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산 아래 600년 역사적 공간 종묘(宗廟)을 걷는다 [최철호 칼럼]

최철호 성곽길 역사문화연구소 소장l승인2019.05.04l수정2019.05.16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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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피고 꽃 지니 백악산은 반쯤 핀 모란 같이 아름답다
곡우 지나 입하 오니 나무 새순 초록으로 울울창창하네
삼춘차(三春茶) 한잔 창덕궁 지나 사색길 종묘를 걷는다.

▲ 백악산 성곽에서 바라 본 병풍처럼 펼쳐진 삼각산

[미디어파인=최철호의 한양도성 옛길] 경복궁의 북문 신무문에서 앞을 보니 화강암 바위들이 즐비하다. 겸재 정선의 그림 속 바위들이 눈에 띈다. 취미대,대은암,독락정,청송당등 장동팔경첩이 바로 이곳이다. 300여 년 전 그림 무대가 펼쳐진다. 꽃들과 나무순들이 조화롭게 얽혀있다. 길을 따라 오르니 청계천 발원지 백악산과 인왕산의 골짜기다. 지네처럼 구부러진 길 위에 성문이 우뚝 나를 보며 서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성문이다. 성벽과 성돌 하나하나 오랜 세월을 지탱한 흔적이 역력하다. 창의문(彰義門)이다.

인왕산과 백악산 사이 창의문을 만나다

▲ 인왕산과 백악산 사이 창의문_한양도성 안 가장 아름다운 성문

한양도성 4대문과 4소문 중 가장 아름답다. 겸재 정선의 ‘창의문’ 그림에서 언덕 위 누각과 경회루에서 숭례문까지 한눈에 보인다. 창의문은 도성안과 도성밖을 구분하는 성문이다. 도성안 청운동과 도성밖 부암동은 계곡물이 흐르는 승경지다. 지금도 아름답다. 창의문은 자하문(紫霞門)이라 불리었다. 옛 자하계곡이 있는 자하동에서 유래하였다. 겸재 정선의 ‘자하동’도 바로 이곳에서 비 그친 새벽에 그린 그림이다. 자문밖 풍경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언제나 고요하고 아름답다. 물소리와 물안개가 산 아래 보이는 듯 하다.

▲ 백악마루에서 바라 본 서울_창덕궁과 종묘 그리고 목멱산

창의문을 오르면 백악산 성곽길이 가파르게 펼쳐진다. 백악마루에 오르는 길은 예나지금이나 쉽지 않다. 하지만 올라가야 한양과 한강을 만날 수 있다. 여름이 오기전 백악산 오르는 아침길은 상쾌한 사색의 길이다. 한눈에 펼쳐지는 병풍같은 삼각산, 꽃잎이 나뿌끼는 성곽길은 이곳이 별유천지임을 느끼게 한다. 백악산 정상 342m을 오르니 동서남북이 산과 산으로 연결 되어있다. 좌청룡 낙타산과 우백호 인왕산 사이에 남주작 목멱산이 보인다. 남면하여 경복궁이 자리잡고 좌측에 종묘, 우측에 사직단이 보인다.

종묘,제례를 만나다

▲ 종묘 정전_지붕이 단층으로 가장 긴 목조건물_101m

왕은 살아서 궁과 궐이요,죽어서 능이며,혼을 종묘에 모셨다. 조선을 창업한 후 한양으로 천도하여 백악산에 올라 좌묘우사, 종묘와 사직단의 위치를 잡는다. 법궁인 경복궁보다 먼저 종묘와 사직단을 지었다. 600여 년의 역사와 문화가 한눈에 펼쳐진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목조건물이다. 단층으로 101m 길이다. 20개의 기둥과 19칸의 문이 단조롭지만 엄숙하다. 19위의 왕과 30위의 왕비 신주를 모시는 신성한 공간이다. 담은 높고 길어서 밖에서 보이지 않는 사당이다. 남문과 동문,서문을 통해서 박석을 걸어야 왕과 왕비를 만날 수 있다. 이곳은 종묘 정전(正殿)이다.

