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복학 생활자의 수기 [김민범 칼럼]

김민범 청춘칼럼니스트l승인2019.04.29l수정2019.04.29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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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김민범의 다정다감(多情多感)] 나는 복학생이다.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했다. 남들이 말하는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까지는 아니어도, 되지 않을 거라는 불안은 없었다. 간혹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할 때마다 내가 너무 버릇없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상대의 작은 말소리에 잘 못 들었다는 말이 불쑥거렸지만, 아무튼 나는 군인이 아니었다. 그토록 염원하던 민간인의 생활은 행복했다. 숨 쉬는 일이 달콤했고, 슬쩍 취해 밤거리를 걷는 날이면 절로 웃음이 나왔다.

개강이 다가오자 전에 없던 공부에 대한 열정이 솟아났다. 듣고 싶은 수업이 많아서 몇 번이고 시간표를 다시 짰다. 두 번째 수업 만에 포기했던, 국어의 문법, 발음, 문장 성분들을 공부하는 ‘국어학의 이해’를 기쁜 마음으로 재수강 신청했다. 수강 신청이 끝나고는 수업 때도 안 읽어가던 책들을 찾아서 들춰봤다. 틈틈이 아르바이트한 돈으로 옷을 사고, 파마도 했다. 복학생 티를 내는 건 아닌가 걱정되기도 했지만, 혹시나 하는 막연한 기대를 자주 했다.

3월의 학교는 생각보다 추웠고, 나는 갈 곳이 없었다. 새로 산 옷은 3월에 입기는 조금 추웠다. 머리는 바람에 날려 학교 가기도 전에 망가졌다. 그보다 중요한 건 학교에 아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그리던 캠퍼스 생활에서 빼먹은 게 있었다. 내가 다니던 과는 통·폐합으로 인해 돌아가기 애매한 위치에 있고, 알던 사람들은 졸업하거나 휴학해서 학교를 떠났다. 혹 학교에 다니는 사람들도 4학년이 되어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학교생활에 도킹 실패하자 무중력상태가 되었다. 어디에도 속할 수 없었다.

수업 시간 첫째 줄에 앉던 열정은 한 달을 넘기지 못했다. 수업이 끝나면 도망치듯 학교를 빠져나왔다. 불안했다. 핑계처럼 대던 군대마저 다녀왔는데 별다르지 않았다. 20대의 포기에 대한 담론이 연애, 결혼 출산에서 취업과 주택으로 늘고, 인간관계와 꿈까지 확장되는 걸 보면서 담론보다는 종용처럼 느껴졌다. ‘포기’라는 말은 가지고 있던 일은 그만둔다는 뜻이다. 가진 적도 없는 걸 뺏긴 기분이었다. 어차피 안 될 거라며 자조해왔지만, 포기해야 할 게 는다는 건 우습지 않았다. 새롭게 만난 사람들은 모두 열심이었다. 성적 관리, 대외활동, 토익, 아르바이트까지 척척 해내고, 방학 때는 모은 돈으로 여행을 거거나 해외 봉사를 떠났다. 누군가는 자격증을 땄다고 했다.

이렇게 열심히 사는 이들도 결국 포기해야 하나 싶어서 겁이 났다. 두려웠다. 학교에서 느꼈던 냉기가 앞으로 계속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르바이트나 대외활동에서 간혹 만나는 ‘어른’들은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있다고 하면 경영학과로 전과 혹은 복수 전공하라는 충고를 해주셨고, 공무원 시험 준비는 어릴수록 좋다는 조언도 해주셨다. 그런 분들은 노동 착취를 경험으로 그럴듯하게 포장했다.

하지만 그런 일마저도 포기할 수 없었던 건 두려웠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또래 사이에서 끊임없이 뒤처지는 기분이었다. 어디서나 을이었고, 아쉬운 건 내 쪽이었다. 물론 좋은 사람을 더 많이 만났다. 그런데도 어차피 잘 살지 못할 거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못 살 예정이라는 평소 생각을 말하기는 쉽지 않았다.

갈팡질팡하던 복학 첫 학기가 끝났다. 나는 ‘국어학의 이해’에서 또 재수강을 받았고, 학교에서 새롭게 만난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혹시나’가 ‘역시나’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 새 학기를 앞두고 있다. 공부를 열심히 할 거라는 헛된 희망은 품지 않는다. 여전히 뿌리 내리지 못하고 둥둥 떠다니는 처지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대한다. 나와 같이 부유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기를 그래서 가진 게 없으니 포기할 게 없다는 사실을 나누고, 하고 싶은 일을 꾸준히 할 거라는 순진한 각오를 다지기를 바란다. 부디 다음 학기에도 경영학과 공무원을 만능 주문처럼 외우는 일은 없도록 기도한다.

김민범 청춘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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