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팅게일을 필리핀 공군기지로 발진시켜라” [김문 작가 칼럼]

김문 작가l승인2019.03.26l수정2019.03.26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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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김문 작가가 쓰는 격동의 현대사를 주도한 군장성들의 이야기]

“나이팅게일을 필리핀 공군기지로 발진시켜라”

이 합참의장이 병원으로 후송되는 도중 아웅산 참사 소식은 전파를 타고 전 세계에 퍼져나갔다. 사고 직후 이 합창의장을 비롯, 다른 부상자들이 병원으로 겨우 옮겨졌으나 의료시설이 마땅치 않아 응급치료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바로 이 시각 미국의 워싱턴에서 존 베시 미합참의장은 모종의 조치를 취하고 있었다. 물론 한국의 합참의장이 부상을 당했다는 보고를 받은 뒤였다. 베시 합참의장은 지휘계통으로 ‘나이팅게일을 필리핀 공군기지로 발진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나이팅게일은 수송기 C-130을 약간 개조한 공군전용 병원기로 미국 본토에 단 한 대밖에 없는 ‘날으는 종합병원’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베시 합참의장의 이같은 조치는 미얀마의 의료수준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또 한미연합사에 전화를 걸어 “나이팅게일이 현재 필리핀 클라크공군기지로 발진했으니 한국정부가 필요하면 즉각 연락하라.”고 말해두었다.

이에 대해 이 합참의장은 “만약 베시 합참의장의 신속한 도움이 없었다면 아마 그 때 살아나기 힘들었을 것”이라면서 “미얀마 의료진의 잘못으로 한때 사경을 헤맸으나 나이팅게일의 도움으로 무사할 수 있었다.”고 회상한다. 이후 이 합참의장은 베시 합참의장의 고마움을 한번도 잊어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아무튼 당시 베시 합참의장의 신속한 조치는 한국정부 요인들에게 적지 않은 위안을 준 것이 사실이었다.

나이팅게일이 클라크공군기지로 향하고 있을 무렵 전 대통령은 영빈관에서 폭발사고에 대해 자세히 보고를 받고 있었다. 상황판단이 빠르기로 소문난 전 대통령은 즉각 다음과 같이 명령을 내렸다.

“묘소에 참석하지 않았던 비공식 수행원들 뿐만 아니라 움직일 수 있는 모든 사람은 현 위치에서 곧바로 공항에 있는 전용기로 돌아가라.”

이 명령은 곧장 전달됐다. 당시 비공식 수행원이었던 정주영(鄭周永) 현대그룹회장, 김우중(金宇中) 대우그룹회장 등 경제인들은 공식일정이 없어서 개별적으로 골프회동을 갖고 있었다. 전 대통령은 또 미얀마 정부당국에 남은 일정(스리랑카, 인도, 호주 등)을 모두 취소하고 곧바로 서울로 돌아간다는 것을 통보했다. 전 대통령은 서울로 떠나기에 앞서 이 합참의장 등이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갔다. 병원은 너무 보잘 것 없었다. 응급약조차 변변치 않음을 알게 된 전 대통령은 즉시 서울에 있는 의료팀을 파견시키라고 지시하고 이 날 오후 4시30분 랑군공항을 이륙, 서울을 향해 떠났다.

대통령 전용기 미 전투기가 호위

이 시각,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인 이상훈 장군은 미 8군 골프장에서 한미연합사령관 세네월드 장군과 함께 골프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정오 무렵 세네월드 장군의 전속부관이 ‘긴급상황’을 외치며 무전기를 들고 허겁지겁 달려왔다. 미얀마에서 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이 장군은 세네월드 장군과 함께 서둘러 한미연합사 상황실로 달려갔다. 세네월드는 곧 워커 주한미대사와 부르스터 미중앙정보국 한국 책임자와 회동했다. 이 장군은 한국쪽 소식통을 찾았으나 아직 사건이 벌어진 것을 모르고 있었다. 다만 외무부에서는 미얀마 상황을 현지에서 보고 받고 있었는데 미얀마 아웅산에서 큰 폭발사고가 생겨 많은 각료들이 다쳤다는 내용이 들어오고 있었다.

