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어스>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겟 아웃’의 조던 필 감독의 신작 ‘어스’는 ‘샤이닝’ ‘새’ 등의 걸작부터 ‘스릴러’ 뮤직비디오까지 오마주 하면서도 매우 독창적인 스릴러다. 백인의 잘난 체와 인종차별을 경고하고, 가부장제를 야유하며, 인간 내면의 어두운 이면에 침을 뱉는 압도적 메시지와 공포! 루피타 뇽의 연기 솜씨는 화룡점정!

1986년. 미국 샌터 크루즈 해변. 흑인 소녀 애들레이드는 부모와 함께 놀이공원에 입장한다. 엄마는 화장실에 가고, 아버지가 두더지 잡기 놀이에 심취했을 때 그녀는 ‘영혼의 숲, 당신을 찾으세요’라고 적힌 공포체험관에 들어간다. 온통 거울로 둘러싸인 그곳에서 자신의 도플갱어를 만나 경악한다.

현재. 게이브(윈스턴 듀크)와 결혼해 조라와 제이슨 남매를 둔 애들레이드(루피타 뇽)는 샌터 크루즈 해변 인근의 별장으로 휴가를 온다. 낮에 백인 친구 조쉬-키티 부부와 그들의 쌍둥이 자매와 백사장에서 시간을 보낸 뒤의 밤 11시 11분. 그들과 똑같지만 전투력은 더 강한 4명이 별장에 침입한다.

게이브는 전 재산을 줄 테니 살려달라고 애원하지만 애들레이드는 도플갱어 레드에게 “원하는 게 뭐냐"라고 묻는다. 레드는 “너희들이 지상에서 호의호식할 때 난 지하에서 고생했고, 에이브러햄과 결혼해 괴물 움브라에와 플루토를 낳았다”며 애들레이드에게 수갑을 채운 뒤 살인 게임을 지시한다.

▲ 영화 <어스> 스틸 이미지

세 쌍의 도플갱어들이 밖으로 뛰쳐나가 쫓고 쫓기는 생존 게임을 펼치는 사이 레드는 결박된 애들레이드에게 보란 듯이 집안을 뒤지며 주인 행세를 한다. 과연 도플갱어들은 어디서 왔고, 정체는 뭣이며, 그들이 원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어디서 본 듯하면서도 상상력의 허를 찌르는 이 엄청난 호러!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아메리카 대륙 깊은 지하 곳곳엔 엄청난 터널이 존재한다고 자막으로 알린다. 미스터리에 대한 결정적인 힌트다. 1986년의 ‘미국을 가로지르는 손’(기아 돕기 모금 캠페인)의 수미상관과 사마리아의 언급은 미국의 현실에 대한 고발, 트럼프의 인종 정책에 대한 메타포다.

사마리아인은 유대인에겐 공포와 경멸의 대상이었다. 북쪽 갈릴리와 남쪽 유다의 사이에 거주한 이 혼혈인은 아프리카에서 끌려와 노예의 역사를 거친 현재 미국 내 흑인을 상징한다. 외형적으로는 해방됐고, 동등한 기회와 인권을 지닌 미국인이지만 실재로서는 ‘그린 북’에 억류된 주변인이다.

다른 신을 섬긴 데 대해 여호와가 재앙을 내리겠다는 ‘예레미야 11장 11절’을 전시하는 건 그 연장선이다. 신은 자신의 분신이자 자식인 만민에 대해 이단을 제외하곤 모두 공평하다. 하지만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엔 편견과 갈등과 불평등이 만연돼있다. ‘지우수드라의 대홍수’를 예고하는 시퀀스.

▲ 영화 <어스> 스틸 이미지

공포체험관의 간판이 ‘멀린의 숲’인 것도 단서 중 하나. 유럽 신화의 영웅 아서 왕의 드루이드(마술사)인 멀린은 신과 용 등을 소환하고 기후를 변화시키는 신통력을 지녔다. 즉 ‘멀린의 숲’으로 들어가는 건 뭔가 신비하거나 공포를 주는 존재와의 조우, 혹은 인생의 커다란 변혁을 의미한다.

게이브는 ‘수태고지 천사’ 가브리엘이고, 그의 도플갱어 에이브러햄은 유대인의 선조 아브라함이다. 제이슨은 그리스 신화의 영웅이지만 아내를 배신함으로써 자식을 잃는 이아손이자 ‘13일의 금요일’의 연쇄살인마 제이슨에 대한 비유다. 그의 도플갱어 플루토는 저승의 지배자 하데스다.

11월 11일은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사망일이자 제1차 세계대전의 종전일이다. 외형상 쌍둥이의 날로 볼 수도 있다. 키에르케고르는 실존주의의 선구자다. 이 영화는 존재론적 실존주의의 알레고리이자 향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추측과 상상을 불허하는 스릴은 명불허전이다.

게이브는 고작(?) 강변의 별장을 자랑스러워하고 고물 요트를 사 으스댄다. 그러나 조쉬는 바다가 보이는 복층의 호화스러운 별장을 가졌고, 억대의 최고급 SUV를 새로 사 은근히 게이브를 자극한다. 게이브 가족은 나름대로 성공했다는 착각 속에 백인의 이데올로기에 취한 일부 흑인을 의미한다.

▲ 영화 <어스> 스틸 이미지

조쉬의 별장의 조명과 음악 등 전자 시스템은 AI 오필리아에 의해 자동화됐다. ‘햄릿’의 여주인공을 올린 건 백인의 비뚤어진 우월감이 비극을 초래할 것이란 노골적인 조롱이다. “정부가 국민을 조종하려고 몰래 약을 먹인다”는 뇌까림은 전체주의, 독재,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대한 경고다.

그래서 잘 흐르던 실내의 음악이 비치 보이즈의 ‘Good vibrations’에서 갑자기 N.W.A의 ‘FXXk the police’로 바뀌는 것이다. “한 손가락으로 타인을 가리키면 세 손가락이 자기를 가리킨다”라는 대사는 타인을 향한 무의식적인 폭력이 그보다 더 큰 폭력으로 자신에게 되돌아온다는 직설이다.

하얀 토끼를 우위썬의 비둘기만큼이나 애용한 이유는 가위의 환유, 혹은 애들레이드 가족의 나약함의 직유다. ‘멀린의 숲’의 ‘당신을 찾으세요’라는 문구는 확실히 존재론적이다. 엄청난 음모와 반전에 반전이 거듭되기에 노골적인 ‘스릴러’와 ‘조스’ 티셔츠의 우정출연은 애교에 불과하다.

애들레이드와 게이브가 ‘Beach’와 ‘Shore’로 입씨름을 하는 건 하이데거의 ‘본래적(도래적) 존재’와 ‘현존재’의 이원론이자 ‘테세우스의 배’다. 애들레이드가 “너희는 누구냐?”고 묻자 레드는 “우리는 미국인”이라고 답한다. ‘Us’는 ‘United States’이기도 하다. 116분. 15살. 3월 27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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