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C 홈페이지 및 화면 캡처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지난달 MBC 예능 프로그램 ‘궁민남편’이 한국PD연합회가 주는 ‘이달의 PD상’을 수상했다. 해당 심사위원회는 ‘5명의 출연자가 남편의 무게를 벗어던지고 자아를 깨우는 과정에 주목했다’며, ‘다섯 남편들의 일탈을 통해 따뜻한 감동과 유쾌한 웃음을 전했다’라고 시상의 배경을 설명했다.

사실 이 프로그램은 별로 새로울 게 없다. 다섯 유부남이 모여 여행을 떠나 먹고 즐긴다거나(‘1박2일’), 큰소리를 치면서도 막상 서툰 육아로 애를 먹는(‘슈퍼맨이 돌아왔다’) 내용이다. 다른 예능처럼 게스트도 초대해 버라이어티를 꾀하기도 한다. 다섯 명의 아옹다옹하는 형식도 클리셰에 갇혀있다.

그러나 의외로 내용이 진득하다. 신애라의 25년 차 남편 차인표, 이남정의 22년 차 김용만, 엄윤경의 24년 차 권오중, 이혜원의 19년 차 안정환, 노혜리의 3년 차 조태관 등 5명의 남편과 아버지란 위치, 그리고 각 캐릭터가 만들어내는 내용이 친숙하면서도 웃기고, 익숙하면서도 짠하기 때문이다.

‘궁’의 오기는 ‘궁금한, 남편들의 일탈’이란 부제가 설명해준다. ‘하늘’, ‘크다’의 穹으로의 의미의 확장도 가능하다. 52살 동갑내기 차인표와 김용만이 재롱의 선봉에 선다. 널리 알려진 스타지만 드러나지 않았던 세세한 성격과 취향 등은 또래에게 공감대를, 젊은이에게 신비주의 해체를 선사한다.

▲ MBC 홈페이지 및 화면 캡처

40대의 권오중(48)과 안정환(43)도 널리 알려진 스타다. 안정환은 축구 스타 출신의 방송인이기에 타 출연자와 다른 예능의 순수성을 지켜준다. 또한 탤런트란 직업보다 조하문의 아들이라는 걸로 더 유명한 막내 조태관(33)이 보충 설명으로 거든다. 3명의 프로와 2명의 아마추어 같은 조합이다.

‘1박2일’로 치면 차인표는 이승기다. 출현하는 매 작품마다 진지한 캐릭터로 일관함으로써 점잖은 아저씨로 나이먹은 듯했지만 ‘궁민남편’으로 체면을 완전히 구겼다. ‘허당 중의 허당’이란 본색을 여실히 드러내며 이승기의 반전을 넘는다. 작가의 구성이나 PD의 연출일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의 코미디를 완성하는 이는 김용만이다. ‘감자골 4인방’의 반란부터 도박 사건까지 그야말로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다 겪은 그는 코미디계에서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고, 현 토크 코미디의 전성기를 연 산증인으로서 맹활약을 펼친다. 2살 형인 김국진이 외려 가벼운 이미지라면 김용만은 반대다.

‘1박2일’의 유일한 개그맨 김준호가 트러블 메이커의 기능을 했다면 김용만은 차인표를 선발대로 내세우고 나머지로 배수진을 친, 중심을 잡아주는 리더 역할을 튀지 않게 완수한다. MT 때 차인표와 짝을 이뤄 식재료 취득에 나섰으나 단 한 개도 얻지 못한 시퀀스에서 그의 존재감은 절정이었다.

▲ MBC 홈페이지 및 화면 캡처

김용만이 구성의 중심이라면 권오중은 재미와 감동의 근간이다. 지난 2월의 ‘내 동생 오중이는 갱년기다’ 특집은 육아 에피소드와는 또 다른 감동을 줬다. 그는 랩 댄싱 대회 우승자의 경력이 있다. 서태지와아이들의 ‘환상 속의 그대’ 안무를 만들었고, 쿵후 3단의 유단자란 화려한 이력을 갖췄다.

그러나 희귀병을 앓는 아들이 있는 집에 돌아와 아버지가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는 “눈물이 그만 나왔으면 좋겠다”며 울먹였고, 김용만은 “잘하고 있다. 나아지지 않는다고 희망이 없는 건 아니다”라고 위무했다. 유사한 통증을 하나 이상 앓는 시청자는 권오중과 함께 울고, 김용만에 위안을 얻었다.

동시간대 꼴찌 시청률임에도 왜 지명도와 친밀도가 높은지 그 정체성과 의의를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은 연예인이기 전에 남편이고, 아버지다. 그들도 사람이다. 화려한 듯했던 대학 4년간 MT도 미팅도 한 번 못 해본 안정환을 보라! 이 시대 대한민국의 모든 아버지와 남편들은 자아를 버리고 내달렸다.

그들이 중세 시대 마차의 말처럼 곁눈질을 차단당한 채 오로지 외길을 달려온 이유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가족을 보다 더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였다. 배우건, 개그맨이건, 육체노동자건, 감정노동자건 직업에 상관없이 남편이 되기로 결정한 이후 아버지까지 겸임하면 지극히 당연한 결과다.

▲ MBC 홈페이지 및 화면 캡처

이 프로그램이 시청률을 떠나 여타 예능과 달리 궁극의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는 이유다. 제작진의 존재론적 접근법은 훌륭했다. 우리나라 남자는 크게 ‘남자다울 것’과 ‘책임’의 2가지를 강요당한다. 남자로 태어났으면 한판 크게 벌려 남다른 성공을 이루고, 가장으로서 완벽하게 희생해야 한다.

그렇게 무심하게 세월이 흘러 자식들이 독립한 이후 찾아온 ‘빈 둥지 증후군’이 떨어뜨린 회한과 외로움에 오한을 느낄 즈음 ‘나는 뭔가’라는 질문이 내면에서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지난 세월 지친 몸으로 귀가할 때조차 기신기신한 몸을 강한 척 포장했어야만 했던 책임감에 대한 가치관이 흔들린다.

왜 권오중은 현진영이 자기 아래 수준이라고 허언증세를 보이고, 안정환은 무슨 이유로 골프 공으로 헤딩을 할 수 있다며, 지난 커리어마저 무너뜨리는가? 예능을 위한 포석이건, 오만이건, 연출이건, 의도를 떠나 그 자체가 자아를 찾기 위한 몸부림이다. 가장이란 계급장을 떼려는 해방의 용틀임이다.

엠페도클레스적 적자생존을 금과옥조로 살아온 아버지들이 이제 사상의 낭떠러지 앞에서 경제적 전투를 잠시 휴전한 채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다. 그리곤 초등학생처럼 티격태격하며 ‘남자는 늙어도 애’라는 여자의 테제를 입증한다. 아내의 사랑으로 쑥쑥 자라는 ‘국민남편들’은 그래서 사랑스럽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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