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의 김승옥과 함께 걸었던 신촌 [문화지평 답사기]

문화지평l승인2019.05.22l수정2019.05.22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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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비영리민간단체 ‘문화지평’은 올 서울시 공익단체 지원사업으로 ‘2천년 역사도시 서울 진피답사’를 진행한다.

[미디어파인=2천년 역사도시 서울 진피답사] 신촌(新村). 지하철 2호선 신촌역 일대인 마포구 노고산동과 서대문구 창천동 일대, 넓게는 연세대를 포함한 신촌동을 아우르는 공간을 말한다. 우리말로 풀면 새터마을이다. 새터란 지명은 한반도 전역에 남아 있다.

터가 새롭게 만들어졌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서울만 해도 종로구 숭인동·창신동에 걸쳐 있던 마을을 새말, 신리, 신촌 등으로 불렸지만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그런 면에서 지금의 신촌이 가장 큰 규모로 역사성을 지니지 않았나 싶다.

신촌역 3번 출구를 나오면 홍익문고를 만날 수 있다. 비독(非讀)과 온라인 주문 시대에서 서점은 그 자체로 아날로그 감성을 유발한다. 문화지평은 5월 11일 ‘2천년 역사도시 서울 진피답사’ 2회차 ‘60년대 신촌 모습과 문화유산 톺아보기’를 홍익문고 앞에서 모여 진행했다.

서대문구 ‘문학의 거리’ 시작이자 신촌 랜드마크 홍익문고

▲ 1957년 문을 연 신촌 랜드마크 홍익문고 앞에서 2천년역사도시 서울 진피답사 2차 답사를 시작했다.

홍익문고 앞은 서대문구에서 지정한 문학의 거리다. 근현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문화정신을 기리고 시대정신과 문화가 살아있는 공간으로 재탄생시키기 위해 2013년 조성했다. 윤동주, 최인호, 김남조, 고은, 이어령, 정현종, 이근배, 김승옥, 유안진, 조정래, 강은교, 박범신, 정호승, 도종환, 곽재구 등 기라성 같은 문인들이 문학의 거리에 족적을 남겼다.

홍익문고는 고 박인철 씨가 약관 22세 때인 1957년 판잣집을 얻어 문을 열었다. 1978년 지금 5층 빌딩으로 옮겼다. 업력 62년. 쉽게 사라져서는 안 될 가치가 있는 곳이다. 2012년 일대 재개발계획이 나왔을 때 연세대 총장과 지역민들의 반대운동으로 서점을 지켜낸 이야기는 지금도 회자된다. 서대문구는 홍익문고를 비롯해 복지탁구장(1962년), 커피전문점 미네르바(1975년) 등 3곳을 ‘추억 담긴 가게’로 선정해 지원하기로 했다. 오래된 점포가 갖는 역사적 가치를 인정한 것이다.

60년대 신촌을 그린 김승옥의 소설 ‘서울 1964년 겨울’

▲ 김승옥 소설 ‘서울 1964년 겨울’의 무대가 됐음직한 선술집. 이곳은 영화 ‘야수’, 드라마 ‘상어’ 등의 촬영장소였고 조인성, 공효진 주연의 ‘괜찮아, 사랑이야’에 나오기도 했다.

이번 문화지평 답사의 중심에는 소설가 김승옥이 있다. 서정적 문체로 감수성 혁명을 일으킨 작가의 ‘서울 1964년 겨울’은 당시 신촌 모습을 담고 있다. 그의 이력은 남다르다. 1941년 일본 오사카에서 났다. 도쿄에 유학하고 있던 그의 아버지와 오사카로 이민 온 한의사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부친은 여순사건과 관련돼 그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마지막으로 봤다.

