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하고 애절한 ‘블루스(blues)’ [김권제 칼럼]

김권제 칼럼니스트l승인2019.04.24l수정2019.04.24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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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김권제의 생활어원 및 상식] 블루스(Blues)는 19세기 중엽 미국 남부 흑인들이 창시한 장르 혹은 음악적 형태이다. 이는 아프리카 전통 음악과 노동요 그리고 유럽계 미국인의 포크송을 뿌리로 두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스피릿튜얼스, 노동요, 필드홀러, 링 샤우트, 찬송가 그리고 발라드 등이 혼합되어 블루스가 된 것으로 전해진다.

블루스 형식은 재즈, 리듬 앤 블루스, 록큰롤의 안에서도 나타나는데, 주고 받기 형식, 블루스 스케일을 이용한 여러 코드 진행, 그리고 12마디 진행이 일반적이다. 블루스 탄생 배경에는 노예 및 목화밭 노동 등 억압받는 사람의 저항의 요소가 내재해 있다. 백인들은 노예들의 반항과 폭동이 두려워 드럼을 금지시키고 순종시키기 위해 유럽 스타일의 음악을 가르쳐주었다. 그래서 오늘날 기본이 되는 12마디 가사의 블루스 구조가 탄생한 것이다.

블루스와 재즈는 논쟁거리이다. 어떤 이는 재즈가 블루스에서 파생되었다고 보고, 또는 그 반대라고 생각하지만 블루스와 재즈는 같이 성장했다. 블루스는 음악적 형태와 장르, 재즈는 음악적 예술 형태이다. 블루스는 코드 진행과 장르를 이 안에서 만들었다고 확신할 수 있지만, 재즈는 19세기의 렉타임과 모던 퓨전 음악을 전부 포함해 범위가 매우 넓기에 파악하기 어렵다. 블루스와 재즈는 이런 차이점에도 공통점이 많다. 둘다 미국 남부와 19세기 말에 만들어졌다. 블루스는 아프리카-아메리칸의 노동요, 스피릿튜얼스, 찬송가 그리고 할러에서 왔다. 또한 특징인 코드 진행, 플랫, 혹은 밴드 노트, 블루 노트, 그리고 슬프고 우울한 가사가 있다. 재즈도 남부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부터 나왔지만, 결과적으로 아프리카와 유럽 음악이 섞였다.

블루스 기원에 정확한 기록이 없으나 1890년도 정도에 미국 남부 농장의 노예들로부터 시작됐다 추정한다. 남북전쟁 후 노예들의 노동요 등 아프리카적 음악들이 민스트럴 쇼(백인이 흑인분장으로 흑인생활을 희화), 교회 복음성가, 카우보이 노래 등과 합쳐지며 렉타임, 부기우기 등으로 발전했고, 블루스의 원류를 형성하는 음악이 된 것이다. 블루스가 완전한 형태를 이룬 것은 19세기 후반으로 여겨진다. 오늘날 기본인 12마디 블루스 역시 이 시기에 나타난 것으로 보이지만, 당시 주 형태는 12마디가 아닌, 8마디 블루스가 2번 나열되는 형태였다.

블루스라는 말이 처음 쓰인 것은 1890~1900년 초이며 처음 발매된 블루스는 1908년 안토니오 마지오의 ‘I Got the Blues’이다. 그 뒤 하트 반드의 ‘Dallas Blues’와 흑인밴드 리더 W.C. 핸디의 ‘Memphis Blues’가 1912년 발매되었다. 핸디의 곡은 인기 있었고, 그뒤 많은 노래들이 블루스라는 이름으로 나타났다. 블루스를 맨 처음 녹음한 사람은 1920년대 매미 스미스, 아이다 콕스 같은 흑인 여성들이다.

미시시피 델타 블루스로 불린 초기 블루스는 컨트리 블루스 혹은 포크 블루스로도 불린다. 1930년대는 대공황과 2번의 세계대전으로 많은 흑인들이 북부 도시로 이동하며 블루스는 넓은 지역으로 펴졌고 가사도 도시풍 주제를 채택했다. 블루스 밴드들은 솔로 가수 외에 피아니스트, 하모니카, 베이스, 드럼으로 구성됐다. 블루스는 애틀랜타, 멤피스, 세인트루이스에 처음 정착했고, 그 후 시카고와 뉴욕, 디트로이트 등지로 퍼져나갔다. 이 도시풍 블루스인 어반 블루스는 컨트리 블루스의 요소와 도시적인 특성을 적절히 융합했다. 1930년대와 1940년대 초 중요한 어반 블루스 스타일 중 하나가 부기우기이다. 1940년 재즈의 관악기 편성과 렉 타임, 부기우기의 전통을 받아들여 탄생된 또 다른 어반 블루스 스타일이 점프 블루스다. 이런 스타일의 개발로 발전한 어반 블루스는 조용하고 사색적인 남부 블루스와는 달리 활기차고, 격렬한 느낌을 전달했다. 후에 점프 블루스는 로큰롤과 리듬 앤 블루스의 탄생에 기여했다.

