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 제주(濟州)에서 역사적인 제주의 깊은 문화와 한라산(漢拏山)를 만나다 [최철호 칼럼]

최철호 성곽길 역사문화연구소 소장l승인2019.03.26l수정2019.03.26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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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아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만 넴겨다오
물적삼 챙겨들고 집을 나서니
바람이 무섭더냐 파도가 무섭더냐

하늘을 머금고 바당에 잠기면 바당이
내 것인가 파도가 내 것인가

▲ 하늘과 구름과 나무_청정 제주

[미디어파인=최철호의 한양도성 옛길]  한양도성에서 제주성까지 ‘제주 아리랑’소리를 들으며 옛길을 걷는다. 옛 사람의 눈으로, 옛 사람의 마음으로 제주를 보고 느끼고 싶다. 100년 전 제주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200년 전 제주는 어떻게 갈 수 있었을까? 마치 한양도성 옛길을 걷듯이 해안가에서 파도소리와 바람소리를 들으며 시간여행을 떠난다. 천천히 제주를 둘러 보고 싶다. 구석구석 제주의 흔적을 만져 보고 싶다. 달팽이와 소의 걸음처럼 느릿느릿 와행우보(蝸行牛步)하며 제주의 풍속과 제주의 문화를 보고 듣고 느끼고 싶다. 4계절 24절기 한라산(漢拏山)에 오르고 천(川)따라 내려와 바닷길을 걷고 싶다. 성안과 성밖 마을을 돌며 동네방네 유래를 만나러 간다.

삶의 터전인 제주의 성(城)

▲ 제주성에서 바라 본 한라산 정상_백록담

바람과 돌이 많은 제주, 해안선 따라 마을이 형성되었다. 돌을 모아 담을 쌓고, 성벽을 만들었다. 삶의 터전인 제주를 지키기 위해 천 따라 성벽을 쌓고, 동서남북 성문을 만드니 천혜의 요새가 되었다.

한라산 백록담에서 발원한 계곡물은 오라동, 용담동을 거쳐 용연에 모여 바다까지 16km 흐른다. 제주도에서 가장 긴 천(川)이다. 바로 한천(漢川)이다. 한내,대천이라고 불리었다. 천과 천 사이에 제주성(濟州城)을 만드니 천은 해자(垓字) 역할을 하였다, 서문 지나 한천이 있고, 동문쪽에 산지천(山地川)이 있다. 제주시의 3대 하천인 산지천도 제주성 밖에 있었다. 하지만 건천(乾川)에 물이 부족한 제주의 특성상 성안에 물이 필요했다. 산지천을 성안으로 흐르게 한 이유이다. 제주성을 지킨 삶의 지혜가 엿보인다. 북성교가 옛 제주성의 역사를 전해주고 있다.

제주는 성곽(城郭)의 도시

▲ 성곽의 도시_돌담과 봄꽃 그리고 제주 바다

제주는 성(城)의 역사이다. 제주는 성곽의 도시이다. 제주의 역사를 지켜보면 탐라에서 제주까지 성(城)은 삶의 터전인 제주를 지켜왔다. 방어의 역사가 바로 제주 성들의 흔적이다. 항파두성(缸坡頭城)은 삼별초의 항몽유적지로 지난한 역사의 현장이다. 강화도성(江華都城)에서 진도 용장성(龍藏城)까지 끊임없는 항전을 하였다. 다시 진도에서 추자도 지나 제주도까지 토성과 석성을 쌓았다. 성곽에 4대문을 설치한 후 성안과 성밖을 지키며 지금껏 살아왔다.

또한 우도 별방성과 비양도 명월성,그리고 제주도를 한바퀴 둘러서 축조한 환해장성이 있다. 바닷가에 빙 돌며 만든 성곽들이다. 돌 많은 제주에는 돌담을 쌓고 성벽을 쌓아 스스로를 지키며 제주의 역사를 이어왔다. 제주도는 4면이 바다로 왜구의 침입이 잦았다. 한라산을 중심으로 제주3읍(濟州三邑)에 성을 쌓고 성벽을 높혔다. 600여 년 전 제주목에 제주성,대정현에 대정성과 정의현에 정의성을 쌓아 방어의 중심이자 치소(治所)가 되었다.

