대가 주도하는 예능도, 여배우들만의 수다도 아닌, 절묘한 조합으로 교묘하게 교양과 예능을 넘나들며 평양냉면 육수 같은 맛을 안겨준다. 리더는 당연히 김용건, 박정수, 이미숙이다. 이들은 서울 도심을 가르면서, 또 해방촌을 걸으면서 옛날 얘기로 추억을 되살린다.

연탄 개스에 중독된 자신에게 땅 냄새를 맡게 하기 위해 부모가 땅에 엎어놓거나 동치미 국물을 먹였다는 둥, PC가 없던 시절 딱지치기와 구슬치기를 즐겼다는 둥, 회상으로 지난 청춘을 그리워한다. 이미숙은 연인이 없어 강아지랑 놀고, 김용건은 아파도 하정우가 걱정할까 봐 알리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 사진=mbn 화면 캡처

이런 ‘단짠’ 음미의 반복 속에서도 결국 그들은 “배우는 외로워야 해. 작은 배역은 있어도 작은 배우는 없다”라는 김용건의 명제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 오늘도 배우임을 당당하게 선언하며, 20대의 문화에 도전하고 익힌다. 김용건이 명실상부한 리더라면 정영주는 단연 분위기 메이커다.

최근 SBS 드라마 ‘열혈신부’에서 악질 구청장 역을 맡아 안방극장에 눈도장을 확실하게 찍은 그녀는 활발하고 다소 센 기운을 발하는 캐릭터를 유지하면서도 결코 선배들을 앞지르지 않는 매우 영악한 호흡 조절을 보여준다. 삼겹살을 먹을 땐 강약을 섞지만, 펍에선 자제 없이 몸을 흔드는 식이다.

개별자는 전체 내의 다른 존재자들과의 관계에 따라 규정된다는 구조주의적 철학과 전체는 부분의 종합 이상의 의미이자 존재라는 예술적, 문학적, 심리적 게슈탈트(형태주의)의 느낌을 강하게 준다는 게 이 프로의 최강 장점이다. 잘 알고 있었지만 이런 환상의 조합을 낼 줄 짐작도 할 수 없었던 개인들!

세 연장자는 데뷔 때부터 주연을 꿰찬 뒤 융즉의 법칙(자신을 이상적 존재로 착각)에 도취돼 제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실력과 인성을 쌓지 못한 걸 후회하는 후배들에게 따끔한 충고를 전한다. 남상미는 “20대 때 어떻게 쉬는 줄 몰랐다”라며 실속 없이 바빴던 과거를 아쉬워한다.

▲ 사진=mbn 화면 캡처

그녀는 한때 ‘한양대 앞 버거 소녀’로 불리며 화려하게 데뷔해 독보적인 위치에 금세 오를 듯했지만 그런 성과의 문턱에 체류 중이다. 1980년대를 풍미한 이미숙은 누구보다 현실적인 조언을 내놓는다. 김용건은 “예전엔 이름도 없이 ‘야’로 불렸다"라고 회고하고, 박정수는 동조한다. 현실적 가르침!

뮤지컬 배우로 정상을 맛본 뒤 이제 안방극장을 본격적으로 점령할 태세인 정영주이지만 신데렐라를 꿈꿀 나이는 지났다. 한 명씩 떼어놓고 보면 배우로서 매우 중요한 존재이지만 사실 다른 배우로 대체가 가능하다는 데 완벽한 반대의 명증은 없다. 그러나 ‘오늘도 배우다’에 모인 ‘오배우’는 완벽하다.

오배우 역시 다섯 배우와 ‘오늘도 배우다’의 줄임말의 중의적 의미다. 이들은 그 명의로 SNS에 새 계정을 만들었다. 프로그램의 발전을 위한 논의의 장이자, 홍보의 수단이며, 선후배로서의 우정의 쉼터다. 이름보다 하정우 아버지와 정수기 광고가 더 익숙한 김용건과 박정수는 확실한 존재감을 보인다.

애시청자들은 왜 이들이 이제야 만났는지의 아쉬움보다 이제라도 즐겁다는 만족감이 더 크다. 그건 묘하게 삼각구도를 형성하는 이미숙의 가세가 있었기에 질감과 양감이 풍부해진 덕분이다. 청바지(청춘은 바로 지금)라는 신조어를 외치는 그들에게선 진정한 앞서가는 ‘선배’ 배우의 모습이 돋보인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