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성현석의 푸드 에세이] 미쉐린은 관례적으로 미쉐린 가이드 북 공식 출간을 며칠 앞두고 ‘빕 구르망’ 리스트를 발표한다. 1957년 프랑스에서 처음 등장한 빕 구르망은 합리적인 가격에 훌륭한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을 대상으로 한다. 도시별로 구체적인 가격 기준에 따라 선정하는데 서울은 저녁식사 기준 1인당 3만5000원 이하 식당이 대상이다.

미쉐린 평가원들은 서울에서는 서민 메뉴로 평양냉면에 관심을 많이 기울였다. 미쉐린도 “서울에서 평가원들의 입맛을 유독 사로잡은 음식은 면류, 냉면과 칼국수 전문점이 각각 5개씩 소개됐다”며 2017년 빕 구르망 발표에 덧붙였을 정도다.

2017년 빕 구르망은 36개가 선정됐는데 이중 평양냉면 식당 3곳이 포함돼 있었다. 총 17개의 다양한 음식분야를 고려했을 때 8.3%를 차지하는 것은 적지 않은 수치다. 2018년에는 48개로 늘었고 평양냉면집도 전년도 3개를 포함해 3개가 더 늘어 6개가 됐다. 차지하는 비율도 12.5로 증가했다. 2019년에는 61개 중 7개(11.5%)가 평양냉면집으로 나타났다.

미쉐린은 평양냉면에 대해 ‘한여름의 무더위를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이북 음식으로 여름철 대표적인 별미’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어 ‘냉면은 평양식 냉면과 함흥식 냉면으로 구분되는데, 평양식 냉면은 메밀로 만든 찰기 없는 면에 (전통적으로) 꿩이나 쇠고기 혹은 돼지고기를 우려낸 맑은 육수와 동치미 국물을 혼합하여 차게 식힌 육수와 함께 낸다. 일반적으로 편육 몇 조각, 삶은 달걀 반 개, 절인 무 등을 고명으로 올려낸다. 식당마다 맛에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평양냉면의 생명은 구수한 메밀면의 툭툭 끊어지는 면발과 은은한 육향이 일품인 육수이다’고 설명했다.

미쉐린이 사랑한 한식 평양냉면...빕 구르망 12% 차지

냉면이 대표적 겨울음식에서 냉장, 냉동기술 발달로 여름철 별미가 됐으니 격세지감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평양냉면과 관련된 서적들이 심심치 않게 출판된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해 8월 제목부터 직관적인 ‘평양냉면’이란 책이 나왔다. 저자가 ‘김남천, 백석, 최재영 외’라고 적혀 있다. 다름 아닌 이들이 쓴 글을 엮거나 관련 기사 등을 모아 놓은 것이다. 김남천은 소설가이자 평론가로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활동을 한 작가고 백석은 시인으로 ‘국수’라는 시를 통해 평양냉면을 섬세하게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눈에 띄는 내용은 평양냉면과 관련한 유종석이란 언론인이자 소설가의 <냉면 한 그릇>이란 단편 소설을 발굴해 낸 것이다. 1917년 최남선의 <청춘>이란 잡지 현상 공모에 당선된 글이라고 한다. 이 책을 엮은이는 이를 냉면을 소재로 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소설이라고 했다. 근대소설 중 음식소설의 기원은 1914년 심천풍(심우섭)의 <주>(1914)라는 작품으로 보는데, 이를 기준하면 유종석의 음식문학은 초기 음식소설로 기록될 만하다.

시기적으로 이 때는 평양에서 상업화에 성공한 냉면이 서울로 진출할 때다. 서울은 인구증가와 설렁탕을 빼면 변변한 외식이 없던 터라 평양냉면이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그러다가 한국전쟁 때 피난 내려 온 실향민들이 생계형 냉면집을 차리면서 ‘냉면 춘추시대’가 열렸다. 서울을 중심으로 서해 백령도부터 동쪽으로 양평까지 휴전선을 이고 자리 잡은 곳도 다양하다. 거의 모든 실향민이 그렇듯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기 수월하게 휴전선 인접지역에 똬리를 틀었던 것이다.

▲ 3회에 걸쳐 미쉐린 가이드 빕 구르망에 오른 평양냉면 면옥을 두루 다니고 있다. 첫 번째로 지난 2월 강남권에 위치한 봉피양, 진미평양냉면, 능라도에 이어 3월엔 강북권 사대문안 필동면옥, 우래옥, 남포면옥을 다녀왔다. 다음번에는 강북권을 사대문 밖을 방문할 예정이다.