▲ 용두암과 잔잔한 바다_제주성밖 해안가

해안을 따라 마을이 형성되니 성을 쌓고 또 쌓아 방어 한다. 해안마을,중산간,성의 역사가 오늘의 제주를 지키는 문화 유산이 되었다. 돌하르방은 성문 입구에 세워 스스로를 지켰다. 돌하르방은 제주성 동서남문에 24개,정의현에 12개,대정현에 12개등 용맹스러운 장수로 성(城)을 지키는 수문장의 역할을 하였다.

▲ 하늘과 바다 옆 돌담밭_서귀포 대정

제주(濟州)에서 서귀포 대정(大靜)과 정의(旌義)까지 성(城)은 제주를 지키는 역사와 문화의 상징이 되었다. 제주 교육의 역사와 문화 현장엔 향교(鄕校)가 있다. 제주성과 오현단는 역사의 깊이 만큼 제주향교가 교동에 있다. 한라산 아래 서남쪽에는 추사 김정희의 흔적이 있는 대정향교가 안덕면에 있다. 그리고 산방산(山房山) 지나 표선면에는 성읍마을에 정의향교가 있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

▲ 산방산 아래 선인장과 바다_서귀포 대정

70년 동안 벼루 10개를 갈아 구멍을 내고, 1000자루의 붓은 닳고 뭉그러지도록 추사 김정희는 글과 그림을 그렸다. 추사(秋史) 김정희가 머물던 지역이 대정이다. 180년 전 한양에서 제주도 대정까지 유배길을 나섰던 최종 목적지가 바로 이곳이다. 55세의 나이에 강 건너 산 넘고 바다 건너 도착한 제주에서 8년 3개월을 머문다. 기약없는 유배생활에 차 나무를 심고,책을 읽고 그림을 그렸다. 유일한 벗 초의선사와 함께 차를 마시고, 국화꽃과 유채꽃을 말려 차를 다리고 세상을 이야기 하며 인생을 마셨다.

세찬 바람을 맞고 의연히 버티고 있는 소나무 두 그루와 잣나무 두 그루 그리고 초라한 집을 그린다. 제자 역관인 우선 이상적에게 진심을 담은 작품을 답례한다. 이것이 바로 완당(阮堂) 김정희 ‘세한도(歲寒圖)’ 탄생의 비밀이다. 104m 송악산과 395m 산방산이 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이야기 해 주듯 파도소리가 세차고 바람이 강하다.

제주의 3다(多)_석다(石多) 풍다(風多) 한다(旱多)

▲ 제주성벽과 유채화_제주 봄봄

돌이 많아 담을 쌓았고, 남은 돌로 성벽을 이었다. 바람이 많아 돌담을 쌓아 강한 태풍의 길목을 막아냈다. 비가 적어 건천이라 가뭄이 심하고 물이 귀하였다. 이것이 제주의 돌에 얽힌 역사이자 문화이다. 3다(三多)는 석다(石多),풍다(風多),한다(旱多)이었다. 세월이 지나고 아픔의 시간을 견디며 제주의 3무(三無)도 변하고 있다. 도둑이 없어,대문이 없다. 나눔이 오래되어 거지도 없다. 훈훈한 제주에서 역사를 찾고 문화가 깊은 청정한 제주로 다시 만나고 싶다.

성곽의 도시,제주
한라산과 산방산의 역사와 문화가 만나는 삶의 터전.

기다림과 설렘의 도시,
청정의 도시에서 역사의 도시로 변하고 있다.
여기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길목, 제주다.

▲ 최철호 성곽길 역사문화연구소 소장 - (저서)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최철호 소장]
성곽길 역사문화연구소 소장
‘한양도성에 얽힌 인문학’ 강연 전문가
한국생산성본부 지도교수
지리산관광아카데미 지도교수
남서울예술실용전문학교 외래교수

저서 :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최철호 성곽길 역사문화연구소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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