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덤보>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1941년 디즈니에 160만 달러의 수익을 안겨준 동명의 애니메이션을 팀 버튼 감독이 실사화한 ‘덤보’는 그의 필모그래피에 분기점이 될 듯하다. 그는 악동 기질을 벗고, 유머보다는 진지함을 키웠으며, 곧 61살이 되는 만큼 과장과 거리를 두고 현사실적인 시각으로 변하려는 노력을 보인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듬해. 메디치 브라더스 서커스단 승마 스타였던 홀트(콜린 파렐)는 전쟁에서 한쪽 팔을 잃고 서커스단에 복귀한다. 아내는 세상을 떠났고, 밀리와 조 남매는 단장 메디치(대니 드비토)의 보살핌으로 잘 자랐다. 경영난으로 말을 판 메디치는 홀트에게 코끼리 훈련을 맡긴다.

메디치는 일거양득을 노려 임신한 코끼리 점보를 구매했다. 그런데 태어난 새끼 덤보는 유난히 귀가 커 보기 흉하다. 메디치는 홧김에 점보를 헐값에 팔고 덤보는 방치한다. 밀리와 조는 덤보를 지극정성으로 돌보던 중 새의 깃털을 들이마시면 귀를 이용해 하늘을 나는 능력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홀트와 남매의 조련을 거친 덤보는 드디어 공연을 대성공으로 완성한다. 언론이 대서특필하고 덤보는 대스타로 우뚝 선다. 그러던 어느 날 쇼 비즈니스계의 대부 반데비어(마이클 키튼)가 공중 곡예사인 연인 콜레트(에바 그린)를 대동하고 서커스단을 방문해 메디치에게 귀가 솔깃한 제안을 한다.

▲ 영화 <덤보> 스틸 이미지

반데비어는 대규모 테마파크 ‘드림 랜드’를 짓고, 그 안에 단원들의 화려한 숙소까지 마련해준다. 메디치는 졸지에 반데비어 엔터테인먼트의 부사장 직함을 얻게 된다. 반데비어는 투자 유치를 위해 돈 많은 은행장을 쇼에 초대하고, 이를 위해 콜레트는 덤보를 타고 나는 연습을 거쳐 무대에 선다.

그러나 느닷없이 동물원에서 들려온 울음소리에 자극받은 덤보가 쇼를 망치고 은행장은 투자를 유예한다. 밀리와 조는 덤보의 행동에서 그게 점보의 울부짖음임을 파악한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안 반데비어는 ‘오른팔’에게 점보를 죽일 것을 명령한 뒤 메디치에겐 그의 단원들의 해고를 선언하는데.

이 모든 상황을 접수한 홀트와 남매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과연 콜레트의 노선은? 메디치 브라더스 서커스단은 한때 전용 열차까지 있었지만 전쟁의 여파로 인한 경제적 공황 탓에 파산 일보 직전이다. 메디치 패밀리는 15~16세기 피렌체공화국에 르네상스 시대가 열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1919년의 메디치는 15세기 말 메디치가의 위기를 그린 듯하다. 이 영화는 버튼식 ‘엑스맨’ 버전이다. 홀트는 한쪽 팔이 없고, 메디치는 난쟁이며, 덤보는 귀가 기형이다. 갓 태어난 덤보를 보고 메디치가 이단아 취급을 하는 이유는 아마 자신이 그동안 그런 설움을 받은 데 대한 반작용일 것이다.

▲ 영화 <덤보> 스틸 이미지

신화와 동화를 믿었던 버튼은 이제 ‘통섭’으로 모든 학문의 통합을 시도한 에드워드 윌슨의 과학 쪽으로 전회한 듯하다. 서커스단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기술’이 필수인데 밀리는 사람들이 쳐다보는 게 싫다는 이유로 아예 담을 쌓았다. 그녀가 믿는 건 과학의 제1 원칙인 관심과 과학의 신비다.

초기의 메디치는 침대로 많은 사람들을 죽인 그리스신화의 프로크루스테스다. 힘든 시기에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투자한 점보가 낳은 덤보의 귀가 기형이자 노골적으로 그걸 자를 것을 명령한다. 획일주의에 대한 경고와 격렬한 반대는 이 영화의 가장 큰 주제다. ‘가위손’의 냄새가 진하게 풍긴다.

밀리는 홀트에게 “아빠는 여기 갇혔어, 우리처럼”이라는 진단을 내린다. 관념론의 편견과 전체주의에 결박당하고 억류된 사람들에 대한 테제다. 그래서 밀리는 죽은 엄마가 남긴 열쇠를 목걸이로 만들어 금과옥조로 여긴다. 그 상징을 통해 그녀는 ‘방’에 갇힐 때마다 그 잠금장치를 열 지혜를 찾는다.

반데비어는 미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전설인 바넘의 어두운 면이다. 그는 철저하게 이기적이고, 상업적이며, 냉정이 지나쳐 잔인하다. 돈벌이를 위해서라면 못할 게 없는 그를 통해 과유불급이란 동양적 교훈을 던진다. ‘누군가는 반칙을 하고, 누군가는 규칙을 바꾼다’는 그의 신념은 구태였던 것.

▲ 영화 <덤보> 스틸 이미지

버튼은 반데비어를 통해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허구적 프로파간다를 강하게 비판하는 것. 대중에게 꿈을 되돌려주겠다는 ‘드림 랜드’는 실은 스타라는 우상을 만들어 대중을 홀림으로써 제 주머니만 채우겠다는 간사위에 불과하다는 메시지다. 작금의 승리와 정준영 사태를 예감하기나 한 걸까?

콜레트는 홀트에게 “난 그 사람이 돋보이기 위해 두르는 보석에 불과하다”라며 둘은 가짜 연인 사이임을 고백한다. ‘겉만 봐선 몰라’라는 대사는 일반화와 더불어 그 반대의 ‘다름’에 대한 양방향 편견에 대한 지적이다. 덤보를 부정적으로, 반데비어를 긍정적으로 보는 첫인상이란 허상적 판단 착오.

덤보의 공연장이 고대 로마제국에서 검투사들의 목숨을 건 투쟁이 열렸던 콜로세움이다. 여흥조차도 잔혹함을 즐기는 인간의 잔인한 폭력성을 대놓고 비판하는 작명이다. 프랑스 혁명과 제1차 세계대전을 거쳐 삼림이 황폐화된 아르곤을 거론하는 건 환경 파괴와 동물 학대를 비판하는 2번째 주제.

순한 점보를 파괴의 신 칼리라 이름 붙여 전시하는 인간의 뻔뻔함이라니! 은행업의 대부 가문의 후손 메디치가 “우리는 그 어떤 야생동물도 가두지 않아”라고 당당하게 외치는 게 조금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그 메시지만큼은 숭고하다. 흰 깃털이 마지막엔 검은색인 센스! 전체 관람 가. 3월 27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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