필자는 3회에 걸쳐 미쉐린 가이드 빕 구르망에 오른 평양냉면 면옥을 두루 다니고 있다. 지난 2월 하순 강남권 진미평양냉면, 봉피양, 능라도에 이어 두 번째 시간으로 지난 21일 강북권 사대문 안에 있는 필동면옥, 우래옥, 남포면옥을 방문했다. 이번 평냉투어에는 1차에 참여했던 익명의 음식평론가와 새롭게 합류한 비교미각 절대고수인 유망 모바일게임업체 전 모 대표가 동행했다. 이들은 미스터리 쇼퍼로 음식점 평가를 다니기 때문에 이름을 밝힐 수 없다.

비교미각이란 절대미각의 상대적 개념으로 어떤 음식에 대해 ‘가장 맛있는 음식점’을 기준으로 순위를 세울 수 있는 미각이라고 할 수 있다. 절대미각과 마찬가지로 학문적으로는 정립된 바가 없지만 미식가들 사이에서는 인정되는 미각의 영역이다.

비교미각은 철저한 경험에서 얻어지는 입맛이다. ‘김치찌개’란 메뉴가 나오면 전국 어느 지역 어느 집이 잘하고 그 집의 역사는 대충 이러하단 배경까지 줄줄 읊을 수 있는 경지가 돼야 한다. 물론 음식에 대한 인문학적 배경지식도 두텁고 깊어야 비교미각이 ‘좋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전 대표는 어려서부터 다져진 ‘외식’ 맷집과 쉽게 타협하지 않는 입맛이 혀의 감각을 진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

비교미각 전문가와 필동면옥‧우래옥‧남포면옥 등 투어

첫 방문지인 남산 밑 동국대 후문 쪽에 위치한 필동면옥에서 전 대표는 “물에 빠진 고기(수육을 일컬음)는 안 먹는데 유일하게 필동면옥 제육은 먹는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필동면옥의 제육은 같은 의정부 계열(의정부 평양면옥, 을지면옥 등)과도 살짝 달라 ‘선육후면’ 애주가들이 즐겨 찾는다.

삶아내는 방법과 손님에게 내놓기 전 처리방법이 남다를 것으로 사료된다. 마치 제주 흑돼지 수육을 삶아 낸 방법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흑돼지는 식재료 자체가 워낙 풍미가 좋아 실패만 않으면 기본 맛이 나지만 일반 돼지는 특별한 식감을 내기가 쉽지 않다. 아무튼 최근에 평양냉면집 구호 같은 ‘선주후면’, ‘선육후면’ 때문에 제육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다시 냉면으로 돌아가자.

미쉐린은 필동면옥에 대해 “중구 필동에 자리하고 있는 남산골 한옥마을 인근의 평양냉면 레스토랑이라며 ”내로라하는 평양냉면 전문점 중 하나로 오랜 세월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아왔다“고 평했다. 또 ”자칫 특징 없이 밍밍하다고 느낄 수 있을 만큼 깔끔한 맛을 자랑하는 이곳 육수에서 나는 섬세한 육향과 은은한 감칠맛에 중독되어 단골이 된 손님들도 많다“며 ”두툼하면서도 부드럽고 촉촉한 돼지 수육은 이 집의 또 다른 명물“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특히 “정통 평양냉면을 선보이는 곳들 중에서도 특유의 섬세함을 가장 잘 표현해낸다는 평을 받는 곳이기도 하다”고 덧붙였을 정도로 ‘세기(細技)’를 인정받았다. 필동면옥에 대한 이날 평냉투어 팀의 공통된 의견은 육수를 낼 때 돼지고기를 많이 써서 육향이 풍성하다는 것이다. 또 면은 애호가들이 보편적으로 좋아하는 굵기, 찰기, 매끈함 등으로 대중적 지지도가 높다고 평가했다.

전 대표와 음식칼럼니스트 모두 필동면옥에서 평양냉면을 처음 접하고 매력에 빠져들었다고 했다. 특히 전 대표는 필동냉면의 제육을 맛있게 먹는 삼합 레시피를 가지고 있었다. 먹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자. 먼저 제육과 함께 비빔냉면 사리를 시킨다. 이 경우 사리를 안줄 때도 있는 데 나중에 물냉면을 먹는다고 하면 된단다. 비냉 사리를 비빈 후 제육 크기 정도로 면을 잘게 자른다. 그리고는 무김치와 배추김치를 깔고 제육 한점, 비냉 한 젓갈을 올리고 겨자를 얹어서 먹는 방법이다. 일명 ‘필동비냉삼합’이라고 하는 제법 맛있게 느껴지는 제법이다.

