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 황금소 아니어도 우상은 많다는 압도적 스릴러 [유진모 칼럼]

유진모 칼럼니스트l승인2019.03.14l수정2019.03.14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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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우상>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영화 ‘우상’(이수진 감독)은 상업적 외형에도 불구하고 메타포와 알레고리로 점철된 시퀀스로 이룬 플롯이 꽤 심오하고, 대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핸디캡 때문에 예술성을 제대로 평가받을지 살짝 우려가 드는 미스터리 스릴러다. 시종일관 음울하고 몽매주의적인 주인공들을 얼마나 이해할까?

도의원 구명회(한석규)는 청렴한 도덕성으로 시민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으며 강력한 차기 도지사감으로 부상 중이다. 해외 출장을 다녀와 집으로 돌아오니 아내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군 복무 중 휴가를 나온 아들이 그의 승용차로 신혼여행 중인 부남을 치어 죽인 뒤 그대로 싣고 집으로 온 것.

명회는 별 망설임 없이 아들을 경찰에 자수하게 한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유중식(설경구)의 유일한 희망은 아들 부남이었다. 언론과 경찰은 단순 사고사로 처리하려 하지만 중식은 사고 현장에 조선족 며느리 최련화(천우희)가 있었는데 사고 후 행방이 묘연한 점을 의심해 자체 조사에 나선다.

련화는 임신 중이었다. 중식은 홀로 쓰러져가는 사무실을 운영하는 후배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사건을 재조명하는 동안 명회 측이 은폐하려 했던 게 뭔지 어슴푸레 윤곽을 잡아간다. 련화의 존재를 알고 몸이 단 명회도, 진실 규명이 절실한 중식도 모두 행방을 감춘 련화를 찾는 데 총력을 쏟는다.

▲ 영화 <우상> 스틸 이미지

과연 그날 현장엔 누가 있었고,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련화는 왜 잠적한 것일까? 아니면 누가 그녀의 존재를 숨겨주는 것일까? 영화는 대놓고 프랜시스 베이컨의 우상론을 전면에 배치한 채 부조리투성이인 이 사회를 해체하고, 조롱한다. 어쩌면 세 주인공은 베이컨을 분해한 캐릭터일 수도 있다.

베이컨은 서양 철학자 중 최고위 관직에 올랐을 만큼 권력욕이 강했고, 그래서 권력에 굴복했으며, 부패와 손을 잡았다. 그러나 ‘노붐 오르가눔(신기관)’의 귀납법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에 맞서는가 하면 눈의 부패 지연을 증명하려다 죽음을 맞는 등 철학의 연구 및 성과에 크게 기여했다.

고전경험론의 창시자인 그는 ‘관찰과 실험에 바탕을 두지 않은 명제는 우상일 뿐’이라는 언명 하에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된 ‘종족의 우상’, 개개인의 특성과 환경에 의한 ‘동굴의 우상’, 왜곡된 언어나 헛소문 등이 만든 ‘시장의 우상’, 권위나 전통에서 자라난 ‘극장의 우상’ 등의 표제를 내걸었다.

우상은 곧 편견과 선입견 등을 의미한다. 명회는 일반화된 베이컨의 자아 중 권력욕과 표리부동의 양면성이다. 세금을 아낀다며 일반석을 이용할 정도로 청렴결백하고, 고민 없이 아들을 자수시킬 만큼 정직하며, 매우 예의 바르다. 그러나 이 모든 건 더 높은 자리에 오르려는 포장일 뿐, 내면은 추악하다.

▲ 영화 <우상> 스틸 이미지

그는 동굴 안에서 면벽만 했기에 편견투성이로써 ‘동굴의 우상’을 섬겼고, 정치인으로서 성장해 이제 스스로 헛소문으로 혹세무민하는 ‘시장의 우상’이 돼 종당에는 ‘극장의 우상’이 되려 한다. 중식은 ‘종족의 우상’을 섬기지만 인본주의적 측면이 강할 뿐 핏줄에 대한 애틋함은 순수할 따름이다.

중국에서 범죄를 저지른 뒤 한국으로 도피한 련화에게는 우상이 존재하지 않는다. 철저한 현실주의자인 그녀는 오직 생존이 목적이다. 따뜻한 삼시 세끼에 아늑한 공간이 주어진다면 못 할 게 없다. 그녀가 믿는 건 신이 아니라 도망칠 때 육신을 보호해주고, 추진력을 더해주는 신발일 따름이다.

영화는 초반 명회의 복잡한 심리 묘사와 내면의 연구에 몰두하는 듯하더니 이내 중식의 애끓는 부정과 집착을 예리하게 구성한다. 두 캐릭터의 대립에 집중하려는 순간 어느새 련화가 간직한 비밀에서, 그리고 중식의 아내와 시어머니의 묘한 관계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하게 된다.

환경에 적응하고, 본능이 이성을 잠재운 동물의 세계에선 사건이나 사고가 없다. 생존의 자연법이 지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뭐든지 의인화하려는 ‘종족의 우상’이 깊게 파고든 인간세계에선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사건사고가 발생한다. 충동적일지라도 근원적으로 ‘동굴의 우상’에 의한 욕망이기 때문이다.

▲ 영화 <우상> 스틸 이미지

사회 지도층이란 작자가 거대 지배력을 가진 우상을 섬김으로써 환원주의를 오역한 신인동혈설로 나아가 자신을 동일시함에 따라, 우상에 대한 믿음이 없거나 비교적 적거나 작은 우상을 섬겨온 소시민들의 소소한 삶을 파괴하는 시퀀스는 익숙하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궤멸적인 톤이 변별력이다.

강렬한 액션은 없지만 비주얼은 잔인하다. 스스로 앞머리를 자르는 련화는 메두사의 역설이다. 메두사는 미녀로 태어났다. 그러나 포세이돈과 아테나 신전에서 사랑을 나눔으로써 지은 신성모독죄와 아테나와 견줄 만한 미모를 타고난 불경죄 때문에 처녀 신 아테나에 의해 흉측한 마녀로 변모된 것이다.

여기서 감독의 음흉한(?) 의도가 엿보인다. 우리가 주변인 누구를 손가락질하거나 하찮게 여김으로써 고유의 장점이 훼손된 그 존재는 거울자아이론에 따라 그런 사회적 평가로 인격을 형성한다는 경고다. 즉, 겉으로 점잖은 거대 범죄자가 평온하게 살던 소시민을 범죄자로 만든다는 무서운 이론.

한석규와 설경구의 연기력은 거론의 여지가 없다. 한석규는 차갑고 정적인데 무겁고, 설경구는 뜨겁고 동적이어서 가볍다. 이에 비교해 천우희는 절대 뒤지지 않는 연기력과 캐릭터 소화력을 보인다. 천사인지 악마인지 모호한 련화는 ‘곡성’의 무명보다 강렬하다. 짧은 143분. 15살. 3월 20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유진모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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