작가의 글은 20대에 모두 완성됐다고 할 정도로 글 솜씨가 뛰어났다. 서울대 불문과 재학 중 군대 가기 전에 테스트로 써본 단편 ‘생명연습’으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문단의 주목을 받는다. 그러나 그는 외교관이 되고 싶어 했다. 한 인터뷰에서 문학을 좋아했지만 작가를 꿈꿨던 건 아니라고 했다.

1964년 ‘무진기행’으로 대중적 명성을 얻었고 1965년 발표한 ‘서울 1964년 겨울’은 그에게 제10회 동인문학상을 안겨줬다. 그의 나이 약관 24세. 희곡작가 오태석 부부가 살고 있던 신촌 단칸방에서 탄생시킨 소설이다.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하무와 외로움, 쓸쓸함은 작가가 느끼는 서울이 아니었을까.

그는 잠시 문단을 떠났다. 신군부에 의한 탄압으로 절필을 선언한 것이다. 그 후 그가 나타난 곳은 문단계가 아니라 충무로 영화판이었다. 자신의 소설인 ‘무진기행’을 각색해 ‘안개’, ‘황홀’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판에 뛰어든 것이다. 김동인의 ‘감자’까지 직접 각색해 감독까지 했다.

감독으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각색자로는 영화판에서 인정받았다. 이어령의 ‘장군의 수염’, 김지연의 ‘내일은 진실’, 조선작의 ‘영자의 전성시대’, 조해일의 ‘겨울여자’ 등이 그의 손을 거치면서 흥행 보증수표가 됐다.

백정 신분철폐한 모삼열 목사가 설립한 113년 된 대현교회

▲ 미북장로교회에서 보낸 32살 된 모삼열 목사가 1906년 설립한 대현교회.

김승옥의 이야기는 답사길 내내 무리를 따라왔다. 소설 속에서 ‘그’가 아내의 시신을 4000원에 판 곳이 세브란스병원이다. 작가는 도시민들의 익명성과 단절을 그들이 쏟아내는 언어로 표현하려 했고 이는 시대 상황과 잘 맞아 떨어졌다. 문제는 그런 상황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에 있단 점이다. 우리는 여전히 이웃을 모르는 익명과 단절의 사각벽안에 있지 않는가.

홍익문고를 떠나 답사팀이 다다른 곳은 외관이 허름해 보이는 ‘판자집’이란 술집이다. 이곳은 마치 ‘서울 1964년 겨울’에서 주인공인 나와 안, 서른여섯 살짜리 사내가 만났던 술집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외벽을 나무판자로 마감해 60‧70년대 선술집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대현교회다.

미북장로교회에서 보낸 32살 된 모삼열 목사가 천민과 백정, 서민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한 곳이다. 모 선교사는 1896년 고종에게 탄원서를 올려 백정의 신분제한 철폐를 윤허 받는 업적을 남겼다. 1906년 대현교회를 설립했고 같은 해 12월 22일 46세에 소천 했다.

대현교회는 올해로 113년 된 유서 깊은 교회다. 해설사는 서대문 일대에 개신교회가 많은 이유에 대해 개항기 양화진을 통해 선교사들이 들어오는 과정에서 포구와 시내가 가깝고 지형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던 대현, 아현에 자리를 잡은 게 아닐까 추측했다. 양화진에 외국인 선교사 묘역이 조성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신촌 전역을 경관을 볼 수 있는 창천근린공원

▲ 창천근린공원에서는 연대 세브란스병원을 비롯해 신촌 일대를 조망할 수 있다.