▲ 서울 중구 필동에 위치한 필동면옥 평양냉면

필동면옥, ‘앞으로 먹고 뒤로 먹어도 좋은’ 보편적 평양냉면 맛

필동면옥 육수는 입안에 잔향이 제법 오래 남는다. 이유는 육수를 만들 때 넣은 다양한 첨가물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진미평양냉면보다 육수가 묵직하게 느껴졌다. 어떤 냉면들은 비교를 할 때 같은 염도 수치임에도 불구하고 짠맛이 틀리다. 육수가 짜다고 느껴지면 첨가물이 덜 들어간 것이다. 채수나 조미료 등 첨가물이 들어가면 뾰족하던 맛이 원만해지고 짠 맛을 나중에 올라오거나 느끼지 못한다.

흔히들 “필동면옥 냉면은 앞으로 먹고 뒤로 먹어도 괜찮다”고 표현한다. 맛이 뾰족하지 않고 둥그렇기 때문이다. 특히 돼지고기가 많이 들어가 육향이 제법 강하다. 제육 판매가 늘어나다 보니 옛날보다 돼지고기를 많이 넣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다.

필동면옥에서 소고기 수육을 시켜 먹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간혹 있다 해도 제육과 반반 섞어 먹는다. 그만큼 소고기 수요는 적고 돼지고기는 많다보니 육수 조성이 어느 정도 감이 잡힌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제육 반접시가 사라졌고 값이 수시로 인상된다는 것이다. 평양냉면 입문자들의 성지 같은 곳인데 냉면과 더불어 필동냉면의 시그니처를 맛 볼 수 있는 제육 반 접시가 부활했으면 좋겠단 생각을 해 본다.

계산을 마치고 을지로4가에 있는 우래옥으로 향했다. 12시가 갓 넘어 도착한 우래옥에서 가장 먼저 일행을 반긴 것은 이미 빽빽하게 적힌 대기자 명단이었다. 남한의 평양냉면 전설이자 성지다. 미쉐린에서도 우래옥의 긴 대기줄이 인상적이었나 보다.

▲ 서울 중구 주교동에 위치한 우래옥 평양냉면

우래옥, 평양냉면 성지로 실향민들이 많이 찾는 소울푸드

미쉐린 평가원은 “서울 시내 최고 평양식 냉면 전문점 중 하나로 손꼽히는 우래옥은 1946년 개업한 이래 꾸준히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유서 깊은 레스토랑이다. 이 집의 대표 메뉴는 전통 평양냉면과 불고기. 오랜 세월에 걸쳐 습득한 노하우와 국내산 재료만을 사용하는 뚝심으로 한결같은 맛을 자랑하는 냉면과 고품질의 한우를 제공한다”고 평가했다. 덧붙여 “레스토랑 내부가 상당히 넓은 편이라 많은 손님들이 몰리는 바쁜 시간에도 효율적인 좌석 배치가 가능하지만, 그럼에도 문 앞엔 항상 긴 줄이 늘어서 있다”고 묘사했다.

우래옥 홈페이지를 보면 ‘진하면서도 깔끔하고 구수한 면과 진육수, 그리고 최고의 메밀순면’이라며 ‘옛맛 그대로의 맛을 자아내기 위해 전통의 한우만을 선택해서 70년 동안 우래옥만의 색깔을 고수했습니다’라고 안내하고 있다. 그러나 우래옥은 꽤 오래전부터 순면 판매를 중지했다고 한다. 순면 판매 중지에도 불구하고 외부로 알려지지 않았는데, 그만큼 순면을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았던 게 아닐까 싶다.

이날 우래옥 육수는 가히 최고였다. 면에 적셔서 입안으로 끌어 올릴 때 진한 육향과 더불어 밸런스가 절묘하게 잡힌 풍미로 참석자 모두 엄지를 세웠다. 전 대표의 미식론은 우래옥에서도 계속 됐다. 순면 냉면사리를 자작한 불고기 육수에 적셔 먹으면 고소함과 단맛을 느낄 수 있는 별미라고 설명했다. 불고기에 들어가는 당면사리보다 훨씬 식감도 좋고 위도 편하게 한다는 점에서 한번 쯤 따라 해볼 만한 제법이다.

