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로켓맨>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로켓맨’(덱스터 플레처 감독)은 슈퍼히어로물도, 정치물도 아니다. 영국 록의 제왕 엘튼 존의 일대기를 진지하면서 무거운 주제와 판타지 뮤지컬로 푼, 마치 ‘보헤미안 랩소디’ 같은 록 무비다. 알코올중독자 치료 모임에 갑자기 무대 복장을 한 엘튼 존(태런 에저튼)이 끼어들더니 긴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레지날드 드와이트는 사이가 안 좋은 스티븐과 쉴라를 부모로 뒀다. 가끔 집에 들르는 스티븐은 레지에게 애정이나 관심이 전혀 없어 그저 재즈를 들으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다 훌쩍 떠난다. 쉴라는 레지를 무시하거나 심하면 학대를 한다. 그녀의 관심은 오직 새 남자를 만나 새 인생을 꾸미는 것뿐이다.

그나마 레지에게 다정한 이가 있으니 할머니다. 할머니는 우연히 레지의 천재적인 절대음감을 알아보고 피아노 선생을 붙여준다. 레지는 왕립음악원을 다니지만 미국으로부터 불어온 로큰롤 열풍에 취해 엘비스 프레슬리를 흉내 내며 청소년기를 보낸 뒤 성인이 되자 록밴드를 결성하고 클럽 무대에 선다.

본명을 버리고 엘튼 존이란 예명으로 개명한 뒤 작곡에 몰두하던 그는 음반 제작자 딕의 사무실에서 작사가 버니 토핀(제이미 벨)을 만난다. 버니가 우편으로 보낸 가사에 엘튼이 곡을 붙이는 형식으로 작업을 한 끝에 드디어 많은 곡을 완성해 딕에게 들려주자 그는 미국 LA 데뷔 공연 무대를 만들어준다.

▲ 영화 <로켓맨> 스틸 이미지

공연은 크게 성공하고 매스컴은 그를 극찬한다. 슈퍼스타로 등극한 엘튼은 성공 축하 파티에 참석한다. 가장 친한 친구인 버니는 한 여자와 눈이 맞아 그의 곁을 떠나고, 풍요 속의 빈곤에 힘겨워하는 그의 앞에 존 리드(리처드 매든)가 나타난다. 함께 격렬한 밤을 보낸 다음날 엘튼은 영국으로 떠난다.

시간이 흐른 뒤 신곡 녹음을 하는 엘튼 앞에 존이 나타난다. 그렇게 두 사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연인이 된다. 존이 딕을 무시한 채 실질적인 엘튼의 매니저 역할을 하자 그들의 사무실로 찾아온 딕은 변해버린 엘튼에게 실망하고, 이제 거인이 돼버린 그를 어찌할 수도 없는 걸 알고 순순히 물러나는데.

‘보헤미안 랩소디’가 다시 볼 수 없는 프레디 머큐리를 라미 말렉이 재현했고 전성기 퀸의 라이브를 즐기는 호강을 안겼다면, 이 영화는 거기에 더해 엘튼의 히트곡들을 새로운 편곡으로 즐기도록 해주는 한편 화려한 뮤지컬과 판타지, 그리고 에저튼이 보여주는 눈부신 패션까지 더했다는 게 특징이다.

엘튼의 음악은 개괄적으론 록으로 분류되지만 사실 록을 기초로 대중음악의 다양성을 포괄하고 있다. 어려서 클래식을 전공했던 그는 로큰롤에 심취했고, 소울 뮤지션을 통해 소울의 우수성에 매료됐다. 그가 개명 전 몸담았던 밴드가 블루솔로지(블루스學, 論)인 것은 음악의 뿌리가 블루스라는 의지다.

▲ 영화 <로켓맨> 스틸 이미지

‘Rocket Man’은 클래시컬한 분위기의 멜로디와 편곡에 철학적 가사가 어우러진다. ‘Crocodile Rock’은 블루스와 로커빌리에 영향을 받은 흥겨운 로큰롤이다.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는 영국식 발라드와 미국식 블루스의 결합이다. 이 보석 같은 히트곡들이 시종일관 그치지 않는다.

제목은 엘튼의 히트곡을 그대로 가져왔는데 버니는 미국 SF 작가 레이 브래드버리가 1951년에 발표한 단편집 ‘The Illustrated Man’에 수록된 동명의 단편에서 영감을 얻어 가사를 썼다. 한 번 떠나면 몇 달씩 다른 행성을 탐험하는 우주인을 아버지로 둔 아이와 그 엄마의 비극적인 가족를 다룬다.

엄마는 일찍이 남편과 헤어진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어린 레지가 아버지에게 “언제 안아줘요”라고 애정을 갈망했지만 결국 외면당한 것처럼 우주인 역시 3달 후 돌아오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 신이 만든 세상은 공평한 것일까? 엘튼은 음악엔 천재였지만 가족과 애정만큼은 실패한 외톨이였다.

인트로에서 후광을 받으며 천사의 날개에 악마의 뿔을 한 의상으로 등장한 뒤 장식을 차례로 떨어뜨리고 옷도 차례차례 갈아입는 시퀀스는 엘튼의 삶을 파우스트에 대입한 것. 엘튼은 정상에 오른 뒤 파우스트처럼 우울과 환멸에 사로잡혀 쾌락을 탐닉한다. 돈과 인기가 오를수록 그의 외로움은 극을 향한다.

▲ 영화 <로켓맨> 스틸 이미지

존은 메피스토펠레스, 버니는 신의 은총을 받은 ‘속죄의’ 그레트 헨이다.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으로 태어날 걸”이라며 염세주의에 빠져있던 엘튼은 “원하는 사람이 되려면 과거의 너를 버려”라는 선배의 충고에 개명하지만 그건 개종이 아니라 메피스토펠레스와의 영혼을 담보로 한 이단적 계약이었다.

성 정체성과 부모와의 갈등 때문에 내내 힘겨워했던 그는 “난 아무 데도 못 가. 나를 부정하는 것도 지겨워”라며 자아를 숨기고 엘튼으로 사는 게 힘듦을 종국에 자인한다. 고민 끝에 엄마에게 게이임을 고백하지만 엄마는 이미 알고 있었다며 “넌 영원히 사랑받지 못해”라고 애정에 사형을 선고한다.

그가 대기실 거울 속 자신을 자꾸 바라보는 건 내면에 똬리를 튼 최소한 2명 이상의 자아의 존재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버니의 “왜 그렇게 살아? 옛날로 돌아가자”라는 우정의 충고조차 귀찮은 그는 과연 번뇌와 혼돈과 자아상실을 어떻게 이겨낼까? 결국 영화가 전하는 주제는 자아와의 화해다. 용서다.

에저튼은 외모, 패션, 행동, 가창력은 물론 그림자가 있는 엘튼의 목소리까지 재현하는 엄청난 연기력을 뽐낸다. 내내 암울하고 퇴락적인 분위기지만 인트로와 수미상관으로 이어지는 엔딩의 버라이어티 뮤지컬 시퀀스는 결국 극장 문을 나서는 발걸음을 경쾌하게 만들어준다. 121분. 15살. 6월 5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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