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성현석의 푸드 에세이] 냉면은 겨울음식이다. 적어도 냉장고가 개발되기 전까지는 그렇다. 그러나 냉장고 보급으로 냉면 육수 맛을 오래 유지할 수 있어서 사계절 전천후 음식으로 발전했다. 냉면이란 요리세계의 안으로 들어가 보면 다양함이 돋보이는 음식이다.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꿩고기, 동치미, 백김치 국물들을 지역마다 입맛에 따라 섞어가면서 발전시켰다.

고명도 육수에 썼던 고기를 제육이나 편육으로 썰어 올리고 무, 배추, 오이 등과 계란 지단 등으로 특색을 나타낸다. 고종이 좋아했던 냉면에는 시원한 배가 그릇을 덮었고 잣이 듬뿍 뿌려졌다. 이렇듯 모든 음식이 그렇지만 얽매임 없이 주변에서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식재료를 활용해 하나의 문화를 만드는데, 평양냉면 역시 그렇다.

앞으로 평양냉면 이야기를 몇 차례 하려고 한다. 평양냉면은 프랑스 타이어회사 미쉐린이 발행하는 미쉐린 가이드 2019년 판에도 7개 업체나 올라있는 주요 한식이다. 한식 세계화에 이름을 앞세울 수 있는 메뉴다.

▲ 3회에 걸쳐 미쉐린 가이드 빕 구르망에 오른 평양냉면 면옥을 두루 다닌다. 첫 번째로 지난 2월 강남권에 위치한 봉피양, 진미평양냉면, 능라도를 다녀왔다. 다음번에는 강북권을 두 차례 더 방문할 예정이다.

진미평양냉면·봉피양·능라도 등 강남권 3곳 방문

필자는 3회에 걸쳐 미쉐린 가이드 빕 구르망에 오른 평양냉면 면옥을 두루 다닐 예정이다. 첫 번째로 지난 2월 하순 강남권에 위치한 진미평양냉면, 봉피양, 능라도를 다녀왔다. 다음번에는 강북권을 두 차례 더 방문할 예정이다. 이번 평냉투어에는 익명을 요구하는 음식평론가와 식품회사 관계자, 인스타그램에 팔로어가 4500여명에 달하는 ‘냉면덕후’ 정상훈 씨가 동행하며 맛을 논했다.

주영하 <식탁위의 한국사>에 따르면 ‘평안도가 봄밀 농사가 남부 지역보다 수월했을 뿐 아니라, 압록강을 맞대고 있던 중국의 동북지역인 만주가 겨울밀 산지였기 때문에 밀가루도 제법풍부한 편이었다. 그래서 식민지 시기 평양에는 온반과 같은 국밥을 판매하는 음식점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음식점에서 메밀가루나 밀가루로 만든 음식을 끼니음식으로 판매했다. 이런 면에서 평안도의 면옥집은 서울의 국밥집에 맞먹었다’고 했다.

서울의 평양냉면 역사는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청계천 북쪽에만 40여 곳이 넘는 냉면집이 있었다. 1910년대 제빙기술과 겨울 얼음을 여름까지 보관할 수 있는 장빙기술 발달 덕에 외려 여름음식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한여름 더위를 식히는 찬 음식의 대표주자가 된 것이다. 그러다가 한국전쟁 후 월남민들에 의해 서울에 평양냉면 면옥이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이때 생겨난 곳이 우래옥, 의정부평양면옥, 장충동평양면옥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남북정상회담 만찬에 등장…평양냉면 신드롬

지난해에는 평양냉면이 국민의 관심을 끌었던 역사적인 ‘이벤트’가 있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 장에 평양냉면을 가져와서 문재인 대통령을 대접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 27일 김 위원장은 오전에 시작된 남북 정상회담 모두발언 도중 북한 옥류관 평양냉면을 가져 왔다고 밝혔다.

이는 문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만찬 메뉴로 옥류관 평양냉면이 좋겠다는 제안을 김 위원장이 수용한 것이다. 이날 평양냉면은 평양 옥류관 수석요리사가 직접 통일각에서 만들었다. 이를 정상회담장인 평화의집으로 배달해 양 정상이 먹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전 국민이 보면서 평양냉면 신드롬을 불러 일으켰다. 미쉐린 가이드는 이를 반영하듯 평양냉면 면옥 7곳을 빕 구르망(3만5000원 이하 좋은 음식을 제공하는 맛집)에 선정했다.

베트남에서 2차 북미정상회담이 끝나면 남측에서 2차 남북정상회담이 기대되면서 또 한 번의 평양냉면 신드롬을 예고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서울에 있는 평양냉면을 맛보여줄 것인지 미지수지만 남북정상 회담 자체가 면옥집을 붐비게 하지 않을까 기대된다.

진미평양냉면, 소다향 강한 쫄깃한 면발 성공적 정착

가장 먼저 찾은 진미평양냉면의 경우 미쉐린 평가원은 “유명 평양냉면 식당에서 쌓은 20년의 경험과 노력의 결과물이 바로 진미 평양냉면이라 말하는 임세권 셰프. 그는 고객이 만족할 만큼 맛있는 냉면을 만드는 것이 첫 번째 목표이고, 언제 찾아도 한결같은 맛을 즐길 수 있게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한다. 다른 어떠한 요소 없이 오직 맛으로만 승부하고 싶다는 그의 마음가짐에서 20년 냉면 장인의 고집스러움이 느껴진다. 냉면 외에도 편육, 제육, 불고기 같은 냉면집 단골 메뉴를 비롯해 접시 만두와 어복쟁반, 온면도 맛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진미평양냉면은 평양면옥 양대 계열인 의정부와 장충동 계열 중 장충동평양면옥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임 대표가 장충동 계열 면옥집에서 오랫동안 근무했기 때문이다. 메뉴판에는 ‘20년 장인의 평양냉면 전문’이란 슬로건을 적어 놨다.

