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어벤져스: 엔드 게임>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슈퍼히어로 영화가 많은 관객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물론 허황된 얘기라며 무시하는 이들도 있지만 ‘어벤져스: 엔드 게임’의 광풍에서 보듯, DC가 쉼 없이 마블을 향해 도전장을 던지는 데서 알 수 있듯 이제 관객들은 ‘해리 포터’나 ‘반지의 제왕’의 동화적 판타지보단 ‘어벤져스’의 우주적, 과학적 판타지에 이끌리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그 슈퍼히어로 영화의 내용엔 인간이 만든 신화, 종교, 철학, 그리고 생존에의 몸부림에서 기원한 두려움이 근간을 이룬다. 상상력이 확장된 관객들은 동화의 판타지에는 더 이상 만족하지 못한다. 거기에 과학과 우주론이 버무려진 판타지 SF는 돼야 지갑을 연다. ‘원더우먼’의 본명을 대놓고 다이아나(그리스신화의 아르테미스, 로마신화의 디아나)라고 하지 않는가!

‘어벤져스’는 북유럽 신화의 천둥의 신 토르, 인간의 과학이 실수로 창조한 뮤턴트 헐크, 자본주의의 총아 아이언맨, ‘미국 중화사상’의 아이콘 캡틴 아메리카 등을 전진 배치한다. 호크 아이, 블랙 위도우 등은 전투력을 극대화한 '사람'이다.

그동안 신은 그리스와 이집트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 자주 등장했다. 그런데 신도 죽는다. ‘갓 오브 이집트’(2016), ‘신들의 전쟁’(2011)을 보라. 20세기의 일부 파레이돌리아를 제외하면 최근엔 신 목격담이 현저히 줄어든 것도 참조할 만하다. 그럼에도 종교는 성행 중이다. 무신론자보다 유신론자가 더 많을 것이다. 슈퍼히어로 영화에 줄을 서는 덴 다 이유가 있다.

그런데 제우스나 헤라클레스는 이제 식상하다. ‘아쿠아맨’은 누가 봐도 포세이돈의 객관화지만 가능한 한 그를 거론하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토르가 대타로 투입된 것이다.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는 할리우드의, 미국의 표상이다. 지적이며 갑부인 스타크는 현대의 미국이다. 고지식하고 도덕적이면서 의리가 충만하며 리더십이 뛰어난 캡틴은 의외로 보수적이고 그걸 유산으로 남긴 건국 초기의 미국이다.

▲ 영화 <아쿠아맨> 스틸 이미지

​헐크는 한때 달 탐사로 구 소련과 맞대결했던 최첨단 과학의 힘을 자랑하는 미국이다. 미국은 언제라도 헐크를 만들어낼 수 있으니 ‘전 세계여 경배하라!’는? 초기의 헐크는 자신을 제어하지 못했다. 배너 박사가 사라진 건 그게 엄청나게 괴로웠기 때문이다. 연정을 품은 블랙 위도우를 실망시킬까 두렵기도 했다. 그런데 이젠 그게 가능해져 어벤져스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이 ‘미국적 중화사상’!

블랙 위도우와 각별한 우정을 나누는 호크 아이는 미국의 가족문화를 대표한다. 미국은 기독교 국가고 유대인의 영향력이 가장 깊고 넓게 퍼진 나라다. 기득권에 주먹감자를 날리고 온 프로테스탄트들이 가혹한 정착의 과정을 거쳐 반석을 다진 신천지다.

그들이 인디언들을 대학살하고 몰아내며 건설한 세계 헤게모니의 중심지엔 당위성을 위해 당연히 신이 있어야 한다. 그걸 하느님이라고만 하면 흥행에 문제가 있다. 그래서 이런 다양한 ‘신’들이 호출된 것이다. ‘슈퍼맨’은 고고학계 일각에서 제기됐고, 고대 유물에서 유추할 만한 흔적이 발견됐으며,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가 아예 못 박은 외계인 문명 전파설의 소산이다.

‘엑스맨’은 어쩌면 그 영화가 제시한 모놀리스(문명의 돌)에 묻어온 외계의 바이러스에 의해 탄생한 돌연변이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신은 존재하는가? 혹시 뉴럴라이저(‘맨 인 블랙’의 기억을 지우는 펜)를 사용하는 슈퍼 히어로들이 활동하는 건 아닌가?

또한 그게 대량생산돼 엑스맨들도 고가로 구매한 건 아닐까? 신화와 종교는 신화의 뻔뻔함과 종교의 경건함을 제거한다면 기초적으로 현생의 안락과 평안에 대한 기원, 죽음에의 두려움 등에 근거한 상상력에서 발원한 건 아닐까? 과연 신은 어떤 존재일까? 있기는 한 걸까? 신화의 신과 종교의 신은 다른 존재일까?

▲ 영화 <아이언맨3> 스틸 이미지

​유물론적으로 보면 애초부터 신은 없었다. 제우스는 수천 년 전 그리스 어느 지역을 다스리던 바람둥이 지도자였고, 아프로디테는 그 지역 미인대회 미스 진이었던 것이다. 니체에 대입하면 19세기에 유명을 달리했다. 하지만 왜 인간은 오래전부터 신화를 만들고, 종교를 통해 신을 섬기며, 신에게 각자의 욕망과 소원을 강력하게 갈구하는가?

루시와 동료 오스트랄로피테쿠스들은 야생에서 살아가기에 매우 힘들었다. 마스토돈처럼 큰 덩치와 상아를 가진 것도, 스밀로돈처럼 용맹한 것도 아니었다. 추위에도 취약했다. 게다가 자식을 낳으면 최소한 15년은 돌봐야 자립시킬 수 있었으니. 루시가 20살에 나무에서 떨어져 죽은 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원래 지능지수가 높은 채로 태어났을 수도, 그런 환경 ‘덕’이었을 수도, 아니면 모놀리스의 교육 덕분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하여튼 호미닌의 두뇌는 다른 동물들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짐승의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고, 은신처를 구축했으며, 음식물 저장법도 발전시켰다.

프로메테우스로부터 불을 선사받은 이후 호모들의 문명은 급격하게 발전해갔다. 드디어 그들은 추위와 맹수를 피해, 혹은 고갈된 먹이 때문에 더 이상 방황하지 않고 한곳에 정착할 수 있게 됐다. 그건 강 혹은 바다 근처에서의 농경생활에서 비롯됐고, 어업과 목축까지 병행하는 여유로 이어졌다.

이제 루시의 후손들은 맹수를 피해 나무 위로 올라갔다 떨어져 산산이 부서지는 불행과 확실히 멀어졌다. 튼튼한 집으로 군락을 이루고, 적의 침입을 알리는 개를 기르며, 열심히 생업에 종사하면서 개체 수를 늘리면 됐다. 그러자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비가 오랫동안 안 내리거나, 정반대였고, 어업에서 예기치 않은 기상악화로 수장되는 악재도 발생했다. ​

신석기 시대 즈음의 호모 사피엔스들은 자신들은 어디서 왔고, 종국엔 어디로 가게 되는지 골몰하게 됐다. 표제를 정의 내릴 순 없었겠지만 결정론(기계론)과 목적론 사이에서 활발한 논의가 벌어졌다. <⓶로 계속>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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