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봄’, 인생 항로 사유의 심오한 미스터리 판타지 [유진모 칼럼]

유진모 칼럼니스트l승인2019.04.09l수정2019.04.09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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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다시, 봄>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동명의 웹툰을 영화화한 ‘다시, 봄’(정용주)은 외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처럼 하루하루를 과거로 향해 사는 게 소재다. 이 판타지를 미스터리로 풀어나가는 수축과 이완의 솜씨가 유려하고, 얽히고설킨 플롯의 구조 역시 꽤 탄탄하다. 향후 주목해볼 만한 감독의 탄생이다.

신문기자 은조(이청아)는 소중한 외동딸 예은(박세이)을 한 치매 노인의 손에 의해 잃는다. 재판부는 정상참작으로 노인을 풀어주고, 은조는 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지만 세상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녀는 인터넷을 통해 만난 호민(홍종현), 준호(박지빈), 세아(이혜란) 등과 동반자살을 시도한다.

그러나 옆 침대에 누워있던 준호의 “내가 당신을 알아볼 때까지 기다려줘요”라는 마지막 기억을 안고 하루 전날로 깨어난다. 그렇게 그녀는 하루하루 과거로 가는 삶을 살게 된다. 드디어 예은이 죽던 날까지 거슬러 가고 간신히 딸을 구하면서 노인이 딸을 죽인 게 아니라 살리려 했던 진실과 직면한다.

은조는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되찾은 예은과 행복한 나날을 보내지만 수년 만에 예은은 다시 자신의 뱃속으로 돌아간다. 그녀는 타로 점을 치는 동생 미조(박경혜)를 찾아가 이 기구한 운명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그녀의 점포에 나타난 가구점 직원 호민과 마주친 뒤 그에게서 명함을 받는다.

▲ 영화 <다시, 봄> 스틸 이미지

호민은 홀아버지와 단둘이 산다. 대학생 때 전도가 유망한 유도 선수였으나 국가대표 선발 대회에서 왼쪽 어깨를 다친 후 모든 희망을 포기한 채 의미 없는 나날을 보내는 중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는 아들의 부상과 절망에 대한 충격으로 일찍 치매가 찾아왔고 그래서 호민은 삶을 포기했던 것.

은조는 매일 호민의 곁을 맴돌며 자신을 알리고 그의 미래를 바꾸려 노력하지만 호민에게 그녀는 그날그날 새로 만난 여자이기에 두 가지 모두 실패한다. 그렇게 영영 예은과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절망에 빠져있던 그녀는 우연히 준호 역시 자신과 같은 삶을 산다는 사실을 알고 그를 찾아가는데.

시간을 거슬러 가는 구조 상 ‘어바웃 타임’,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등 유사한 소재의 영화들과의 비교는 태생적 한계지만 그래서 실존, 운명, 인연, 화해 등을 아우르는 철학적 사유는 깊고 진지하다. 규칙적으로는 자연법을, 세계관적으로는 기계론을, 운명적으로는 예정조화를 따른다.

단순히 그 논리를 찬양하기보다는 은근히 비판적인 시선까지 겸유한 게 변별력이다. 세아는 가수가 꿈이었으나 기획사 사장에게 사기를 당해 꿈도, 전 재산도 다 날렸다. 준호는 은조보다 한술 더 떠 78년째 일정한 주기로 과거로 되돌아가는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을 사는 게 지겨워 죽으려 했다.

▲ 영화 <다시, 봄> 스틸 이미지

은조는 남자친구에 의한 임신을 운명론적으로 받아들였다. 사귀다 보니 사랑이란 게 별게 아니었고, 그저 그녀는 자신의 선택을, 그리고 그런 운명을 믿었으며, 그로 인해 예은을 얻음으로써 삶의 의미와 희망을 갖게 됐다. 그러나 직장은 그녀에게 불친절했고, 사회는 모녀에게 매몰찼다.

4명이 자살하기 위해 산속 절로 가는 길의 일방통행 터널과 한 사람이 간신히 빠져나갈 법한 좁은 통로 등은 그런 척박한 삶을 의미한다. 되돌아갈 수 없도록 험난하지만 반드시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해변에 은조와 호민이 나무들과 함께 검은 실루엣으로 서있는 시퀀스 역시 인생의 메타포다.

나무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눈보라, 폭풍, 비바람 등을 맞으며 서있어야 하듯이 사람(인생) 역시 험난하지만 후퇴란 있을 수 없다는 비유다. 은조가 뜻하지 않게 어제로 가는 삶을 살게 된 건 그에 대한 환유이자 유비적 문법이다. 과거로 가서 인생의 참의미를 깨닫고 용서, 화해, 치유를 배우라는 것.

예정조화는 전 우주에 존재하는 무수한 모나드가 각자 독립적이어서 서로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지만 신이 미리 전 모나드의 본성이 서로 조화하게끔 창조했고, 심신 관계 역시 그렇게 조화를 이룬다는 라이프니츠의 형이상학적 사상이다. 기계론은 목적론을 초월한 자연적인 인과법칙을 말한다.

▲ 영화 <다시, 봄> 스틸 이미지

결국 이런 개념들은 실천이성과 신법을 포함한 보편적이고 항구적인 규칙을 말하는 자연법을 관통한다. 영화 속 주인공들의 삶은 이 세 가지와 다른 듯 닮은 주의를 따른다. 은조의 사랑, 애인과의 주도적 이별, 예은의 임신과 출산, 호민 등 타인의 삶의 궤적을 바꾸려는 노력마저도 예정조화인 것.

그래서 은조와 호민은 “인생에 만약은 없다”라는 논제를 공유하게 된다. 갑자기 나타난 엄마의 전후 사정을 모르는 예은의 “엄마 왜 왔어?”라는 질문과 은조의 “예은이 보고 싶어 왔지”라는 답변의 아주 단순한 시퀀스는 기계론이다. 전생에 대한 현세의 인과응보인 카르마조차도 자연법이다.

은조가 과거로 가고, 호민이 미래로 가는 건 영화 속 현실이지만 다분히 관념론적인 설정이다. 은조가 평생 후회할 경기를 포기하라고 해도 호민이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뿌리치는 것과 동근원적이다. 은조는 어떻게 해서든 잘못된 과거를 바꾸려 하지만 호민은 받아들이거나 의지로 바꾸려 한다.

‘봄’은 봄과 삶, 그리고 재인식의 중의적 표현. 예은은 “엄마, 이제 울지 마”라고 삶을 재조명할 것을 언명하고, 은조는 “예은아, 내일 아니 어제에서 만나”라고 희망을 노래한다. CF나 뮤직비디오를 연상케 하는 영상미가 수려하고 “나는 어디로 가게 될까?”라는 인식주관이 섬세하다. 4월 17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유진모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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