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더 보이>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영화 ‘더 보이’(데이비드 야로베스키 감독)는 ‘슈퍼맨’의 빌런 버전에 판타지를 빼고 호러의 옷을 입힌 형식이다. 잭 스나이더 감독의 ‘맨 오브 스틸’(2013)에서 크립톤 행성의 반란군 수장 조드가 지구에 종족의 새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슈퍼맨과 싸우느라 도시를 초토화시킨 뒤의 엔딩 신이 연상된다.

군 장성은 슈퍼맨에게 “당신은 우리 친구인가, 적인가?”를 묻는다. ‘더 보이’는 외계에서 온 신적인 존재가 친지구적이지 않고 반대일 경우를 상정한다. 교외에서 농장을 하며 사는 카일(데이비드 덴맨)과 토리(엘리자베스 뱅크스) 부부는 생리적으로 아이를 가질 수 없자 신과 우주에 2세를 달라고 기도한다.​

그러던 어느 날 집 앞 숲에 어디선가 날아온 우주선이 떨어지고, 거기서 부부는 한 갓난아이를 발견한다. 아이를 신이 준 선물로 생각해 브랜든(잭슨 A. 던)이란 이름을 붙여 애지중지 키워 어느덧 그가 12살 중학생이 된다. 브랜든은 학업에서 매우 독보적인 천재성을 보이지만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한다.

브랜든은 어느 날부터 이상하게 변한다. 한밤에 창고에서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는가 하면 아버지에게 격하게 반항한다. 그는 스스로 지구인과 다른 특별한 능력이 있음을 깨달아간다. 토리는 브랜든의 침대 밑에서 야한 잡지를 발견해 카일에게 귀띔한다. 카일은 브랜든에게 성을 숨기지 말라고 가르친다.

▲ 영화 <더 보이> 스틸 이미지

그날 밤 브랜든은 50km 떨어진 여자 급우 케이틀린의 집으로 날아가 그녀를 두려움에 떨게 한다. 다음날 학교에서 케이틀린은 브랜든을 과민하게 거부하는 반응을 보이고, 브랜든은 그녀의 팔을 꺾어버린다. 케이틀린의 엄마 에리카가 광분하며 구속을 요구하자 그날 밤 브랜든은 그녀의 식당으로 가는데.

‘만약 슈퍼맨이 친구가 아니라 적이라면’이라는 상상력에서 출발한 영화는 악마와 우상으로 확장된다. 세상에 초능력자가 존재한다는 건 증명된 바 없지만 사람들은 대체로 그 존재자를 믿는 편이다. 모든 사람에겐 자신만의 능력이 있기 마련이고, 그 강도가 극대화될 경우엔 초능력자의 경지에 오르는 것.

인류에 친화적이고 정의를 추구하는 존재자라면 신이지만 그 반대라면 악마다. 브랜든은 슈퍼맨과 매우 유사한 능력을 지녔다. 눈에서 슈퍼비전을 쏘고, 빠르게 하늘을 날며, 금강불괴의 육신을 지녔다. 하늘에서 여객기를 박살 낼 정도다. 하늘에 떠있는 모습은 우상이고 세상을 빼앗겠다는 욕망은 악마다.

꽤나 종말론적, 스펜서적(불가지론)이다. 카일과 토리는 간절히 아이를 원하지만 토리의 여동생 메릴리와 남편은 부정적이다. 그건 사회적 통념 혹은 우상숭배가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한 유비적 접근이다. 아이가 악마라는 참담한 종말론, 신과 악마를 구분할 수 없는 불가지론, 인류의 희망에 대한 회의주의.

▲ 영화 <더 보이> 스틸 이미지

사실 가치전도적 기획 의도는 신선했지만 브랜든의 돌변한 악마성에는 친절한 설명이 부족하다. 그러나 만약 그게 의도적이었다면 더욱 섬뜩하다. 악마의 잔인함과 무자비함에 무슨 이유가 있을까? 브랜든의 변전이나 ‘곡성’의 착한 아저씨 ‘외지인’이 탈을 벗고 악마의 뿔을 드러내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초기 학교에서 브랜든이 말벌과 꿀벌의 차이를 아주 유창하게 설명하는 시퀀스는 브랜든의 정체를 암시한다. 우리는 흔히 벌이라고 하지만 꿀벌과 말벌은 인간에게 전혀 다른 존재자다. 초능력자(슈퍼히어로)의 정체성에 대한 경계선은 인식론이 결정한다. 악마는 사악한 자에게는 존경스러운 신이 된다.

‘슈퍼맨’이 인류에게 친절한 신과 위협적인 악마의 이항대립이라면 이 영화는 해체주의적이다. 브랜든은 우주선에서 흘러나오는 ‘세계를 빼앗아’라는 주문에 홀려 특별한 목적의식도 없이 무차별 살상을 저지른다. 조드는 고향 크립톤의 폭발로 유랑하는 종족의 새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지구를 침략했다.

하지만 브랜든에겐 확연한 이유나 간절함이 없다. 어쩌면 학교에서 당한 ‘왕따’와 자신이 입양아라는 소외감과 이질감에서 분노가 시작됐고, 자신의 초능력을 알게 됨으로써 비뚤어진 우월감이 거기에 더해져 살수로 변했을 수도 있다. ‘바람 속 버드나무 게임’에서 그는 지구인에 대한 믿음을 상실한다.

▲ 영화 <더 보이> 스틸 이미지

토리는 “네 안에 착한 마음이 있다는 거 알아”라고 하고, 이에 브랜든은 “나도 착하고 싶어요”라고 화답한다. 그러나 이 대화는 사실 진심과 멀다. 브랜든에게 부정적인 카일에 반해 각별한 애정과 믿음을 가진 토리는 “네가 찾아온 이유가 있다고 믿어”라며 인과론을 신뢰했지만 신은 인류를 버리려 한다.

그렇다면 우주가 브랜든을 지구에 보낸 이유는 뭘까? 중년 남자들의 대화에서 “아이는 다 사악하다”는 말이 나온다. 2세를 안 가지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에리카는 홀로 케이틀린을 키우며 산다. 오랫동안 행복의 기준이 돼온 가정이 붕괴되고 가장 자연스러운 종족보존을 외면하는 풍조가 만연된 것.

“사람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는 건 다 이유가 있다”는 대사에 그 답이 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다분히 종말론적이다. 신적인 존재인 슈퍼맨에게도 약점이 있으니 바로 크립토나이트다. 브랜든에게도 그와 유사한 치명적인 약점이 있긴 하다. 과연 인류는 브랜든을 물리칠 것인가, 아니면 길들일 것인가?

영화는 시종일관 어둡고, 브랜든의 정체를 초반에 드러냄으로써 비교적 스피디하게 진행된다. 목가적 배경은 낭만이 아닌 낙오된 공포로 작용하고 곳곳에 잔혹한 장면이 포진됐다. 천사와 악마의 양면을 연기한 던의 존재감이 빛난다. 단 기존 영웅에 익숙한 관객은 불편할 수도 있다. 15살. 23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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