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델마와 루이스>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독주 속에서 ‘나의 특별한 형제’가 한국 영화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가운데 9일 개봉된 ‘걸캅스’(정다원 감독)가 흥행에 가세했고, 오는 15일 개봉될 ‘배심원들’(홍승완 감독)과 ‘악인전’(이원태 감독)이 반전을 노린다. 세 영화는 전혀 다른 장르지만 버디무비 형태가 유사하다.

버디(동료)무비란 2명의 주인공이 우정을 나누며 전체 플롯과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형식을 뜻한다. 처음엔 남자들의 동료애를 다룬 영화를 지칭했다. 조지 로이 힐 감독의 ‘내일을 향해 쏴라’(1969)와 ‘스팅’(1973)이 대표적. 그러다 ‘델마와 루이스’(리들리 스콧 감독, 1993)에선 여성으로 확장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버디무비는 ‘투캅스’(1993)라고 볼 수 있다. ‘걸캅스’는 두 주인공이 갈등을 겪다 화합하고 무척 코믹하다는 점에선 비슷하면서도 훨씬 진지하다는 데서 차별화됐다. 강력계 형사 지혜는 오빠 집에서 얹혀살고, 올케 미영은 전설의 형사였지만 민원봉사실로 좌천된 상황.

시누이와 올케의 관계는 톰과 제리다. 어느 날 지혜가 큰 실수를 저지르는 바람에 민원실로 좌천돼 미영 옆자리에 배치된다. 클럽에선 신종 마약을 이용한 성폭행이 이뤄지고 그 동영상이 유포되기까지 한다. 두 열혈 여성은 피해자를 목격한 뒤 형사들이 손 놓은 그 사건을 해결하고자 합심한다.

▲ 영화 <걸캅스> 스틸 이미지

미영의 격투 능력은 과장됐고, 양면의 태도는 어색하며, 남편에 대한 학대는 비현실적이다. 지혜의 말썽만 피우는 과잉진압 등의 혈기 역시 젊다는 이유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 이런 억지스러운 캐릭터의 어설픔에도 불구하고 일단 코미디가 재미있고, 현시점에 맞는 사건 내용이 절묘해 볼 만하다.

‘배심원들’은 찢어지게 가난한 장애인 두식이 존속살해 혐의로 재판을 받는 게 기둥 줄거리고, 국내 최초의 국민참여재판이 주요 소재다. 재판장 준겸과 8명의 배심원들이 전면에 나서지만 사실 원칙적인 준겸과 정직한 남우를 주인공으로 갈등과 화합을 통해 진실 규명과 인권 보장을 외친 버디무비다.

이 영화는 검사와 변호사가 치열하게 싸우는 대다수의 법정 영화와 결이 다르다. 최근 ‘증인’이 자폐아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변호사란 직업이 가진 자본과의 타협에 대한 유혹을 꾸짖음으로써 흥행에 성공했다면 ‘배심원들’은 법의 주체가 판사, 검사, 변호사가 아닌 국민이고 주제가 인권이라 웅변한다.

두식은 기초수급생활대상자로 선정되기 위해 노모와의 가족포기각서를 작성한 채 엄마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다. 살해 현장을 목격한 아파트 경비원이 신고했고, 경찰은 계단에서 도주하다 쓰러진 두식을 체포했다. 증거물 망치도 나왔고, 두식은 범행을 시인했다. 경비원은 매우 확고한 증인이다.

▲ 영화 <배심원들> 스틸 이미지

결론은 미리 나와 있고, 양형만 남아있다. 이에 사법부는 대 국민 프로파간다로 국민참여재판이란 걸 시도할 시기만 노리다 ‘땅 짚고 헤엄치기’식인 이 사건에 첫 도입하기로 한다. 8명의 배심원들은 대기업 비서실장만 제외하면 별로 내세울 게 없는 서민, 혹은 극빈자다. 못 배운 노인까지 있다.

하지만 그들은 나름대로 자신의 경험론을 기준으로 판결에 도움을 주려 한다. 칸트는 ‘직관 없는 사유는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라며 관념론과 경험론의 대타협을 시도했다. 직관은 경험인데 목격일 수도 있다. 그런데 왕왕 갑작스러운 목격이 드러낸 이미지와 사실이 다를 수 있다.

그래서 필요한 게 반복적인 경험으로 쌓은 개념을 통한 사유로 완성한 종합이다. 헤겔에 따르면 시작은 정립이고, 그 과정은 반정립이다. ‘배심원들’은 여기에 한국적인 정서를 녹인다. 재판에서 준겸과 남우는 외견상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부장판사인 준겸은 개념과 사유에서 누구보다 뛰어나다.

그러나 여기에 사회적 편견이 문제가 된다. 준겸은 남우에게 ‘법이 뭐냐’고 묻는다. 답을 못하는 그에게 그녀는 ‘사람을 함부로 처벌하지 않기 위해 존재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그녀의 이런 이론은 겉포장일 뿐 그녀의 인식론은 사회적 편견과 선입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원칙이냐, 융통성이냐?

▲ 영화 <악인전> 스틸 이미지

물론 재판부 입장에선 원칙론이 기준이다. 하지만 간혹 언론의 ‘감동적인 판결’ 운운하는 판례 보도를 보면 법보다 중요한 건 사람이고 인권이라는 데 다수가 동의할 것이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게 그런 게 아닐까? 범죄 청소년을 단죄하기보다 갱생할 기회를 준 사례 등이다.

‘악인전’은 우연히 연쇄살인마 K의 표적이 됐다 살아난 폭력조직 보스 동수와 K를 잡기에 혈안이 된 강력반 형사 태석이 한 목표를 위해 손을 잡는다는 스릴러 스타일의 네오 누아르다. 동수에게 태석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동수는 강력반장에게 정기적으로 뇌물을 줘 불법으로 돈을 벌어왔다.

그걸 알고 있는 태석은 아랑곳하지 않고 동수의 불법 오락실을 휘젓고 다닌다. 그러던 중 관할에서 살인사건이 연속적으로 발생하고 어이없게 동수가 그 피해자가 되지만 목숨을 건진다. 살인사건이 한 명의 사이코패스에 의한 범행임을 직감한 태석은 동수의 목을 죔으로써 ‘공조수사’ 팀을 꾸리게 된다.

버디무비는 두 남자의 우정과 콤비로 감동과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준다는 게 장점인데 시대가 변하면서 여러 유형으로 변주돼왔다. ‘걸캅스’와 ‘악인전’은 그런 흐름을 잘 반영해 두 사람의 갈등과 협업이란 양면의 구조로 재미를 안겨준다. 버디무비는 ‘친구 1명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란 교훈이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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