우래옥에는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 손님이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많다. 이 곳이 평양냉면 성지로 일컬어지는 이유가 바로 이들 실향민들을 위로하는 ‘소울푸드’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흰머리의 노인들이 냉면을 젓가락으로 들어 올리는 모습은 매우 경건하다. 만감이 교차해 보이는 눈빛을 보면 가슴이 먹먹해 지기까지 한다. 누구에게는 미각을 즐겁게 하는 음식이지만 또 어떤 이에게는 고향의 뒷동산을 떠오르게 하는 추억의 마중물이 되기도 한다.

▲ 서울 중구 무교동 골목에 위치한 남포면옥 평양냉면

남포면옥, 한결같은 서비스로 남녀노소로부터 사랑 받는 곳

시청 옆 무교동 골목에 위치한 남포면옥은 본관 수리에 들어갔던 때 바로 옆에 별관을 얻은 것을 지금도 계속 운영하고 있다. 남포는 평양을 가로질러 흐르는 대동강의 남쪽 포구를 일컫는 말이다. 우리로 치면 마포, 영등포 개념이다. 미쉐린은 남포면옥 냉면에 대해선 맛도 맛이지만 종업원들의 친절에 방점을 찍었다.

미쉐린 평가원은 “본관 보수공사를 마친 남포면옥은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오가는 오피스 빌딩 밀집 지역의 활기 넘치는 좁은 골목에 위치한 이북식 냉면집이다. 평양식 냉면, 어복쟁반, 전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이곳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오랜 세월에 걸쳐 대중적인 사랑을 받아왔다. 늘 손님들로 분주한 분위기 속에서도 군더더기 없는 서비스와 한결같이 밝은 종업원들의 응대가 매력적인 이 곳은 입식과 좌식룸으로 구성돼 있다”고 평가했다.

이날 투어팀은 두 그릇을 시켰는데, 세 그릇으로 나눠주겠다는 종업원의 친절을 직접 접했다. 주문, 서빙, 추가 반찬, 그리고 점포를 나올 때까지 보여줬던 환한 미소가 지금도 생각난다. 그런 종업원이 움직이는 광고판이고 최고의 홍보요원이다. 미쉐린 가이드의 평가 기준에 접객 서비스가 중요한 요소를 차치하는 이유는 음식의 맛은 맛으로만 결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남포면옥은 동치미에 강점이 있는 곳이다. 면수 대신 고기 육수와 동치미를 한 그릇 내온다. 매일 담가서 숙성을 시킨 후 가장 맛있을 때 꺼내 쓴다는 동치미가 이 집의 시그니처다. 평냉 육수에서는 생각향이 진해서 호불호가 갈리지만 그것에 길들여진 손님이 있기 때문에 이 집 또한 강북의 강자로 군림하는 것이 아닐까.

음식을 만들고 장사하는 입장에서는 대중성이 강한 필동면옥이 임팩트가 강하게 느껴졌다. 필동면옥의 경우 예를 들자면 호텔 셰프가 맛있는 포장마차를 하는 것과 같다. 우래옥, 남포면옥과 달리 채수를 섞지 않은 강한 육향이 면을 쳐올릴 때 같이 따라 올라온다. 강한 돼지 육향에 전분 섞은 면이 보편화 되다보니 마치 평양냉면 본류로 인식되는 듯하다. 어쩌면 우래옥에서 순면이 사라진 이유도 여기에 있기 않을까.

2월 강남권과 3월 강북권 평양냉면 집을 두루 다닌 결과 역시 평냉은 강북 내공이 훨씬 세다는 것을 느꼈다. 물론 시대가 파인다이닝 형태로 바뀌면서 음식만을 두고 평가하는 세상에서 업장 분위기와 서비스 등 복합적인 평가요소가 작용하지만, 여전히 평냉 강자를 나열하라고 하면 강북권이 우세다. 그런 점에서 강남권에 있는 필자의 서경도락이 추구해야 할 바를 선명하게 느낀 2차 투어였다. 다음 투어는 4월에 정인면옥과 을밀대, 마포 서경도락을 다녀 올 심산이다. 특이하게 양대창을 주력 하면서 평냉을 선보이는 청춘구락부도 후보지다.

▲ 성현석 서경도락·장수가 대표

[성현석 대표]
- 평양냉면·불고기 전문점 <서경도락> 대표
- 삼겹살·부대찌개 전문점 <장수가> 대표
- 푸드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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