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맨 인 블랙: 인터내셔널>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기존 시리즈의 리부팅인 ‘맨 인 블랙: 인터내셔널’은 ‘분노의 질주: 더 익스트림’의 F. 게리 그레이가 메가폰을 잡았다는 점에서 액션과 스케일에서 보증수표다. 2016년 파리. MIB 요원 하이T(리암 니슨)와 H(크리스 헴스워스)는 에펠탑에서 우주 최강의 악당 하이브를 물리쳐 조직 내 전설이 된다.

20년 전. 브루클린에 타란트 종족이 출몰해 MIB가 출동한다. 소녀 몰리는 자신의 방에 들어온 타란트 소년의 탈출을 도와준다. 현재. 하이T는 런던 지부장이 됐고, H는 거기서 현장 근무 중인데 뭔가 좀 변했다. 성장한 몰리(테사 톰슨)는 임무 수행 중이던 MIB의 뒤를 쫓아 뉴욕 지부에 잠입한다.

하지만 이내 붙잡혀 지부장 O(엠마 톰슨) 앞에 선다. 몰리는 당당하게 자신이 이 조직에 들어와야 할 당위성과 조직에 기여할 수 있는 능력을 주장해 수습요원 M이 돼 런던 지부에 파견된다. 하이T는 자바비아 종족 왕자 벙거스를 보호할 것을 H에게 명령하고, 수상한 외계인 둘이 지구에 착륙한다.

M은 기지를 발휘해 H의 파트너로 투입되는 데 성공한다. 정체불명의 외계인 둘은 엄청난 초능력으로 벙거스를 지키려는 H와 M을 압박하고, 둘은 끝을 알 수 없는 음모의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데. 베리 소넨필드 감독의 1, 2, 3편의 다소 가벼운 분위기는 꽤 진지해졌지만 코미디는 살아있다.

▲ 영화 <맨 인 블랙: 인터내셔널> 스틸 이미지

시작부터 스티븐 호킹과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의 공저 ‘짧고 쉽게 쓴 시간의 역사’를 배치해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으로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공포를 주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웜홀도 언급하지만 집중력을 저해하거나 영화의 재미를 즐기는 데 걸림돌이 되는 시퀀스는 없다.

대신 그 책이 그랬던 것처럼 시간과 공간, 유한과 영속 등의 문제를 살짝 철학에 인계한 가운데 서스펜스와 미스터리에 집중하는 한편 사회 초년생의 고군분투하는 수습기를 통해 사회 적응 드라마를 써간다. 전 시리즈의 과장된 능력보다는 인간적인 능력의 한계 묘사가 매우 현사실적으로 와닿는다.

H는 왠지 2% 부족한 영웅으로 그려진다. 바람둥이인 그는 예전에 우주 최고의 무기상인 외계인 리자와 사귀었다. MIB 내에서도 외계 여자 요원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그에 반해 M은 연애 경험도, 친구도 없다. 그녀에겐 오로지 우주가 꿈이고, 진리다. 그 진실과 섭리 탐구만이 사는 이유다.

‘혈통’도 다르다. 몰리는 MIB 뉴욕 지부에 침투했을 때 O에게 자신의 가능성을 어필하며 입사시켜 달라고 했지만 O는 “우리는 선별한다”라고 받아쳤다. 그렇듯 H는 하늘이 내린 MIB의 영웅이었고, 몰리는 그저 꿈을 꾸는 취업 준비생일 따름이었다. 게다가 전 직업은 아주 평범한 텔레마케터였으니.

▲ 영화 <맨 인 블랙: 인터내셔널> 스틸 이미지

이렇게 상반된 둘이 때로는 견제하고, 때로는 협동하며 각자의 미숙함을 보완해가거나 서로서로 채워준다. 결국 감독은 관객을 어렵지 않게 스티븐 호킹에게 안내하는 것. 두 사람의 조합은 상충하는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후보 중 하나인 초끈이론이다.

'시간의 역사’가 집중한 초끈이론은 우주와 자연의 궁극적인 원리를 밝히려는 연구의 산물. ‘철학은 과학의 어머니’라는 윌 듀랜트의 말처럼 일찍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우주를 탐구했다. 그래서 이 영화가 내세우는 대립쌍은 철학과 과학의 화해이자, 칸트의 합리론과 경험론의 비판이자 종합이다.

양립하는 두 사람이 ‘사랑은 화학작용에 불과하다’, ‘우주 자체가 화학작용이 아닌가?’, ‘논리 말고 열정’ 등의 논제를 거론하는 게 증거다. 관념론자인 H는 감정에 충실한 철학자고 신비주의자다. 경험론자인 M은 증명이 중요한 과학자이기에 현실주의자다. 감독이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가 관람 포인트.

H는 M에게 수시로 “속이는 게 우리 일”이라고 가르친다. 지구에 수많은 외계인들이 지구인의 모습으로 위장한 채, 혹은 아무도 모르는 장소에서 은폐한 채 공존하고 있고, MIB가 기억 지우개로 그 진실을 계속 왜곡하고 있다는 건 거짓이 횡행하고, 그게 자본주의 체제와 질서를 유지시킨다는 은유다.

▲ 영화 <맨 인 블랙: 인터내셔널> 스틸 이미지

‘어벤져스’의 토르 역으로 각인된 크리스 헴스워스의 H는 외계인 깡패와의 맞대결에서 계속 밀리더니 히든카드로 망치를 주워들며 “익숙한 그립감인데”라고 중얼거리는 식으로 러닝 타임 내내 웃긴다. 자기 종족의 여왕이 죽자 M을 새 주인으로 모시는 외계인 포니는 코미디에서 의외의 복병이다.

토미 리 존스(K)-윌 스미스(J) 콤비가 헴스워스-톰슨으로 바뀐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백인 선배-흑인 후배의 조합은 따르지만 후배의 성별이 달라졌다. 전 시리즈에선 후배가 가벼웠다면 이번엔 선배가 그렇다. M의 당당한 존재의 주장은 페미니즘이다. 사막 시퀀스는 다분히 ‘스타워즈’를 연상케 한다.

윌 스미스에 익숙한 관객들에겐 헴스워스의 유머와 그레이의 의외의 진지함이 때론 생경할 수도 있겠지만 범접하기 힘든 위력의 빌런들의 존재감과 시간이 지날수록 의구심을 증폭시키는 미스터리와 서스펜스가 꽤 안정된 분위기를 이루는 매우 탄탄한 서사는 극장 문을 나설 때엔 만족감을 줄 듯하다.

영화는 내내 ‘우주가 우리를 인도한다’라는 주제 의식을 설파한다. “우리가 있어야 할 때와 장소”와 “행동에는 대가가 따른다”라는 대사 역시 마찬가지. 우주가 자연의 법칙에 따라 기계적으로 움직인다는 기계론과 자연법이다. 우주는 곧 동양의 운명론, 즉 ‘팔자(八字)’를 정하는 신일까? 12살. 상영 중.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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