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시민 노무현>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다큐멘터리 영화 ‘시민 노무현’(백재호 감독)이 개봉되는 오는 23일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가 되는 날이다. 이 영화를 티케팅 하는 관객의 목적은 그에 대한 추억과 더불어 실컷 울겠다는 심리일 테지만 그를 그렇게 만든 사람(들)이 다시 떠올라 울분과 분노의 재발도 감수해야 한다.

2008년 2월 25일 제16대 대통령에서 퇴임한 노무현은 김해 봉하 마을로 귀향하며 ‘귀향을 택한 대한민국 최초의 전직 대통령’이란 타이틀을 단다. 당선 후 서울 명륜동의 자택을 처분했기에 서울에 집이 없기도 했지만 그 다운 목적의식이 있었다. 이젠 시민으로서 시민을 위해 일하려는 것이었다.

영화는 퇴임식과 취임식의 교차편집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봉하 마을에선 대대적인 환영회가 열린다. 노무현은 다음날 엄청나게 몰린 인파에 깜짝 놀란다. 일일이 눈인사를 하며 환호에 보답하지만 날짜가 지날수록 방문객은 더욱 늘어나고, 그는 계획에 없던 팬 서비스 차원의 애프터서비스를 펼친다.​

당장의 숙제는 생태계 되살리기였다. 친환경 오리농법 전수자를 초청해 농민에게 그 노하우를 전달하고 함께 농사를 짓는다. 공장이 흘려보낸 오폐수로 썩은 내가 진동하는 화포천을 되살리기 위해 직접 쓰레기를 수거한다. 마을 뒷산에 타 지역과 차별화되는 특산물 차를 심고 산의 환경 복원에 앞장선다.

▲ 영화 <시민 노무현> 스틸 이미지

그 결과 화포천엔 사라졌던 황새와 수달이 돌아오고, 봉하쌀은 친환경 농산물로 인정받게 된다. 지금까지 봉하 마을엔 이루 셀 수 없는 손님들이 쇄도했다고 한다. 시민 노무현의 사명감은 곧 대통령으로서 쌓은 자산을 국민에게 돌려주려는 책임감이었다. 사회적 통념을 바꿀 진보의 주체는 시민이기에.

그는 ‘전라도’를 운운하는 시민에게 굳이 경상도와 전라도를 구분하는 정서를 지양하자고 제안했다. 지역감정을 타파하고 진보나 보수로 갈라서는 이념을 해체해야 진정한 민주주의가 온다는 믿음이다. “제가 잘 못했다는 사람이 더 많다고 들었다. 역사가 더 나아가도록 시민으로서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영화 ‘변호인’에서 보듯 그는 처음부터 진보적이진 않았다. 변호사 생활 중 인권 유린을 목격하고 세상이 잘못됐음을 깨달아 개혁적 성향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재임 중 그가 보여준 가장 모범적인 자세는 탈권위주의였다. 그러나 아직 노예근성에 얽매인 다수는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악용했다.

퇴임 후엔 궁극의 평화주의, 자연주의, 계몽주의로 바뀌었다. 이념 갈등을 배척하고, 파괴된 생태계를 되살려 친환경에서 아이들이 뛰놀게 함으로써 우주와 자연의 진리를 터득할 수 있게끔 만드는 게 그의 이상이었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만이 기성세대가 못다 한 민주주의를 이룩할 수 있다는 믿음.

▲ 영화 <시민 노무현> 스틸 이미지

그러나 정치세력, 구시대의 계급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국민 등은 그의 정치철학과 인생철학을 이해하지 못했다. 기득권은 그가 꿈꾸는 민주주의가 두려웠다. 봉하 마을은 아이돌 그룹 팬미팅 장소처럼 연일 지지 세력으로 넘쳐났고, 퇴임한 그는 여전히 인기와 인파를 몰고 다니는 ‘장외 대통령’이었다.

‘그’(들)는 노무현과 지지 세력이 자신의 기득권을 빼앗아갈 것만 같아 두려웠을 것이다. 유시민은 인터뷰에서 노무현의 마지막을 “정신이 가장 맑은 상태에서 결행한 듯하다. 그분 다운 마지막이었다고 본다. 그분을 돌아가시게 만든 사람은 제 감정, 그분의 철학 등에 대해 짐작도 못 할 것”이라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후 얼마 되지 않아 미국 광우병 소 파동 탓에 국민들이 분노했다. 촛불시위대가 광화문광장으로 모이자 경찰이 이를 막기 위해 컨테이너로 장벽을 설치했다. 이명박은 배후세력이 존재한다는 음모론을 내세웠고, 이에 경찰은 시위대를 무차별 공격하고 수많은 국민들을 연행했다.

환영식에서 “야, 기분 좋다!”라고 해맑게 웃던 노무현은 “퇴임 후 분장 안 하고, 편하게 ‘9시 뉴스’를 시청할 수 있어서 좋다"라고 했다. 청와대에선 외로웠지만 고향에선 즐거웠다. “난 결코 용이 되고 싶지 않다. 단지 약자를 위해 강자를 견제하는 학이 되겠다”라며 귀향 생활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 영화 <시민 노무현> 스틸 이미지

재임 중 허심탄회한 대화의 자리에서 일부 참석자가 도에 지나치자 그는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죠?”라고 감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기득권 세력은 그랬다. 자유와 방종을 구분하지 못했다. 인권은 동등하지만 인격은 평등하지 않다. 그건 계급 문제가 아니라 서로에 대한 존중과 올바른 토론의 문제다.

노무현은 “토론은 자세와 기술이다. 남의 의견을 듣고 수용하는 자세와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는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새 정권의 압박에 그는 “상대방을 죽여야 자기가 사는 게 정치”라고 기성 정치의 한계에 절망했다. 정치에 낭만과 규칙이 있을 리 없지만 정의도 매너도 없는 정치가 회의적인 건 맞다.

노무현은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 아니겠는가.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라고 유서에 썼다. 김대중 대통령으로 시작된 민주주의는 노무현의 죽음으로 꽃도 피우지 못하고 시들었다. 영화는 막 국회의원이 된 노무현이 날로 자살자가 늘어나는 국내 상황을 비판하는 첫 발언으로 끝난다.

노무현은 의문의 뇌물 수수 사건 때 허무주의로 가득한 표정을 보였다. 가족은 물론 자신을 보필했던 비서관, 행정관 등이 괴롭힘을 당하자 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듯하다. 스펜서는 ‘어떤 저자도 그가 쓴 책보다 낫지 않다’며 책의 우월을 말했다. 노무현은 뭔가 하는 게 삶이라 집필한다고 말했었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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