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S 제공 및 화면 캡처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지난해 11월 시작된 KBS1 ‘거리의 만찬’은 ‘뉴스로만 만족하지 못하고, 진짜 세상을 못 보며, 가벼운 시사 예능에 지친 시청자를 위해 이슈 현장을 찾아 진짜 얘기를 들어보는 시사, 교양’을 표방한다. 지난 10일 방송된 ‘오버 더 레인보우’(조현웅 연출) 편은 그 캐치프레이즈처럼 매우 각별했다.

제작진은 성소수자에게 마스크를 씌워 카메라 앞에 세웠고, 박미선, 양희은, 이지혜 등 세 진행자는 성소수자를 자녀로 둔 부모들을 만나 얘기를 나눴다. 한 양성애자는 “하루하루가 나를 부정하는 사람들과 싸워 증명해야 하는 투쟁”이라고, 한 동성애자는 “사소한 것 하나까지 연기한다”라고 토로했다.

한 에이젠더 동성애자는 “잘못한 게 없는 데도 내가 나를 숨겨야 한다. 지금 내가 왜 이 가면을 쓰고 여기서 꾸역꾸역 얘기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셨으면 좋겠다”라고, 양성애자는 “성소수자는 자신의 친구일 수도 가족일 수도 있지만 얘기하지 못할 뿐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어디에도 없다”라고 하소연했다.

한 트렌스젠더의 어머니는 “내 아이가 성소수자라서 많이 배웠다. 내가 성소수자의 부모라서 이 활동을 하는 게 아니다. ‘부모로서 자녀를 어떻게 봐야 하는구나’를 배웠다. 바라는 대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자식 덕분에 세상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많이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새는 무지개를 넘는데 왜 나는 그럴 수 없을까?’. 1939년 개봉된 영화 ‘오즈의 마법사’의 주제곡 ‘Over the rainbow’의 가사다. ‘오버 더 레인보우’는 다수의 편견 때문에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지 못하고 심지어 자아를 부정하는 사람들을 무지개 위에 올리려 노력했다. 다른 건 틀린 게 아니라는 강한 메시지.

▲ KBS 제공 및 화면 캡처

‘새로운 로마를 세운 황제’ 콘스탄티누스(274~337)가 밀라노 칙령으로 전통의 다신교 대신 기독교를 로마의 사실상 국교로 공인하고 자신도 개종한 이후 기독교는 급속도로 확산, 매우 강력한 종교가 됐다. 그 윤리관에 따라 동성애는 죄악시됐고, 다른 종교 대부분도 남과 여의 결합만 인정해왔다.

에디슨은 어릴 때 학교에서 ‘1+1=2’라는 셈법에 물방울을 들어 반항한 뒤 독학의 길을 걸었다. 고정관념, 도식화, 공식 등은 안정되긴 하지만 변화에 부적응하고, 발전에 저해될 수도 있다. 이성애는 영생을 위한 진리지만 하등 생명체일수록 번식에 더 집착하는 경향이 강한 것도 사실이다.

칸트는 결혼을 ‘생식기의 상호적 사용을 위한 두 사람의 동의’라며 거리를 뒀고, 2번 결혼할 의도를 가진 적이 있지만 결혼을 하는 것과 안 하는 것 중 더 나은 삶에 대해 수년간 판별하느라 여자들이 지쳐 떠나는 바람에 독신이 옳다고 판단했다. 비트겐슈타인과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게이다.

동성애나 양성애를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결정론과 운명론의 일부분을 인정할 따름이다. 개개인의 선택 혹은 각자에게 주어진 운명이나 성향을 타인이 지배할 수 없는 게 현대다. 자유, 평등, 평화는 종교적 신념이자 민주주의적 이데올로기다. 도움을 주지 못할망정 피해는 끼치지 않는 것.

‘오버 더 레인보우’가 현 사회적 대립에 접근했다는 건 매우 과감한 용기였다. 공영방송으로서 국내 여론의 충돌 중 한 이슈에 시선을 맞춘 건 당연한 책무의 이행으로써 합목적적이었다. 성소수자들이 쓴 가면은 그들이 숨어야 하는 현실이자 그로 인한 아픔, 그리고 사회의 이견과 편견의 반영이었다.

특히 당사자들에 머물지 않고 그 시야를 부모로 확산한 의도는 매우 시의적절했다. 그건 성소수자는 당사자들만의 이슈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포용해야 한다는 따뜻한 시선이었다. “바라는 대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라는 부모의 깨달음은 곧 이 사회에 요구하는 각성이다.

▲ KBS 제공 및 화면 캡처

변천에 따라 사상도, 개념도, 기준도 바뀌기 마련이다. 성소수자에 대해서도 달라져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가 필요한 이유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도 동성애는 공공연하게 존재했다. 특히 장군들은 대놓고 출세를 꿈꾸는 젊은이들을 애인으로 두고 후원했고, 그건 군대의 전투력 향상을 도왔다.

지금 시각에서 보자면 그건 지위를 이용한 성폭력일 수도 있다. 그렇다. 시대상에 따라 시선이 바뀌어야 하는 이유다. 현대는 누가 뭐래도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이념이 지배하는 시대다. 가능한 한 최다의 최대의 행복의 공리주의다. 성소수자들의 행복도, 인권도, 자유도 보장해줘야 한다는 뜻이다.

불과 30~40년 전까지만 해도 적령기를 넘기지 않고 결혼해 자식을 낳는 게 사람 구실을 하는 것이자 효도의 첫째 덕목이었다. ‘제 먹을 건 타고난다’는 구시대적 심리가 강하게 작용했다. 부모의 보릿고개를 넘기며 생존해온 경험과 더불어 성적으로 무결하다는 걸 입증한다는 사회적 통념도 한몫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젊은이 중 다수는 결혼과 출산에 부정적이다. ‘소확행’, ‘워라밸’ 등의 유행어가 그들의 심리적 상태를 증명한다. 결혼으로 정상적인 성생활을 하고, 자식을 낳아 부모에게 효도함과 동시에 혈통을 잇는다는 과거의 인식론이 바뀐 것이다. 현대는 자신의 행복이 우선이지 희생은 뒷전이다.

언론은 노년 부부의 성생활을 권장하지만 미혼 젊은이들의 자유로운 섹스를 독려하진 않는다. ‘오버 더 레인보우’가 말하고자 한 건 동성애냐 양성애의 권장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성소수자들에 대한 이해와 양지로의 동행이다. 결혼과 출산은 이제 사회적, 씨족적 책무가 아니라 개개인의 선택이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