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해피타임 스파이>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영화 ‘해피타임 스파이’(브라이언 헨슨 감독)는 멜리사 매카시가 주인공이고 제목에 ‘스파이’가 들어간다는 점에서 폴 페이그 감독의 ‘스파이’(2015)의 속편의 냄새를 풍기지만 전혀 상관없다. 그럼에도 ‘스파이’만큼의 재미를 기대해도 충분한 데다 담고 있는 메시지가 풍성하고 꽤 깊다.

인간과 인형이 함께 사는 평화로운 LA. 탐정 사무실을 차린 전직 경찰 인형 필립스는 육감적인 인형 산드라로부터 자신을 협박하는 사건을 해결해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그녀에게 날아온 편지에서 발견한 단서와 연결되는 한 섹스 숍을 방문했다 인형들이 무참하게 사살당한 것을 목격한다.

인간 형사 에드워즈(멜리사 매카시)는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다짜고짜 필립스와 질펀한 욕설로 대립각을 세운다. 과거에 그들은 파트너였다. 에드워즈가 한 인형 악당에게 인질로 잡힌 상황에서 필립스가 총을 쐈는데 총알은 범인을 빗나가 거리의 어린 딸과 함께 있는 무고한 인형을 죽이게 됐다.

이를 계기로 유일한 인형 형사였던 필립스는 해고됐고, 인형은 경찰이 될 수 없다는 법이 입법화됐다. 그 트라우마로 에드워즈는 평범한 일상생활을 할 수 없어 마약에 절어 사는 중이었다. 계속해서 아무런 이유 없이 인형들이 살해당하는 연쇄 사건이 발생하고 필립스의 형마저도 희생양이 된다.

▲ 영화 <해피타임 스파이> 스틸 이미지

필립스는 형이 제작한 예능 쇼 ‘해피타임 갱’의 출연자 7명이 차례로 살해당하는 중임을 깨닫고 에드워즈와 함께 출연자 중 생존자의 주소를 확보한다. 그러나 수사를 하는 동안 FBI 요원 캠벨이 나타나 필립스를 강력하게 의심하고, 마지막 생존자마저 살해당한 현장에서 필립스가 검거되는데.

영화는 대놓고 아직도 미국 등 많은 나라에 만연된 인종차별주의를 꾸짖는다. 퍼핏은 곧 유색인종이다. 사람보다 키가 작고, 얼굴은 형형색색이다. 필립스의 형은 피부 탈색으로 인간 흉내를 내고, 저급한 프로그램을 제작해 부귀영화를 누리지만 결국 자그마한 개들에게 갈기갈기 뜯겨 죽는다.

길거리에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춤을 추는 인형을 본 필립스는 “이제 세상은 변했다. 더 이상 인간을 위해 춤출 필요 없다”라고 주체성을 강조하지만 인간은 아직도 퍼핏을 ‘양말 쪼가리’로 부른다. “사람은 퍼핏을 이해하지 못해”라는 대사는 인간과 인형이 실제론 유리한 공간에 산다는 뜻.

뿐만 아니라 여성을 무시하는 남성우월주의 역시 통렬하게 비꼰다. 여형사인 매카시가 맹활약을 펼치고, 인형 필립스가 정의로운 데서 감독의 깨어있는 의식이 빛난다. 더불어 인형의 출연료를 비정상적으로 많이 떼어가는 인간 PD를 등장시켜 연예산업계의 노동력 착취를 만천하에 고발한다.

▲ 영화 <해피타임 스파이> 스틸 이미지

그럼에도 아직 희망은 있다. 누군가 “난 독이야”라고 자학하자 상대방은 “모든 독엔 해독제가 있어”라고 절망은 금물임을 설파한다. 필립스가 마시는 술병엔 ‘에인션트 에이지’라고 적혀있다. 냉소적이고, 이기적인 현대보다 차라리 인간미와 민주주의가 살아있던 고대가 좋았다는 향수다.

이 영화는 다분히 인종차별에 더욱 앞장서는 경찰에 대한 조소를 담고 있다. 아예 대놓고 ‘FUZZ’라는 미장센을 부각시킬 정도. 현역 시절 필립스는 인형에게 총을 쏘지 못하는 경찰로 낙인찍혔었다. 실제 에드워즈 인질 사건 때 지근거리에서 범인을 제대로 저격하지 못하고 애먼 희생자를 만들었다.

그때 에드워즈는 범인과 몸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그의 총에 맞았고, 필립스는 절체절명의 파트너를 살리기 위해 인근의 인형 전문병원으로 달려가 퍼핏의 장기를 이식하는 긴급조치를 취했다. 다행히 에드워즈는 생명은 건졌지만 인간의 정체성은 훼손돼 마약에 손을 대는 등 방황의 나날을 살았다.

“난 인간이건 인형이건 어느 쪽에서도 환영을 못 받아”라는 그녀의 존재론적 허무주의는 혼혈인을 바라보는 사회의 부정적 편견을 의미한다. 전설적인 블루스 기타리스트 스티비 레이 본을 장님이라고 잘못 말하는 시퀀스 역시 사람들이 얼마나 잘못된 선입견과 편견을 갖고 있는지 강하게 훈계한다.

▲ 영화 <해피타임 스파이> 스틸 이미지

필립스의 비서 버블스는 인간 여자다. 혼혈인 듯한데 적어도 백인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그녀는 평소 필립스를 가장 이해하고 구속 후 그의 무고를 그 누구보다 확신해 구명운동에 앞장선다. 필립스는 전에도 매력적인 인간 여자 제니와 뜨거운 사랑을 나눈 바 있고, 버블스와도 묘한 분위기다.

그가 사람에게 미움받고, 살인범으로 몰린 이유는 인형의 주제를 넘어선 능력으로 출세 가도를 달렸기 때문일 것이다. 유색인종이 백인의 영역에 들어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겁내는 백인이 남아있는 사조와 아직도 잔존한 영화나 드라마의 흑백 남녀의 결합을 터부시하는 풍조를 폭로한다.

감독은 근친결혼의 해악까지 계몽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사촌남매가 눈이 맞아 결혼을 했는데 쌍둥이 딸이 기형으로 태어났다. 그리고 그들이 사는 집은 ‘아담의 갈비뼈 기도원’이다. 성서의 오역으로 근친결혼을 정당화하려 하고, 사랑이라는 이름까지 함께 욕되게 하는 자들에 대한 교훈이다.

영화는 미스터리 스릴러에 꽤 볼 만한 액션이 펼쳐진다. 또한 내내 ‘B급 병맛’의 코미디가 넘실댄다. 퍼피티어들의 노력으로 탄생한 인형들의 디테일한 연기는 매우 사실적이어서 훌륭하고, 매카시즘에 ‘코미디 보증수표’라는 상징을 새로 쓴 멜리사 매카시의 맹활약이 돋보인다. 청소년 불가. 91분.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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