원산지 표시에 따르면 메밀은 미국산과 중국산을 쓴다. 면에서는 특유의 소다향이 났다. 을밀대와 비슷한 맛이 느껴졌다. 소다는 면의 탄성과 반죽의 편리함과 면이 쉽게 불지 않게 해준다. 업소 관계자는 메밀 70%와 나머지는 전분을 사용한다고 했다. 필자는 밀가루도 함께 사용하는 것으로 판단한다. 이유는 면 색깔이 약간 노란색이기 때문이다. 메밀 순도가 높은 면과 달리 쫄깃한 식감과 소다향은 공장면에 익숙한 소비자 입맛을 잡는 데 성공했다.

11시10분에 도착했는데 이미 두 테이블에 네 식구 한 가족과 혼냉족(혼자 온 손님)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11시 반경이 되자 여덟 테이블에 혼냉족이 다섯 명이나 됐다. 이들은 점심 피크타임을 피해서 일찍들 온 것이다. 평냉족(평양냉면을 좋아하는 사람)의 기본 매너다. 그만큼 진미평양냉면은 점심시간에 붐빈다는 반증이다. 무작정 매장을 넓히기보다 적당히 웨이팅을 하게 하는 것도 전략적으로 필요하단 생각이다.

봉피양, 견고한 육수가 만든 크리에이티브한 냉면

미쉐린 가이드 평가원은 봉피양(방이점)에 대해 “벽제갈비에서 운영하는 봉피양의 본점으로 평양냉면과 돼지갈비가 유명한 곳이다. 하지만 봉피양의 명물은 뭐니 뭐니 해도 평양냉면이다. 무엇보다 진한 냉면 육수의 깊은 육향과 은은한 향이 매력적인 순도 높은 메밀 면의 조화가 훌륭하다. 봉피양의 평양냉면이 지금의 명성을 얻기까지는 김태원 조리장의 숙련된 경험과 벽제갈비의 오랜 연구 및 노력이 있었다. 냉면의 특성상 계절을 타는 메뉴이기는 하나, 늘 문전성시를 이루는 곳이라 식사 시간엔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평가원의 말대로 봉피양은 피크타임에 자칫 기다릴 가능성이 높다. 본점 주변에 건물들을 얻어 신관, 별관을 늘렸지만 필자가 간 날은(월) 본관만 꽉 차고 신관2곳은 비교적 한산했다. 강북에 우래옥이 있다면 강남엔 봉피양이란 자존심이 강한 곳이다.

우래옥 출신 김태원 조리장을 영입해 새로운 냉면 맛을 만들었다.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육수 맛이 복잡다양 하지만 소고기가 중심을 잘 잡고 있다. 그래서 식초나 겨자를 섞어도 결국에는 육향을 느낄 수 있는 견고한 맛을 담고 있다. 다른 냉면집은 오직 고기육수의 느낌이라면 봉피양은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 복잡 다양한 맛을 내는 크리에이티브한 냉면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봉피양은 벽제갈비라는 강력한 고기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이처럼 고기와 평양냉면이 강한 브랜드는 우래옥, 서경도락 세 곳이라고 생각한다.

능라도, 소고기 육향 강한 순수한 육수가 매력적

미쉐린 가이드 평가원은 능라도에 대해 “판교에 본점을 두고 있는 평양냉면 전문점으로, 2015년 11월에 서울점을 오픈했다. 냉면과 만두, 어복쟁반을 기본으로 평양식 요리를 선보이는 능라도는 최상급 한우와 몽골산 메밀만을 고집할 정도로 재료와 음식의 품질에 대한 고집이 요리 맛에 그대로 반영돼 있다. 고객들이 능라도의 다양한 음식을 접할 수 있도록 몇몇 요리는 작은 사이즈로 판매한다. 현대적이고 깔끔한 다이닝 공간에서 평양식 요리를 즐기기에 제격인 곳이다.”라고 평가했다.

능라도는 소고기 베이스 육수 냉면집 중에 우래옥, 봉피양, 서경도락 다음으로 진하다. 다른 업소는 고기육수에 야채육수와 조미를 통해 각 재료의 맛이 한가지로 표현이 되지만, 능라도 육수는 소금 맛을 느낄 수 있었다. 달리 말해 ‘복잡 다양하지 않는 소고기 육수의 순수미’를 가졌다고 표현하고 싶다. 이는 능라도만의 매력이다. 2011년 경기도 성남 판교에서 개업한 능라도는 강남, 마포 등에 분점을 냈다. 미쉐린가이드는 서울판이기 때문에 성남 본점 대신 강남점이 선정된 것이다.

능라도는 지난해 뉴욕 시내 전광판에 광고를 송출해서 깜짝 화제가 됐다. 이는 김영철 대표가 창업 때부터 꿈꿨던 소망이었다고 한다. 그는 사업이 잘 되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전광판에 식당 광고를 내겠다는 결심을 했다는 것이다. 서경도락도 뉴욕타임즈에 전면 광고를 싣는 날을 꿈꿔 본다.

▲ 성현석 서경도락·장수가 대표

[성현석 대표]
- 평양냉면·불고기 전문점 <서경도락> 대표
- 삼겹살·부대찌개 전문점 <장수가> 대표
- 푸드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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