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악질경찰>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영화 ‘악질경찰’은 누아르에 탁월한 솜씨를 보인 ‘아저씨’의 이정범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그런데 여느 누아르와 색깔은 유사하되 주시하는 지점이 좀 다르다. 니힐리즘이나 페시미즘보다 함무라비 법전에 무게를 싣는다. 이이제이 혹은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라’는 식이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희생자 중 한 명인 단원고 여학생 송지원은 경찰을 꿈꾸던 천사 같은 마음결을 간직한 소녀였다. 희망을 상실한 지원의 아버지가 자살 소동을 벌이고, 때마침 그곳에 있던 안산 단원경찰서 형사 조필호(이선균)가 그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이마에 큰 상처를 입는다.

1년 뒤. 필호는 ‘경찰이 무서워 경찰이 된’ 악질이고 저질이다. 각종 이권에 개입해 축재하고, 양아치 한기철(정가람)을 앞세워 ATM을 턴다. 동네 조폭 두목과 합자해 한 건물을 매입해 리모델링을 하지만 2억 원이 부족해 건물을 날릴 판인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감사관의 추적까지 받는다.

재벌그룹 회장 정이향(송영창)은 7800억 원의 돈을 빼돌린 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지만 혐의 없음으로 풀려난다. 남성식(박병은) 검사는 그런 이향을 씁쓸하게 쳐다본다. 이향은 ‘오른팔’ 권태주(박해준)를 시켜 살인을 일삼으며 증거를 숨겨왔다. 필호는 기철과 함께 경찰 압수 창고를 턴다.

▲ 영화 <악질경찰> 스틸 이미지

하지만 창고 내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고 기철은 죽는다. 밖에 있던 필호는 병원에 입원하고 감사관과 성식으로부터 용의자로 강력하게 의심을 받는다. 창고 내의 가장 중요한 물건은 바로 이향의 범죄 혐의에 대한 방대한 자료였기 때문에 필호는 이향의 끄나풀로 지목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런데 기철은 죽기 전 급하게 동영상을 필호와 다른 한 명에게 보냈다. 그 주인공은 단원고를 중퇴한 거리의 소녀 미나(전소니). 그녀는 임신한 후배 소희와 함께 살고 있다. 성식은 필호에게 동영상을 언급하며 그것만 넘기면 필호의 추악한 범죄행위 중 상당량을 눈감아주겠다고 제안을 한다.

동영상의 존재를 알게 된 이향은 태주에게 반드시 그것을 찾아오든지, 아니면 대신 감옥에 가든지 알아서 하라고 큰소리를 친다. 배운 것도 없고, 오로지 주먹 하나로 그 자리에까지 오른 태주에게 이향은 곧 신이고 산소다. 필호와 태주는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다투고, 미나는 다른 꿈을 꾸는데.

비리 공무원의 악행을 재미로 활용하는 것도 맞다. 그가 개과천선하는 통쾌한 정의 구현과 권선징악을 주제로 삼는다는 추측도 옳다. 그러나 그렇게 단순한 액션 누아르와는 차원이 다르다. 바로 세월호 참사다. 지원이 경찰을 꿈꾼 건 정의감이 크기도 했지만 정의로운 경찰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 영화 <악질경찰> 스틸 이미지

필호는 ‘버닝썬 사건’을 연상케 하는데 비리 경찰이 비단 강남 쪽에만 있을까? 이향과 태주는 재벌가는 물론 국정 농단의 주역과 그 측근이 강하게 오버랩된다. 태주는 필호나 미나 못지않은 주인공 역할을 해낸다. 그에겐 감정도, 이성도 없다. 그에겐 이향이 가치관이고, 그래서 맹목적으로 충성한다.

기업, 공공기관, 학교 등 국내 각종 크고 작은 공공단체와 사기업 등을 보자. 수평적 위계질서로 오직 복종만 강요하지 않는가? 자율, 정의, 자유, 창의 등은 모두 생산성과 효율성이란 명목하에 상명하복 체제 하나로 대체된다. 그런 전체주의가 세월호 참사라는 전대미문의 미스터리 비극을 낳았다.

태주는 대놓고 칠레의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전 대통령을 거론한다. 누구를 암시하는지는 초등학생도 알 터.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생명은 304명. 피노체트가 그보다 100여 명 더 많은 생명을 하루아침에 죽였다는 대사는 독재와 전체주의에 대한 싸늘한 경고다. 태주는 ‘여왕님’ 추종자 같다.

필호를 거듭나게 하는 과정에 미나가 있다면 계기는 아이러니컬하게도 파렴치한 불법임신중절수술의다. 그 의사는 사회 곳곳에 만연한 또 다른 이향이다. 모든 재벌과 공무원이 악인이 아니듯, 악인은 어느 곳에도 있다는 얘기. 한 번 흔들린 필호에게 ‘어른’이 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건 세월호다.

▲ 영화 <악질경찰> 스틸 이미지

김밥을 먹는 이향의 입을 클로즈업한 신은 ‘어른’들의 욕심을 조롱하는 것. 실상은 범죄의 온상이면서 장학금 전달식에서 인자하고 거룩한 언행으로 학생들에게 성공신화를 설파하는 시퀀스는 표리부동한 많은 ‘인사’들의 환유다. 미나를 처음 본 필호가 “아디다스 모델이냐?”라고 비웃는 유머도 있다.

이향은 필호를 7800만 원짜리로, 미나를 780원짜리로 본다. 하지만 찢어지게 가난한 미나는 갑자기 생긴 3000만 원이란 거금을 세월호 참사 때 잠수사로 봉사활동에 나섰다 입원한 한 환자의 치료비로 선뜻 내준다. 미나는 필호 차의 경광등을 소중하게 받는다. 세상에 뭘 경고하고픈 걸까?

미나는 “네(지원) 옷 입고, 신발 신고, 백팩 메고 걷다 보니 네 체취가 나는 거야. 그래서 반가운 마음에 뒤돌아보니 없더라”라며 흐느낀다. 필호는 비아냥거리는 이향에게 “세상 어디에도 780원짜리 인생은 없다”라고 울부짖는다. 마지막 그의 선택은 기존 상업영화의 형식을 거부해 통쾌하다.

누아르가 가야 할 길이 어딘지 잘 아는 감독이다. 미나가 반항하고 거칠게 행동하는 이유는 그런 세상에 대한 분노의 저항이자 생존의 몸부림이다. 그녀는 또 다른 ‘아저씨’다. 이 잔인하고 패악하며 부패한 세상에 대한 그녀의 최후의 선택은? 전소니는 샛별의 탄생을 알린다. 청소년 불가. 3월 20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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