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박수룡원장의 부부가족 이야기] 결혼하기 전에 한 번쯤 물어야할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사랑에 인생을 걸지 말라'라는 것입니다. 한 젊은 부부의 사례를 들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사람이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맞나 의심스러울 때가 있어요.”

상담실을 찾은 젊은 남녀의 첫 마디였습니다. 이들은 양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했습니다. 어렵게 결혼한 만큼 행복하게 살자고 맹세했지만 현실은 기대와 달랐습니다. 교수가 꿈이었던 남자는 대학원 진학을 포기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생계를 책임지기 위한 자신의 선택이었지만, 때때로 자신의 꿈을 결혼과 맞바꾼 것 같은 느낌을 떨치기 어려웠습니다.

반면에 친구들보다 일찍 결혼하여 아이를 키우게 된 여자는 친구들이 취업하여 승진을 하고, 어학연수 삼아 해외로 떠난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자기만 뒤처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자격지심보다 정말 참기 어려운 것은 돈이 부족할 때마다 친정에 가서 잔소리와 돈을 바꿔오는 것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점차 싸우게 되는 일이 늘어났고 서로에 대한 실망감도 커져 갔습니다.한때는 서로를 가장 아끼는 사람들이었지만, 지금은 서로를 가장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실 두 사람은 서로의 처지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남자는 그녀가 자신과 결혼한 것을 후회하지 않을까 두려웠고, 여자는 그가 공부를 계속할 경우 자신이 감당해야 할 경제적 책임이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심정을 직접 표현하지도 않았고, 자신이 상대의 심정을 잘 알고 있다는 사실도 애써 드러내지 않고 있었습니다. 아는 체 하는 순간, 후회와 원망의 말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받게 될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불안과 두려움을 모른척하며 지내는 것이 마음에 큰 돌덩이를 안고 사는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삶조차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다만 여자가 남자와 다른 것이라면, 대화를 바라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여자는 대화를 할 수만 있다면 아무리 힘들어도 사랑을 지킬 수 있었는데, 남자는 묵묵히 참는 것으로 자신의 사랑을 표현했던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은 서로 말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둘 다 상대에 대한 미안함과 함께 가난 앞에서 자신의 사랑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 좌절감은 사랑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이어졌고, 두 사람은 각자 자신의 두려움을 상대에게 ‘투사’하여 상대의 사랑이 변한 것으로 느끼고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서로의 겉모습, 즉 남자는 여자의 잔소리에서 그리고 여자는 남자의 냉담한 태도에서 상대가 달라졌다고 생각했으나, 상담을 통해서 각자 속마음의 사랑은 변하지 않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사랑을 재발견한 후에야 이들은 비로소 자신의 힘든 사정을 털어놓을 수 있었고, 또 나아가 서로를 위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비록 당장의 가난을 물리칠 수는 없었지만, 이들에게는 자신들의 사랑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자산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소중한 사랑을 지켜가기 위해서는 두 사람이 협력해야 한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누구에게든 현실은 기대와 다르게 다가옵니다. 특히 사랑에 인생을 걸었던 사람일수록 현실과 기대의 차이는 큽니다. 현실에서 기대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사랑이 변했다고 단정하거나 실망할 이유는 없습니다. 이 부부의 사례처럼 서로의 기대와 현실을 잘 조화시키면 새로운 사랑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 박수룡 라온부부가족상담센터 원장

[박수룡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 전문의 수료
미국 샌프란시스코 VAMC 부부가족 치료과정 연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겸임교수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현) 부부가족상담센터 라온 원장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