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캡틴 마블>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MCU 마니아들의 최대 관심사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사라진 어벤져스가 ‘엔드 게임’에서 어떻게 부활해 타노스를 어떤 방식으로 물리쳐 우주의 절반의 생명체를 부활시키는지에 있을 것이다. 그 연결고리로 널리 알려진 ‘캡틴 마블’(애너 보든, 라이언 플렉 감독)은 그래서 관심이 클 수밖에.

지구력 서기 1995년. 우주 저편에선 크리 족과 스크럴 족이 전쟁 중이다. 미국 공군 파일럿이었던 비어스(브리 라슨)는 무슨 연유에선지 크리 족 정예부대 스타포스의 일원이 돼있다. 부대장 욘-로그(주드 로)의 지도 아래 분노를 조절하고 순수한 포스(?)로 전투력을 증대시키는 법을 익히는 중이다.

스타포스는 스크럴에게 잡힌 동료를 구출하는 작전에 투입됐다 자유자재로 변신이 가능한 적들의 계략에 속고 비어스는 생포된다. 비어스는 초능력을 발휘해 탈출에 성공하지만 우주선을 파괴하는 바람에 ‘더럽고 냄새나는 행성’ C-53(지구)의 미국 ‘블록버스터’란 비디오 대여점 지붕 위에 떨어진다.

이제 막 쉴드 데스크가 된 닉 퓨리(새뮤얼 L. 잭슨)가 현장에 출동해 그녀의 지구 적응을 돕는다. 욘-로그가 지구로 날아오고, 탈로스를 리더로 한 스크럴도 지구로 몰려든다. 간신히 욘-로그와 연락이 닿은 비어스는 스크럴과 전쟁을 벌이는 가운데 명멸하는 기억 속에서 자신의 과거를 되찾는데.

▲ 영화 <캡틴 마블> 스틸 이미지

영화는 대의적 2가지 의미, 2가지 주제를 지닌다. 의미는 캡틴 마블의 시작과 ‘엔드 게임’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다. 주제는 자아 찾기와 페미니즘이다. 캡틴 마블의 탄생을 알리는 기능은 4가지 의미와 주제 중 가장 약한 건 사실이다. 탄생의 배경과 과정과 완성은 인과율보다는 모호성이 강하다.

그러나 ‘엔드 게임’으로 가는 징검다리로서의 역할은 매우 훌륭하다. 전편의 후반부에서 퓨리가 무선호출기로 캡틴 마블에게 도움을 청한 장면은 앞으로 어벤져스가 어떤 반전을 펼칠지 기대하는 관객들의 욕구 충족으로 가는 정규 노선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건 이 작품의 쿠키영상과 연결된다.

왜 캡틴 마블이 어벤져스의 희망인지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지구의 주체의식이 강한 파일럿이었던 캐럴 댄버스는 크리 전사 비어스가 된 이후에도 여전히 의욕만 앞설 뿐 사유가 부족해 판단력이 결여돼있다. 영화의 모든 장치는 그런 그녀가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나가는 데 기능한다.

눈앞에 드러난 현상과 형상에 대해 자신의 직관만 믿었던 댄버스는 진실을 바라볼 줄 아는 개안의 과정에서 포스만으로 이기는 법, 자신만의 주먹 광선을 사용할 때, 잠재력을 표출할 줄 아는 자제력 사용법 등을 깨우치며 슈퍼 히어로로 거듭난다. 설명은 부족하지만 개연성은 수용할 만한 전개다.

▲ 영화 <캡틴 마블> 스틸 이미지

영화는 내내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다. 지구의 파일럿 댄버스, 크리족 전사 비어스, 지구를 지키는 영웅 캡틴 마블 등 캐럴의 성장 단계는 기재했던 본래적(근원적) 존재, 비본래적(일상적) 현존재, 도래할 본래적(항구적) 존재를 의미한다. 캡틴 마블은 적재적소를 뛰어넘은 초월적 극복인을 상징한다.

그런 점에서 미국을 지킴으로써 지구를 방위하는 캡틴 아메리카와는 수준과 사이즈가 다르다. 이 영화가 강력한 페미니즘 성향인 이유다. 어벤져스의 맏형이자 여자 팬들의 ‘오빠’인 캡틴 아메리카의 차원을 뛰어넘는 존재다. 손바닥에서 디지털 장풍을 쏘고 하늘을 날아 탄도미사일을 내던진다.

그녀가 크립톤에서 온 ‘쫄쫄이’보다 못한 건 시간을 거스른다거나 눈에서 레이저 광선을 쏠 수 없다는 것뿐. 하지만 그건 닥터 스트레인지와 아이언맨이 대신해줄 수 있으니 앞으로 어벤져스의 중추신경이 되는 역할에만 전념하면 될 듯하다. 그게 곧 여자의 사회적 활약이란 자아 찾기다.

그런 맥락에서 그녀의 파일럿 동료였던 램보는 일반적 캡틴 마블이다. 우주로 나아가기 위해 캡틴 마블은 램보에게 보조 조종사를 제안하지만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여성성에 주눅 들어 있던 램보는 지레 겁을 먹고 거부한다. 그런데 2대 캡틴 마블이 될 딸 모니카의 설득으로 마음을 바꾼다.

▲ 영화 <캡틴 마블> 스틸 이미지

이 영화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이리저리 흩어져있던 MCU의 퍼즐들을 꿰맞추는 게임의 마무리 단계라고 할 수 있다. MCU가 천연덕스럽게 유럽신화를 차용했다면 이번엔 유대인의 역사를 슬며시 집어넣는다. ‘살 곳’을 찾아 헤매는 스크럴은 팔레스타인 사람과 영토분쟁 중인 유대인이다.

스크럴을 철천지원수로 여겼던 비어스가 캡틴 마블이 되는 과정에서 마음을 바꿔 탈로스를 돕고 거기에 흑인인 퓨리와 램보가 동행하며 영국 출신 주드 로의 욘-로그가 그들을 제거하려는 설정은 누가 봐도 세계의 역사다. 물론 욘-로그의 편에는 흑인(코라스)도, 황인(미네르바)도 있다.

유럽과 미국의 다인종, 다문화 및 헬레니즘을 반영한 구도다. 게다가 라슨의 조상은 유대인이다. 욘-로그는 비어스를 훈련시키는 과정에서 시종일관 그녀의 실력을 입증해보라고 주문한다. 마지막까지 그걸 요구하지만 캡틴 마블이 된 그녀는 “내가 왜 네게 나를 증명해야 하지?”라고 코웃음 친다.

그건 여자들이 남자들과 동등하게 사회적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 달라는 남자들의 목소리를 일축하는 여성 해방의 함성이다. 더불어 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되찾아야 하는지에 대한 수사학일 수도 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나 ‘어벤져스’를 기대하지 않으면 꽤 재미있다. 상영 중.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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