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존 윅 3: 파라벨룸>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존 윅’ 시리즈에 대해 부정적인 관객도 있지만 배우를 보고 영화를 선택하는 이에겐 키아누 리브스가 톰 크루즈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못지않게 믿음을 주는 스타임에 틀림없다는 점에서 왜 ‘존 윅 3: 파라벨룸’(채드 스타헬스키 감독)까지 제작됐는지 충분한 존재 이유를 느끼게 하고 믿음이 간다.

세상엔 일반인이 잘 모르는 국제암살자연맹이 있다. 궁극의 지배자가 최고회의란 지도 계급을 움직이고, 최고회의는 세계 대도시에 컨티넨털 호텔이란 지부를 설립해 킬러들을 관리하도록 한다. 회원 킬러라면 컨티넨털에서 보호를 받지만 이곳에선 살인할 수 없다는 절대적 규칙을 엄수해야만 한다.

그러나 존 윅(키아누 리브스)은 전편에서 지하세계 바워리의 지배자 킹(로렌스 피시번)으로부터 권총 1정과 7발의 총알을 지원받아 뉴욕 컨티넨털에서 최고회의 멤버를 죽였다. 그러자 호텔 지배인 윈스턴(이안 맥쉐인)은 1시간 뒤 파문을 선언하고 최고회의는 존에게 1400만 달러의 현상금을 내건다.

1시간을 최대한 활용해 전쟁을 준비해야 하는 존은 애완견을 뉴욕 컨티넨털 컨시어지(랜스 레드릭)에게 맡긴 뒤 뉴욕 공립 도서관에 숨긴 비상물품을 챙겨 옛 스승인 킬러들의 대모 디렉터(안젤리카 휴스턴)를 찾아간다. 디렉터는 맹세 때문에 존이 모로코 컨티넨털의 소피아(할리 베리)를 만나도록 돕는다.

▲ 영화 <존 윅 3: 파라벨룸> 스틸 이미지

소피아는 과거 존의 동료였지만 그와 안 좋은 감정이 있다. 또 모로코 컨티넨털의 지배인으로서 최고회의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 존은 그녀에게 최고회의의 유력자 베라다를 소개받아 최고회의를 움직이는 최고 권력자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려 한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존의 운명은?

1, 2편에서 다소 황당했던 도심에서 대놓고 활약하는 킬러들의 세계를 도대체 관객에게 어떻게 이해하라고 우격다짐을 했는지에 대한 의구심은 이번에 다 풀린다. 별자리를 보고 사막을 헤매야만 만날 수 있는 권력자부터 최고회의 등은 종교 혹은 우상을 상징한다. 특정 종교에 대한 비유일 수도 있다.

난다 긴다 하는 킬러들이지만 최고회의에 대해선 무조건 복종과 충성을 맹세한다. 막강한 조직력과 권세를 당해낼 재간은 없는 것. 존에게 협조적이었던 윈스턴과 킹, 그리고 디렉터를 단죄하기 위해 등장한 심판관(아시아 케이트 딜런)은 ‘인간과 짐승의 차이는 룰’이라며 최고회의의 규칙만을 강요한다.

베라다의 금과옥조는 돈과 계약이다. 모로코에서 동전을 만들며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그는 종교와 결탁한 자본주의의 상징이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관념론에 항복한 유물론의 상징인 카노사의 굴욕(왕권이 교권에 굴복)을 모티프로 한다. 이 말도 안 되는 킬러들의 세계가 설정된 데 대한 의구심의 해소.

▲ 영화 <존 윅 3: 파라벨룸> 스틸 이미지

요람을 흔들고 세계를 움직이는 ‘손’은 종교, 자본, 정권이다. 권력의 중심은 정권인 듯하지만 자본이고, 자본인 듯하지만 결국 종교라는 이 작품의 세계관!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대사는 의미심장하다. 심판관은 존을 제거하기 위해 극강의 닌자 킬러 제로(마크 다카스코스)를 부른다.

그가 평상시에 근무하는 스시 가게 간판이 平家다. 과연 사원은 평화로운 집일까? 정말 종교는 만인을 평등하게 만드는가? 종교의 규칙을 엄중히 지키면 평화를 얻을 수 있을까? 심판관이 지위를 박탈하려 하자 윈스턴과 킹은 코웃음을 친다. 특히 킹은 “나는 왕”이라고 당당하게 자주독립을 외친다.

그는 레지스탕스고 아나키스트다. 그가 존을 돕는 이유는 주권재민을 믿기 때문이다. 도서관에서 단테가 언급되는 것 역시 우상에 경도된 집단의 광기를 상징한다. 그래서 존이 황급히 도주하는 뉴욕의 밤거리는 비가 쏟아지는 교통지옥이다. 마치 인간성, 자연, 희망이 황폐화된 ‘블레이드 러너’처럼.

건푸란 신조어는 Gun과 Kungfu의 합성어다. ‘이퀼리브리엄’(2002)에서 인상 깊게 펼쳐진 건푸 액션은 ‘존 윅’ 1, 2편을 통해 자리매김했다면 ‘파라벨룸’에선 절정을 이룬다. 한 프레임 안의 근접 거리에서 눈이 부실 만큼 화려하게 펼쳐지는 존과 소피아의 건푸 액션과 맹견들의 조력 활약은 명불허전이다.

▲ 영화 <존 윅 3: 파라벨룸> 스틸 이미지

감독은 대놓고 정병길 감독의 ‘악녀’의 오토바이 액션 시퀀스를 오마주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리샤오룽(이소룡)의 ‘용쟁호투’와 ‘사망유희’도 있다. 존과 제로의 하이라이트 액션이 펼쳐지는 유리 방은 ‘용쟁호투’고, 존이 차근차근 계단을 올라가며 제로의 부하들을 물리치는 건 ‘사망유희’다.

건푸 액션과 더불어 벨트 액션이 변별성이다. 연필 액션에서 진일보한 성장이다. 최고회의 정예군 방탄복이 권총 따위론 뚫을 수 없게끔 진화한 건 종교의 방어 시스템이 그만큼 논리적, 조직적으로 강화됐다는 환유다. 다양한 칼과 도끼 등 아날로그 무기가 대거 등장하는 만큼 잔혹한 장면이 넘실댄다.

말을 활용한 액션은 무릎을 탁 치게 만들고, 마술(馬術)로 오토바이 추격자들을 퇴치하는 시퀀스는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영화의 정체성은 제로에 있다. 내내 어둡고, 암울하며, 잔인하지만 의외로 웃긴다. 제로가 존을 제압한 뒤 경외하는 표정으로 “난 당신 팬”이라고 고백하는 식. 

‘삶은 고통, 예술은 괴로움’, ‘낙원으로 가는 길은 지옥에서 시작된다’ 등 다분히 염세론적인 인생관이 펼쳐지고, ‘선택이 있으니까’라던 전편들의 메시지는 ‘결과가 따르니까’라는 인과론적 결정론으로 슬며시 바뀌었다. 존의 집이 타르코프스키 극장인 건 영화의 주제 ‘희생’이다. 130분. 6월 26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