신촌문화발전소 뒤쪽 야트막한 동산에는 창천근린공원이 조성돼 있다. 이곳에서 해설사는 마포구 창전동의 와우아파트 이야기를 꺼냈다. 1970년 4월 8일 오전 6시경 와우산 허리에 지었던 와우지구 시민아파트 15동 5층 건물이 무너져 내렸다. 이 사고로 33명이 사망하고 39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싼 건축비로 지명입찰을 받은 건설업체와 재하도급, 그리고 재하도급자의 부정행위가 날림공사를 부추긴 것이 원인이다. 불도저식 건설행정과 전시효과를 앞세운 김현옥 서울시장은 결국 붕괴사고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사건 이후 시민아파트 건립계획이 중지되고 건립된 시민아파트 안전도검사가 실시됐다. 점검대상 405동 중 349동이 보강이 필요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5개동 160세대는 철거됐다. 이 사건은 69년 시민아파트 건립사업뿐만이 아니라 중산층아파트 건립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서울시는 1970년 ‘70 아파트 건설사업 수정계획’을 통해 아파트 건설방향을 △외곽지 단지화 원칙 △설계‧시공 감독의 철저 △사후관리의 개선으로 세웠다. 아파트 건립지 원칙 또한 평지‧ 외곽지‧단지화로 설정한다.

당시 지어진 서울 시내 12개 시범아파트 중 하나였던 연희동 연희시범아파트(70.7.30준공)는 2006년 공원화 사업 확정돼 궁동근린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창천근린공원에서 내려다보면 왼쪽편 동서한방병원 방향 위쪽으로 녹지대가 설핏 보인다. 그곳이 바로 연희시범아파트가 있던 궁동근린공원이다. 한편 창천근린공원은 신촌의 멋진 야경을 볼 수 있는 손꼽히는 곳이다.

신촌 3대 ‘추억 담긴 가게’ 사이폰 추출 커피숍 미네르바

▲ 미네르바는 신촌에서 가장 오래된 원두커피 전문점으로 오래전부터 사이폰 방식을 도입했다.

신촌 3대 추억 담긴 가게인 미네르바에 도착했을 때는 청년 한 무리가 진지한 토론을 하고 있었다. 올해로 45년 째 한자리에서 원두커피를 고집한 집이다. 신촌에서 가장 오래된 원두커피 전문점으로 오래전부터 사이폰 방식을 도입했다. 사이폰 방식은 커피향을 모두 잡아 놓기 때문에 풍미가 더 강하다는 게 전문가 조언이다.

답사팀 일원 중에 전동휠체어를 탄 이경윤 씨(나눔마켓책방 대표)가 있어서 2층엘 올라가지 않고 대신 인근 골목길을 둘이 돌았다. 미네르바에선 그 시간 사이폰 시연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신촌 뒷골목에서 만난 반가운 한옥집. ‘삼표제일가스’라는 상호를룰 붙이고 고압가스를 팔고 있었다. 나무 문대신 철제문이 달린 왠지 어색한 조합이다.

미네르바에서 나온 일행과 만나 경의선 기차길 옆 오막살이 골목을 지났다. 지금은 주택이 개량됐지만 옛날에는 오막살이들이 즐비했을 법한 곳이다. 지금도 주거환경이 좋지 않은 터라 많은 집들이 비어있고 슬럼화 된 곳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옛 철길 정취가 살짝 묻어난다.

철거 위기까지 갔다가 문화재가 된 구 신촌역사

▲ 1925년 세워진 서울역보다 5년이나 앞선 1920년에 세워진 신촌역사.

곧이어 다다른 구 신촌역사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로 유명하다. 1925년 세워진 서울역보다 5년이나 앞선 1920년에 세워졌다. 그 해 12월 1일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했다. 보통역은 철도역의 등급인데, 여객 수요가 잦은 일반역을 의미한다.

간이역처럼 여객열차는 정차하지 않는 역도 있다. 2006년 민자역사를 세우면서 철거할 예정이었으나 보존을 주장하는 전문가들의 노력으로 지금 자리에 이전 복원 됐다. 그 과정에서 역사 뒤편 일부가 훼철됐다.

신촌역을 거슬러 이화여대로 향했다. 오르막이 제법인데, 그도 그럴 것이 동네 이름이 대현(大峴)이다. 큰 고개라는 의미다. 이 지역에는 유독 고개를 뜻하는 동네 이름이 많다. 아현동, 충현동, 현저동 등이 이 지역 특성을 잘 말해 준다.

