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박창희의 건강한 삶을위해] 잡종견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발음이 쉽고 어감이 정겨운(?) 똥개다. 식사를 앞둔 독자에겐 죄송하다. 똥이 더럽거나 부정의 의미로 쓰이긴 하지만 입에 달라붙는 찰진 단어임엔 틀림없다. 작년에 태어났다는 먹구는 우리 집 애완 똥개다. 거무튀튀한 강아지 먹구를 필자에게 판 할머니는 놈이 태어난 시점을 추정할 뿐이다.

길을 가다 할머니 발에 채이며 울고 있는 강아지가 가여워 필자는 차를 세웠다. 허름한 가게에서 잡화를 팔며 힘겹게 사는 노인에게 맞고 사느니 우리 집에 가자. 할머니와 강아지 모두에게 그편이 낫겠다고 판단한 필자는 개 주인과 흥정을 한 후 세종대왕 세 장과 작은 생명체를 바꾼다. 맥도널드의 드라이빙 쓰루 서비스처럼 차에 앉은 채 이뤄진 거래다.

조수석에 앉아 있는 강아지를 운전 중 흘낏 보니 녀석 역시 삽시간에 바뀐 주인을 낯선 듯 쳐다본다. 특이하게 한쪽 귀만 접힌 강아진데 매 맞은 직후라 눈가가 아직도 젖어있다. 접힌 귀를 펴줄까, 선 귀를 마저 접어줄까 물으니 녀석은 대답이 없이 낑낑거린다. 처진 눈꼬리에 뭉툭한 입을 하고 있어 전반적으로 과묵하고 착해 보인다. 가운뎃손가락으로 접힌 귀를 튕겨봤더니 즉시 접힌 상태로 돌아오는데 녀석은 그러거나 말거나 무반응이다.

집에 돌아와 강아지를 마당에 풀어 놓으니 녀석은 조금 전까지 맞던 기억을 잊은 듯 신나게 풀밭을 뛴다. 문득 필자는 실내에서 키우던 말티즈를 분양 두 달 만에 하늘로 보낸 아픈 기억을 떠올린다. 주사기로 비타민을 주고 정해진 사료만 먹여야 하는 공산품처럼 유약한 개였다. 야생의 동물을 따뜻한 실내에서 인간의 품에 안겨 재롱을 떠는 장난감으로 전락시키기 위해 인간은 많은 연구를 했을 것이다. 교잡 및 이종 교배를 통해 주먹만 한 티컵 강아지가 탄생하기도 한다. 주인이 주는 먹이를 받아먹고 함께 이불을 덮고 잠들며 야생성을 상실한 녀석들은 인간의 보살핌을 상실하면 불과 며칠도 버티기 힘들다.

우리 가족의 첫 번째 반려견이던 깡지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세상을 떠났다. 가축병원에서 귓속의 털을 뽑힌 녀석은 이후 시름시름 앓다 죽었는데 필자의 상식으론 이해가 힘든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개의 귀 청소를 해주고, 손(?)발톱을 깎아 주며, 항문낭을 짜줘야 하는 등 인간의 역할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다는 것이다. 반려견을 가족처럼 여기는 사람에게 일종의 역할을 부여하고 그것이 현실적으로 힘든 틈을 가축병원이 파고들어 애견인의 수고를 덜어주는 모양새다.

늑대 새끼를 데려다 길들인 인간은 이제 스스로 그 개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다. 살려보려 숱하게 병원을 찾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귀의 털을 뽑힌 강아지가 음식을 거부하고 죽어갈 때 원인의 단초를 제공한 가축병원의 수입은 늘어나고 있었다. 집사람과 쌍둥이들은 어린 강아지를 거실에서 키우자고 하지만 묵묵부답인 필자는 검다하여 이름 붙인 먹구를 바라보며 예전 시골에서 흙을 뒹굴며 거칠게 뼈다귀를 뜯던 시골 개를 떠올린다.

강아지는 첫날부터 마당 한구석 밭에서 혼자 잠들었는데, 엄마를 찾는 듯 애처로운 울음소리가 며칠이 지나자 그친다. 새벽녘에 현관문을 열면 풀을 핥고 다니던 녀석은 나를 보고 부리나케 달려온다. 힘겹게 오른 계단을 내려갈 땐 구르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강아지는 인간의 아기와 다르지 않아 호기심으로 충만하다. 밭에 떨어진 방울토마토를 던져주면 녀석은 입속에 넣어 굴리고 뱉기를 반복하다 결국은 발로 밟아 터뜨린다.

영양 및 생리학을 전공한 필자는 야생에서 들개가 먹던 것들을 유추해 녀석에게 무엇을 먹일 것인가 고민 끝에 주메뉴를 결정한다. 많은 이들이 개에게 급식하기를 꺼리는 이것을 필자는 개에게 주기로 했다. 아무리 인간에게 길들었다 하더라도 개는 결국 회생 늑대의 아종이자 야생 동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다음 호에 계속.

▲ 박창희 교수

[다이어트 명강사 박창희]
-한양대학교 체육학 학사 및 석사
-건강 및 다이어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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