한미연합사 상황실에는 전두환 대통령이 아웅산 묘소에 도착하기 수분 전 대형폭발이 터졌으며 한국 각료 대부분이 다치거나 죽었다는 비교적 상세한 보고내용이 속속 들어오고 있었다. 매우 중대한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세네월드 장군의 주재로 긴급회의가 열렸다. 세네월드는 본국에 있는 베시 합참의장과 하와이에 주둔해 있는 태평양함대 사령부 등에 직통전화로 사태의 심각성을 알렸다. 일본 오키나와 미공군기지, 필리핀 공군기지, 태평양함대 등에는 1급 비상출동준비가 하달되었다.

이 장군은 세네월드 장군에게 대통령 전용기의 공중호위를 건의했다. 물론 청와대쪽에서도 요청이 왔다. 세네월드 장군도 이를 흔쾌히 받아들여 곧 베시 합참의장의장에게 출격요청을 알렸다. 오키나와 미공군기지에서는 불과 수분 사이에 중무장한 5대의 F15 전투기가 굉음을 내며 활주로를 이륙했다. 미얀마 영공을 빠져나온 대통령 전용기의 조종석에는 벌써 미군 전투기 조종사의 메시지가 들려왔다. 원거리에서 경호할테니 아무런 염려말고 한국으로 향하라는 내용이었다.

“정예 수사관들 미얀마로 급파하라”

한편 서울로 향하는 대통령 전용기 안에서는 비상이 걸린 한국정부와 한미연합사령부, 그리고 워싱턴 등에 긴급연락을 취하면서 사후대책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폭탄테러사건은 북한의 만행이 틀림없다고 재빨리 간파한 전 대통령은 정예 수사관들을 미얀마에 긴급 파견토록 지시했다. 또 만일에 있을지도 모를 북한의 도발에 대비, 전투태세에 더욱 만전을 기하도록 했다. 이미 본국에는 전군에 비상경계령을 하달한 상태였다.

랑군 시내의 육군 제2병원으로 긴급후송된 이 합참의장은 무더위 속에서 무려 5시간 30분 동안 긴 수술 끝에 가까스로 의식을 회복할 수 있었다. 병상에 누운 이 합참의장의 시야에 맨 처음 들어온 것은 전속부관이었다. 부관은 수술하는 동안 꼼짝도 않고 가슴을 죄며 옆에서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이 합참의장은 어느 정도 정신이 들자 먼저 “각하는 무사하시냐?”며 전 대통령의 안부를 물었고 부관은 “이곳에 들르셨다가 조금 전 서울로 떠나셨다.”고 대답했다. 이 합참의장은 폭파 당시의 순간을 떠올리면서 얼마동안이나 시간이 경과했는지 부관한테 물었다. 전 중위는 “지금이 10월9일 저녁 7시”라고 말했다. 이 합참의장은 본능적으로 살긴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몸을 움직이려고 했으나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온몸 여기저기에서 통증이 쑤셔왔다. 그는 다시 부관에게 나머지 분들은 어떻게 됐느냐고 물었다. 부관은 비통한 표정으로 “이기욱(李基旭) 재무차관님을 제외하곤 대부분 현장에서 숨을 거두셨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이기욱 차관은 바로 옆 병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나 매우 위독하다고 부연설명을 했다. 이 합참의장은 두 눈을 지그시 감고 하늘을 원망했다. 어떻게 한꺼번에 그런 훌륭한 사람을 다 데리고 가는지...

이 합참의장은 전 중위와 대화를 하면서 아웅산묘소에서 병원에 오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해봤다. 오전 10시27분쯤 거대한 폭발음이 천지를 진동했고 평소 폭파훈련을 통해 얻은 경험을 살려 반사적으로 그 자리에 엎드렸으나 동시에 파편을 맞으면서 오른쪽으로 넘어지고 갑자기 의식이 몽롱한 채 왼쪽을 보니 서 있던 장관들이 모두 쓰러져 있었다. 이 때 천장의 대들보와 서까래 등 구조물들이 와르르 무너지면서 하반신을 강타했다.

주위로부터 잘 알아들 수 없는 신음소리가 들려왔고 화약냄새가 진동했다. 양쪽 발을 움직여봤으나 의식이 몽롱해져 힘을 쓸 수가 없었다. 이 때 어디서 귀에 익은 목소리로 ‘의장님!’하며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전속부관 전 중위였다. 허겁지겁 달려온 전 중위는 주위에 사복차림의 경호원을 불러 같이 이 합참의장을 서까래더미에서 빼냈다.