이대 진선미관과 대강당은 서울미래유산

▲ 이대 정문 배꽃 부조는 여러 이유로 중국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다.

이대 정문 좌측 벽에는 커다란 배꽃 부조(浮彫)가 붙어 있다. 중국 관광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포토 존이다. ‘이화(梨花)’가 중국어로 ‘돈이 불어난다’는 의미의 ‘리파(利發)’와 발음이 비슷하고 무엇보다 배꽃 부조 앞에서 사진촬영을 하면 순정, 순결, 사랑의 상징으로 아름다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대 안에는 진선미관이란 석조건물이 있다. 진선미는 이대 교훈이다. 진선미관은 이화여전 시절인 1935년 학교를 정동에서 신촌으로 옮기면서 새로 지은 건물이다. 준공 당시는 학생 150명을 수용하는 기숙사로 사용하다가 지금은 교직원식당, 후생복지과, 교수연구실과, 이화 인문과학원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화여대는 1886년 미국의 여선교사 스크랜튼(Scranton, M. F)이 한성부 황화방 자택에서 학생 1명을 데리고 수업을 시작한 데서 비롯된다. 이듬해 고종으로부터 이화(梨花)라는 명칭을 하사받아 교명으로 삼았다. 스크랜튼 여사의 아들은 의료선교사로 배재학당을 만든 아펜젤러와 함께 파송돼 시병원을 운영했다.

이화여대강당은 진선미관과 함께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이대 강당하면 클리프 리차드 내한공연의 ‘전설’이 늘 따라온다. 1969년 10월 내한공연 때 최고의 히트곡 ‘The young ones’가 나오자 속옷을 벗어 던졌다는 ‘믿거나 말거나’한 이야기가 지금도 회자된다. 50년 가까이 가담항설로 떠돌다보니 거의 역사가 됐다. 클리프 리차드는 35년만인 2003년 3월 7일 두 번째 내한공연을 가졌다. 대운동장 자리에 들어선 도미니크 페로의 작품인 ECC(이대문화센터)에 대한 설명을 마지막으로 신촌 언저리 답사가 모두 마감됐다.

도미니크 페로 작품 ECC 해설 끝으로 답사 종료

▲ 이날 해설을 맡은 한이수 역사문화해설사. 한 해설사는 전국역사지도사모임 일원으로 최근 공저 ‘표석을 따라 제국에서 민국으로 걷다’를 출간했다.

이날 해설은 한이수 역사문화해설사가 맡았다. 한 해설사는 전국역사지도사모임 일원으로 최근 공저 ‘표석을 따라 제국에서 민국으로 걷다’를 출간했다. 한 해설사가 담당한 부분은 ‘조선 귀족의 친일과 반일 그리고 항일’ 부분이다. 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했고 40대 후반에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이 폭발해 학창 시절보다 더 열심히 역사책을 읽는다고.

문화지평 역사문화해설사, ‘우리문화숨결’에서 경운궁(덕수궁) 궁궐길라잡이로 활동하고 있고, 서울도시문화연구원에서 서울미래유산을 해설하고 있다. 공저로 ‘표석을 따라 한성을 거닐다’가 있다. 한국경제신문 부국장으로 재직 중이다.

▲ 2차 답사 종료 후 단체사진

■ 답사코스

홍익문고 - 대현교회 - 창천근린공원 - 미네르바 - 신촌역사길 - 세브란스병원 - 경의선신촌역 - 이화여대 <글=김범준·유성호 문화지평 대표, 사진=권택상 사진작가>

[문화지평]
서울시비영리민간단체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2016)
역사도시 서울답사(2017)
2천년 역사도시 서울 진피답사(2019)
기업‧단체 인문역사답사 다수 진행

문화지평  moonwhajipyu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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