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인간만의 욕심과 양심, 탈법과 공리주의 [유진모 칼럼]

유진모 칼럼니스트l승인2019.03.13l수정2019.03.13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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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돈>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인류가 문명과 문화로 거듭 번영해온 이래 국가는 공화제, 참주제, 과두제, 왕정제, 민주주의, 사회주의 등의 탈바꿈을 거치며 결국 자본주의를 맹주 자리에 앉혔다. 자본주의를 선택한 주체가 인류든 국가든 과학이 철학과 종교보다 합리적인 현대에서 모든 가치관이 돈으로 귀결되는 건 현실이다.

대한민국 증권 1번지 여의도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돈’(박누리 감독)의 소재는 그다지 새롭지 않지만 주식 문외한에게도 플롯이 어렵지 않으면서 내용은 매우 심오하다는 게 강점이다. 욕망과 선택, 현실과 양심의 대립을 매우 긴장감 넘치는 서사로 펼쳐나가는 액션 없는 통쾌한 액션 스릴러다.

지방대학 출신에 ‘빽’도 없는 일현(류준열)은 코스피 전 종목을 달달 외운 노력으로 업계 1위 동명증권에 주식 브로커로 입사한다. 그날그날 장 마감 때의 실적으로 인격이 평가되는 냉철한 조직 분위기 내에서 연줄이 없어 매번 꼴찌에서 허덕이는 그에게 과장 민준(김민재)이 슬며시 다가온다.

그가 소개해준 사람은 업계에서 전설로 불리는 ‘번호표’(유지태). 번호표는 본명은 물론 존재 자체가 불분명하지만 돈을 노리는 사람들이 번호표를 받고 기다릴 정도로 ‘작전 설계’의 귀재다. 설레는 마음으로 번호표를 만난 일현은 그의 지시대로 ‘작전’을 수행하고 단번에 사내 에이스로 부상한다.

▲ 영화 <돈> 스틸 이미지

이제 그는 ‘갑’인 펀드 매니저에게 굽실거릴 이유도, 상사의 눈치를 살필 사연도 없다. 번호표의 지시만 따르면 한 번에 수십억 원의 실적을 올려 회사에 기여하고, 거기서 정당하게 수억 원의 수수료를 받음으로써 300만 원의 월급은 ‘껌 값’으로 치부해도 될 만큼 통장을 불려나가는 중이다.

시골에서 농사짓는 부모에게 물량공세를 쏟아붓고 회사 근처 으리으리한 빌라로 이사도 했다. 바하마 제도 비밀 계좌엔 어느새 17억 원이 쌓였다. 그런데 금융감독원 내에서도 ‘사냥개’로 불리는 자본시장 조사국 수석검사역 지철(조우진)이 오래 번호표를 쫓던 중 일현에게서 ‘냄새’를 맡고 붙는다.

일현은 이를 번호표에게 보고하지만 번호표는 태연하게 ‘아무 일 없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며 점점 더 판을 키워간다. 그런데 민준에게 번호표를 소개해줬던 예전 그의 상사 창규가 의문의 자살을 한 뒤 번호표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브로커들의 미심쩍은 자살이 줄줄이 일현에게 포착되는데.

영화의 주인공은 제목과 달리 제각각의 역할을 맡은 배우들인데 그중에서도 류준열-유지태-조우진이 구성한 조합은 놀랄 만큼 빛난다. 파우스트(일현)-메피스토펠레스(번호표)-정의와 양심(지철)이란 현실적 구도. 류준열은 이제 ‘원톱’으로 나서도 하나도 어색할 게 없는 존재감과 연기력을 과시한다.

▲ 영화 <돈> 스틸 이미지

전형적인 소시민의 외형과 부를 좇는 욕심을 불태우는 내면세계의 구현은 정말 현사실적이다. 라스 폰 트리에의 ‘살인마 잭의 집’에 카메오로 등장한 데 이어 ‘사바하’에서 악마적 옴므 파탈 캐릭터로 관객을 놀라게 한 유지태는 ‘올드보이’의 우진과는 또 다른 지옥도의 주인공을 완성했다.

매 작품마다 선과 악을 번갈아 넘나드는 조우진은 전혀 피로감을 주지 않을 만큼 매우 높은 캐릭터 완성도를 보여준다. 전작에서 악역을 연기한 배우가 맞는지 의심이 들 만큼 날선 정의감을 아주 자연스럽게 소화했다. 김재영, 김민재, 정만식, 원진아까지 어느 누구의 손을 들어줄 수 없을 만큼 치열하다.

주식은 자본주의의 양면성에 대한 전형적인 모델이다. 사유재산권에 대한 고민은 민주주의를 실행한 선진적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존재했었다. 철학과 이념과 경제에 한 획을 그은 마르크스의 역사적 유물론으로 획기적인 전환기를 맞을 뻔했지만 이미 기득권을 쥔 자본가들은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주식 및 그의 거래는 합법적이지만 금융감독원이란 별도의 경제적 감시 기구가 존재할 정도로 함정도 많다. 그래서 주식거래를 정상적인 수익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이와 반대편에서 투기로 여기는 이가 공존한다. 영화는 ‘작전’이 불법이라는 식의 교과서적인 교훈의 설파에 집착하지 않아 깔끔하다.

▲ 영화 <돈> 스틸 이미지

집중하는 곳은 욕심의 임계점과 양심의 기준점이다. 법 자체가 완벽하지 못한 이유도 있긴 하지만 부자들 중에서 털어서 먼지 안 나올 사람이 몇이나 될지에 대한 의문은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일현의 폭주는 자본주의란 구도 아래에서 빈자가 꿈꿀 수 있는 유일한 변전적 점프의 행동주의다.

개천엔 용이 없고, 지렁이만 우글댄다. 일현이 정의와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한 그의 통장은 산술급수적일 뿐 절대 기하급수적일 수 없다. 큰돈을 만진 뒤 외제차를 사고, 애인과 고급 레스토랑에서 데이트를 할 때, 그리고 바하마의 은행에서 예치금을 확인할 때 그는 성취감과 행복에 들떠있다.

그게 자본주의의 추한 이면이다. 사유재산의 정도를 어디까지 인정할지에 대한 고민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축재하느냐에 대한 사회적, 국가적 감시망이 중요하다는 게 영화의 주제다. 욕심과 양심 사이에서 어떤 선택이 바람직할지에 대한 고민이 영화가 던지는 테제다. 정의와 이성에 대한 고뇌.

세상을 개관하며 돈에 대한 독단적 욕구에 자아를 내맡길 것인가, 진실재에 대한 사랑을 내적 인격으로 삼아 공리주의(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를 창도할 것인가? “어디까지가 불법이고, 합법인데?”라는 번호표를 받고 악마를 기다릴 것인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진리(신)를 믿을 것인가? 15살. 3월 20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유진모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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