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악인전>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2005년. 천안을 중심으로 충청도 일대에서 연속해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중부 지역을 장악한 폭력조직 제우스파 두목 장동수(마동석)에겐 어릴 때 친구인 하상도(유재명)가 이끄는 조직 에이스파가 눈엣가시다. 동수는 영역 문제로 상도와 회의를 한 뒤 부하들을 보내고 직접 운전을 하며 귀가한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강경호(김성규)의 차가 동수의 차를 추돌한다. 범퍼가 살짝 긁힌 수준인 것을 확인하곤 경호에게 그냥 가라고 한 뒤 등을 돌린다. 그 순간 경호가 그의 등에 꽤 긴 칼을 꽂는다. 격투 끝에 경호를 물리치지만 중상을 입어 입원하고, 조직은 에이스파에 대대적인 공격을 퍼붓는다.

그러나 상도는 당당히 병문안을 오고, 경험이 많은 동수 역시 에이스파의 짓이 아님을 깨닫는다. 천안경찰서 강력팀장 태석(기무열)은 최근 잇달아 발생한 살인사건이 동기도, 이유도, 목적도 없지만 동일범의 소행임을 직감적으로 깨닫고 안 반장에게 어필하지만 꾸중만 들은 뒤 동수의 입원실을 찾는다.

태석은 용의자가 연쇄살인범임을 설명하며 정보를 요구하지만 동수는 자신의 손으로 처단하겠다며 거절한다. 경호 차의 번호판을 어렴풋이 기억하는 동수는 부하들에게 수배령을 내리고, 드디어 그 차를 찾아낸다. 그동안 경호는 또 다른 사람들을 여럿 죽인 뒤 계속 그들의 차로 갈아타며 이동 중이었다.

▲ 영화 <악인전> 스틸 이미지

미치도록 범인을 잡고 싶은 태석은 유일한 목격자인 동수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잘 알기에 그 조직이 운영하는 불법 오락실들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펼친다. 드디어 동수가 그에게 굴복하고, 두 사람은 공조수사에 합의한다. 단, 먼저 잡는 사람이 범인을 차지한다는 게 전제조건이다.

그러던 어느 날 상도가 무참하게 살해된다. 현장에서 발견된 칼에서 앞서 살해된 피해자들의 DNA가 모두 발견되는데. 영화 ‘악인전’(이원태 감독)은 연쇄살인범을 붙잡기 위해 원칙을 무시하는 형사와 범죄조직의 두목이 손을 잡는다는 특이한 플롯으로 개봉 전 이미 할리우드 리메이크가 결정됐다.

그런 설정은 뭔가 기발하거나 새로운 걸 추구하는 영화적 아이디어로써 개발된 것인데 노골적으로 고자의 성무선악설(존 로크의 백지론)과 플라톤의 성선악혼설을 대치시키고, 선과 악의 판단 경계를 병치시킨다. 인성론은 인간의 본성은 미리 정해져있다며 성선설, 성악설, 성무선악설을 열거한다.

이미 고대에 플라톤은 인간의 본성은 선하기도, 악하기도 하다고 주장했다. 합리적인 이성으로 욕성을 잘 다스리면 악성을 제압함으로써 선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뜻. 기원후 시대가 열리자마자 유물론자인 왕충이 이를 지지했다. 이에 비해 고자는 본성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아 물과 같다고 했다.

▲ 영화 <악인전> 스틸 이미지

공도자는 “성은 선해질 수 있고 불선해질 수도 있다"라고 이 사상을 이었다. 르네상스 시대에 에라스무스는 갓 태어난 인간을 밀랍으로, 약 1.5세기 후 존 로크는 인간의 마음을 백지로 봤다. 칸트는 도덕상의 선악을 오직 개인의 의지로, 존 듀이는 주관적 관념론에 근거한 프래그머티즘을 주장했다.

동서양 사상의 변화와 계승을 보면 관념론과 경험론의 통섭을 완성한 칸트가 천재다. ‘악인전’은 바로 그걸 근거로 영화적 완성도와 재미를 구성한다. 태석이 경찰로서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은 결코 정의롭지도, 정당하지도 않다. 그가 경찰이라는 신분으로 움직이는 행동의 근거는 법이라기보다는 분노다.

분노의 원인은 안 반장에서 보듯 위로 올라갈수록 썩은 내가 더 진동한다는 사회구조다. 출동 때 태석은 “경찰차 사이렌이 울려도 아무도 안 쳐다보네”라고 허탈해한다. 안 반장이 “왜 남의 관할에 참견이야”라고 오지랖을 꾸짖으면 “살인범한테 관할이 어디 있어요?”라고 맞선다. 경찰의 정체성을 묻는 것.

동수는 불법으로 축재를 한다. 폭력조직에 선과 악의 구분을 묻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지만 관념론을 떠난 인식론적 시선에서 분명히 그에게 선한 구석은 존재한다. 비 오는 날 한 여학생이 비를 맞고 서있는 걸 보곤 망설임 없이 그녀에게 우산을 건네주는 그에게선 깡패보다 사람 냄새가 더 강하게 풍긴다.

▲ 영화 <악인전> 스틸 이미지

경호는 여느 사이코패스와는 좀 다른 양태를 보인다. 대부분의 사이코패스는 범행 대상과 살해 방법에 자신만의 규칙과 패턴이 있기 마련이다. ‘살인의 추억’의 범인이 비 오는 날을 패턴으로, 빨간 옷을 입은 여자를 대상으로 하는 따위다. 하지만 경호는 아무런 기준도 없이 충동적, 무차별적이다.

감독은 입이 무거운 경호에게 “애를 낳지 말아야지, 애가 뭔 죄야”라는 대사를 줌으로써 살짝 힌트를 던진다. 마동석이 주인공인 만큼 꽤 강도 높은 액션이 난무하고, 카체이싱도 매우 박진감 넘친다. 김무열은 제 옷을 입은 듯하고, 김성규의 서늘한 눈빛은 그에게 스타덤을, 관객에겐 공포를 선사할 것이다.

동수가 “세금 내는데 경찰 도움도 받아야지”라며 태석과 손잡는 걸 정당화하고, 태석이 한 여학생에게 동수가 깡패라며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자 여학생이 “아저씨가 더 깡패 같아”라고 받는 식의 유머도 넘친다. 경호가 “너하고 나 뭐가 달라?”라고 묻자 동수가 답한 대사에서 전 관객은 ‘빵’ 터질 것이다.

이 미스터리 스릴러 스타일의 네오-누아르 액션은 아이러니의 뷔페다. 경호는 동수에게 “사람 목숨 갖고 노니 재미있지?”라고 묻는다. 도대체 누가 선한 사람이고, 악한 사람일까? 법은 어떻게 만들어야 가장 합리적이고 정의로우며 이성적인 것일까? 걸기대, 반전의 반전! 청소년 불가. 5월 15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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