이 합참의장은 병원으로 가는 도중에야 조금 의식이 돌아왔고 미얀마어로 뭐라고 지껄이는 소리를 희미하게 들을 수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운전기사가 이 합참의장의 신분을 잘 몰라 육군병원으로 이송해야 할 것을 민간병원으로 잘못 갔었기 때문에 그랬다는 것이다. 병원으로 가는 도중 이 합참의장은 다시 의식을 잃었다.

이기욱 차관의 안타까운 운명

▲ 사진=KTV 화면 캡처

한편 이 합참의장이 수술을 받고 있는 동안 국립의료원 의료팀들은 대한항공 특별기편으로 랑군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이 합참의장은 “아마 그 때 우리나라 의료진들이 조금만 늦었어도 왼쪽 다리를 절단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면서 “당시 그 병원은 위생처리가 미흡했고 깁스조차 엉성할 정도였다.”고 말한다.

악몽같았던 ‘피의 일요일’은 지나고 미얀마의 우산유 대통령 등 고위인사들이 병문안차 들렀으나 이 합참의장은 별로 달갑지가 않았다. 미얀마 당국의 관리 소홀로 참상을 불러일으켰다고 생각하니 그들과 낯을 대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다만 하루빨리 범인을 색출하는 것만이 국제적인 책임을 면할 수 있을 것이며 북한의 짓일 가능성이 높다고 귀띔해주었다.

이 날 정오쯤 이 합참의장은 부관한테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이 합참의장과 이기욱 재무차관이 필리핀 클라크 공군기지로 후송된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해서 이 날 저녁 이 합참의장은 이기욱 차관과 함께 클라크 공군기지로 향했다. 이 때부터 미공군 군의관들의 정성어린 치료가 시작됐다. 그러나 공군기지에 도착한 지 얼마 안돼 그렇게 마음속으로 회복되기를 간절히 빌었던 이기욱 차관이 운명했다. 최상의 의료팀들이 여러 번 수술을 했으나 결국 소생하지 못해 13일 새벽 5시쯤에 숨을 거둔 것이다. 유해는 이 날 오후 미공군 특별기편에 의해 김포공항으로 옮겨졌다.

이 합참의장은 미공군 기지사령관의 호의로 병세가 많이 호전됐다. 미공군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지 약 20일이 지나자 그는 부관을 불러 서울로 갈 준비를 하라고 일렀다. 그러면서 자신이 입고 갈 군복을 주문했다. 비록 부상은 입었지만 군인의 모습으로 귀국하고 싶다는 뜻에서였다. 그렇게 해서 10월31일 미공군 의료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클라크 공군기지를 떠나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이 날 휠체어에 의지한 채 김포공항에서 의장대를 사열하는 장면은 TV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됐다.

□ 아웅산묘소 폭탄테러사건 요약

▲ 사진=KTV 화면 캡처

북한이 1983년 10월 9일 당시 버마(현 미얀마)를 방문중이던 전두환 대통령 및 수행원들을 대상으로 자행한 테러 사건.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서남아시아와 대양주 등 6개국 공식 순방 첫 방문국인 버마의 아웅산묘소에서 일어난 강력한 폭발 사건으로 대통령의 공식·비공식 수행원 17명이 사망하고 1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 사건으로 순직한 희생자는 서석준 부총리, 이범석 외무부장관, 김동휘 상공부장관, 서상철 동자부장관, 함병춘 대통령비서실장, 이계철 주버마대사, 김재익 경제수석비서관, 하동선 기획단장, 이기욱 재무차관, 강인희 농수산차관, 김용한 과기처차관, 심상우 의원, 민병석 주치의, 이재관 비서관, 이중현 동아일보 기자, 한경희 경호원, 정태진 경호원 등 모두 17명이다. 사건 당일 전두환 대통령은 모든 순방길을 취소하고 귀국길에 올랐다. 현장에서 희생된 서석준 부총리 등 17명은 합동 국민장으로 거행됐다. 이 사건으로 미얀마를 포함한 서사모아 등의 국가들은 북한과 수교를 단절했다.

▲ 김문 작가

[김문 작가]
전 서울신문  문화부장, 편집국 부국장
현) 제주일보 논설위원

김문 작가  gamsam10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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