1931년 발명된 일렉트릭 기타가 1950~60년대부터 팝 뮤직에서 중요한 악기가 됐다. 그래서 블루스에도 일렉트릭 기타만의 독특한 주법들이 사용됐고, 본격적으로 모던 블루스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를 일렉트릭 블루스 혹은 시카고 블루스라 부른다. 악기도 시카고 때부터 피아노와 베이스, 드럼 등이 본격적으로 사용되어 음악적인 테크닉 및 표현방식이 휠씬 다양해졌다.

최근 흑인 음악을 통칭하는 ‘리듬 앤 블루스’는 사실 1940년대의 일렉트릭 블루스를 의미하는 표현이었다. 일렉트릭 블루스가 재즈 그리고 가스펠적인 요소를 받아들임으로서 탄생한 리듬 앤 블루스는 리듬이 들어가면서 슬픈 기조에서 매우 밝고 힘찬 음악으로 변모했다. 리듬 앤 블루스는 시간이 갈수록 더 템포가 빨라지고 사람들은 그 빠른 리듬 앤 블루스를 로큰롤로 부른다. 

1950년대 후반, 백인들이 블루스를 받아들여 가공하면서 록 음악이 생겨났다. 하지만 블루스의 성장과 록의 탄생은 영국이었다. 미국에서 블루스 열풍이 줄어들자 빅 빌 브룬지 등은 유럽에서 새 시장을 찾았고, 딕 워터맨 등이 유럽에서 만든 블루스 페스티벌은 영국에서 블루스가 유명해지게 했다. 영국 밴드들은 미국 블루스를 따라했고, 록 기반의 영국 블루스 밴드는 1960년대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미국 블루스 록이 로큰롤의 토대 위에서 성장했다면 영국 블루스 록의 기초는 '스키플(Skiffle)'에서 활성화 되었다. 스키풀은 흔히 영국의 로커 빌리, R&B와 영국 컨트리 음악의 퓨전, 영국의 블루그래스 등으로 규정된다. 스키플이 브리티쉬 블루스 록으로 변화한 것은 60년대 초반이다. 영국의 블루스는 미국에 앞서 나갔다. 또한, 이들의 영향을 받은 롤링 스톤즈, 비틀즈 등 때문에 "브리티시 리듬 앤 블루스"로 불리는 영국 블루스 음악이 록으로 진화했다.

미국의 블루스도 영국처럼 자국의 로큰롤에 기초해 성장했고 60년대 록 사운드를 주도해 나갔다. 백인들이 1960년대 블루스에 관심을 가질때, 시카고 기반의 폴 버터필드 블루스 밴드와 영국 블루스의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영/ 미의 블루스 록은 거의 같은 기초 위에서 출발했지만 전성기에는 차이를 보인다. 60년대 미국은 반전, 반정부적 사상으로 아메리칸 블루스 록은 영국의 신사적인 블루스보다 더욱 싸이키델릭한 사운드에 근접해 있었다. 영국은 미국의 싸이키델릭 블루스가 사회 참여와 저항정신을 간직하고 있었고, 또한 60년대 대중 음악의 모습이었기에 미국의 것을 받아들였다. 블루스 록이 전성기에 달했을 때 영국과 미국의 사운드는 융합되기 시작했다.

우울하고 애절한 ‘블루스(blues)’는 어디에서 유래한 말일까?

‘블루스(blues)’의 어원에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첫번째는, 아프리카인의 장례 의식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다. 두번째는, 의미가 ‘melancholy and sadness’인 ‘Blue Devils’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으로 신빙성을 더 인정받는다. 장례 의식 설은 남부 아프리카인들이 장례 시 청색(블루) 옷을 입는 것에서 ‘블루스’란 말이 유래했다는 것이다. ‘Blue Devils’는 우울과 슬픔을 의미한다. 이 말은 George Colman의 원맨 광대쇼 ‘Blue Devils, 1798’에서 처음 사용되었는데, 1600년대 영국의 표현 중 "강렬한 시각적 환각을 동반한 심한 알코올 금단 증상"이란 용어를 줄여 ‘Blue Devils’라 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이 단어가 ‘Blue’만 남아 ‘Blues’가 되었고 불안 상태 혹은 우울한 상태를 뜻하는 말로 바뀌었다. 1800년대 미국에선 ‘블루스’가 취하다란 속어로 쓰였다. 이 ‘블루스’와 ‘음주’가 합쳐져서 'Blue laws'가 만들어졌다. 이 법은 아직도 몇몇 미국의 주에서 시행되는 일요일 알코올 판매 금지법이다.

[김권제 칼럼니스트]
고려대학교 영어교육학과 졸업

김권제 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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