▲ 종묘 정문 지나 오른쪽 연못_천원지방 이상향을 꿈꾸는 지당

정문을 들어서면 2개의 연못이 있다. 꽃이 피고 나무가 울창하다. 오른쪽의 연못에는 작은 섬도 있다. 동그란 섬 위에 나무가 크다.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전형적인 형태이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함께하는 이상적인 사회를 꿈꾸며 만들었다. 다른 곳의 연못과 달리 생물이 없다. 물고기가 살지 않은 연못이다. 물결의 흐름이나 요동이 없다, 소방전의 역할도 했을 것이다. 지금은 보이지 않는 한양도성 밖 남지(南池)와 동지(東池)처럼 연못이 작지 않다. 종묘 안의 연못은 3개의 지당(池塘)이라 하였다. 상지(上池),중지(中池),하지(下池)였으나 현재는 2개다. 3도(三道) 좌우에 있는 연못은 내용을 알고 보면 더 엄숙하고 경건하다. 지당은 고요하고 은은하여 마음을 차분하게 한다.

3개의 길 위에서 길을 걷는다

▲ 입하를 향해가는 종묘 안 느티나무

3도는 정문에서부터 종묘 정전과 영녕전까지 3개의 길이 펼쳐져 있다. 신의 길과 왕의 길,그리고 세자의 길이다. 길 위에 길에 있다. 길 위에 길을 찾아 걸어야 한다. 정전을 지나면 영녕전이다. 제 2의 정전이다. 왕가의 조상과 자손의 평안을 기원하던 공간이다. 재위 기간이 짧았던 15위 왕과 19위 왕비가 모셔져 있다. 노산군으로 폐위된 단종과 정순왕후 송씨가 추존되어 종묘 영녕전에 있다. 지붕 모습도 다르다. 박석의 단도 조금 다르게 배치 되어 있다. 이곳은 영녕전(永寧殿)이다.

▲ 인왕산 석파정 별당_한옥 속 여름으로 가는 꽃길

종묘에 또 다른 역사적인 공간이 있다. 공신당과 칠사당이다. 계절마다 다른 칠신을 모신 사당과 83위 공신들을 모신 사당이다. 또한 고려의 왕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를 모신 공민왕의 신당도 있다. 역사는 묻는다. 종묘에 신주가 없는 왕은 누구인가? 조선 27대 왕 중 10대 연산군과 15대 광해군이다, 왕이 아닌 군으로, 왕릉이 아닌 묘에,종묘에는 신주가 없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슬픈 역사 속에 존재한다.

▲ 인왕산 석파정 별당 가는 길_계단과 활짝 핀 여름꽃

종묘에 들어서면 고요하다. 꽃소리와 나뭇잎 변하는 소리 그리고 바람소리만 들린다. 음악과 노래와 춤의 몸짓 소리는 종묘제례악 소리뿐이다. 600여 년 서울 한복판을 지켜 온 종묘는 단순하지만 격식이 있다. 단청이 없는 단순함이지만 절제된 아름다움이 있다. 600여 년 동안 살아 숨쉬는 역사와 철학이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된 이유는 뭘까? 살아 있는 절대권력도 겸손과 예를 지켰던 신성한 공간이다. 종묘에서는 매년 5월 첫 번째 일요일에 종묘제례를 거행한다. 또한 종묘제례에 연주하는 음악과 춤이 종묘제례악으로 연주된다. 매우 소중하게 간직해야 할 아름다운 곳이다. 사직단과 함께 꼭 가보아야 할 공간이다.

▲ 인왕산 석파정 별당 가는 길_여름으로 가는 시간여행

전통과 문화가 역사를 이끌어 가듯
종묘와 사직단에서 꿈과 희망을 심어보자.

한켠 한켠 길 위에 박석을 깔아 놓듯
한걸음 한걸음 정성을 다해 걸어보자.

여기는 백악산 자락에 위치한 서울의 중심,역사의 공간 종묘(宗廟)이다.

▲ 최철호 성곽길 역사문화연구소 소장 - (저서)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최철호 소장]
성곽길 역사문화연구소 소장
‘한양도성에 얽힌 인문학’ 강연 전문가
한국생산성본부 지도교수
지리산관광아카데미 지도교수
남서울예술실용전문학교 외래교수

저서 :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최철호 성곽길 역사문화연구소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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