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김문 작가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4인과의 인터뷰-이승만]

▲ 사진=kbs 방송화면 캡처

옥중에서 ‘독립정신’ 집필

-아, 그 유명한 ‘독립정신’이군요. 저는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어떤 내용이 담겨 있습니까.
“이 사람 하고는 기자생활을 오랬동안 했다는 사람이 ‘독립정신’도 못읽었단 말이요. 나 원 참...”

-죄송합니다. 이 참에 설명 좀 부탁드립니다.
“총 52편의 논설로 구성된 논설집입니다. 자주독립을 위해 민중의 새로운 인식을 촉구하는 내용과 선진 외국의 제도 등 새로운 가치와 지식을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문호개방 이후 한국사와 주변 국제정세를 소개하는 내용 등으로 구성돼 있지요. 부록으로 붙은 ‘독립주의의 긴요한 조목’은 6가지 항목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당시 나의 세계관을 명확히 담아낸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어떤 세계관을 말하는 것입니까.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생활방식과 현대사회, 민주이념을 말합니다. 조선인들이 현재의 후진성과 무기력을 딛고 자주독립을 누리는 보람찬 시절을 맞을 때 조선도 민주국가가 될 것을 확신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분량은 약 300페이지 가량 됩니다.”

-책을 쓰게 된 솔직한 동기는 무엇입니까.
“동기야 여럿 있지요. 첫째 1890년 이후 10년 가까이 조선왕조와 조선을 둘러싼 암울한 주변 정세, 둘째 애국심이 무엇이며 왜 중요한지를 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국민계몽을 통한 애국정신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좀더 설명해보지요.”

슬프다! 나라가 없으면 집이 어디 있으며, 집이 없으면 나와 부모, 처자, 형제 자매, 그리고 후속들이 어디서 살며 어디로 가겠는가. 그러므로 나라의 백성이라면 신분이 높든 낮든 안녕과 복지가 순전히 나라에 달려 있다. 비유를 하자면, 바다를 항해하는 배를 탄 것과 같다. 바람이 잔잔하고 물결이 고요할 때는 돛 달고 노 젓는 일은 사공들에게 맡기고 모든 선객들은 마음 놓고 쉬거나 한가하게 구경이나 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거센 풍랑으로 배에 탄 사람들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위기에 처했을 때는 배에 탄 사람들이 모두 나서서 사공을 돕는다. 선객 모두가 각자의 이해관계를 떠나 합심하여 사공을 도와 배가 난파되지 않도록 할 것이다. 배가 침몰되면 배에 탄 사람은 모두가 위험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배에 값비싼 물건들이 실려 있다면 그것이 누구의 것이든 상관하지 않고 바다에 던져 배가 가라앉지 않게 할 것이다. 배가 가라앉으면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고 죽으면 재물도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자기자신을 위하는 길이다.

“한마디로 정신차려 살자는 내용이지요. 책 전반에 걸쳐 나라는 국민 각자가 만드는 것이라는 중심적 주제와 독립정신을 관통하는 정신으로 일생을 추구한 중심사상을 담았지요. 필기구가 없는 감방에서 책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엄비의 힘이 컸습니다.”

-국민 각자의 책임정신을 강조하는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우리 동포들이 신분이 높든 낮든, 관리든 백성이든, 부자든 가난한 자든, 양반이든 천민이든, 그리고 남녀노소할 것 없이 2천만 민족의 한 사람으로서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데 대해 각자가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중에는 고관의 자리에 앉아 권력을 휘두르며 나라를 팔아먹은 죄악이 백일하에 드러난 사람도 있습니다. 또는 그러한 반역자들의 손발이 되어 나라의 기틀을 허무는 일에 가담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명망이 높은 고관 중에는 정세변화에 따라 재빨리 변신하여 재물을 끌어모으기에 급급한 자들도 많습니다. 말단이라도 벼슬이라면 영광으로 여기는 자 중에는 사악한 고관들의 손발 노릇을 했음에도 자기들은 아무런 권한이 없어 나라가 기우는데 책임 없다고 발뺌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나라의 법을 어긴 자들은 물론이고 일반 백성도 이와 같은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서울에 살던 지방에 살던, 나라가 기울어가는 것을 막지 못한 책임을 면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1902년 크리스마스때 기독교 귀의

▲ 이승만 가족. 오늘쪽에서 두 번째 양복 입은 이가 이승만이고 왼쪽에서 두 번째 앉아 있는 이가 이승만의 부친이다.

-그 책을 쓸 때 본인의 책임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했습니까.
“이 나라 2천만 백성의 한 사람인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으므로 다른 사람들만 비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나 자신도 잘못이 많음을 알고 부끄럽고 두려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독립정신’에 기록한 것은 모두가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든 상관하지 말고 먼저 자기 책임을 다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됐습니다.”

-독립정신에는 유교이념을 비판하고 그 대안으로 새로운 종교인 기독교(개신교)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저는 비록 감옥에 있었지만 마음의 해방이 찾아왔습니다. 1902년 크리스마스때 기독교에 귀의했지요. 기독교는 한국인들이 문명을 개화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서양문명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우선 그 근본 토대를 이루고 있는 기독교부터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감옥에서 열성적으로 죄수들을 전도시켰습니다. 40여명의 죄수와 옥리까지 개종시켰죠. 그렇게 감옥에서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됐고 국민을 기반으로 한 통치철학과 인생철학이 형성된 곳도 감옥입니다. 제 자신을 위한 일을 하기보다 하느님의 진정한 뜻을 위해 매진하겠다는 사명감을 갖게 됐습니다. 감방에서 나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지만 앞으로 어떤 일, 무슨 일을 해야 할지를 알게 됐습니다.”

-감옥에서 책을 읽고 쓰는 것 외에 서예를 했다고 하던데요.
“그렇습니다. 책을 읽고 붓글씨를 쓰는 시간이 가장 많았습니다. 붓글씨는 재미있기도 하지만 긴장을 푸는데 딱 좋아요. 붓글씨는 훌륭한 학자로 만들기 위한 부모님의 영향으로 시작했습니다. 간수들의 호의로 붓과 잉크를 사용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서예를 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손가락이 굳을 정도로 자주 했지요. 죄수들 중 한시 동호인을 찾아 같이 한시집인 ‘체역집’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때 쓴 시 한 수만 들려주시면 안되겠습니까.
“가만 있어보자. 감옥생활 한 지 얼마 안됐을 때 쓴 것인데 생각나네요.”

밤마다 긴 긴 사연 닭이 울도록/이 해도 거의로다 집이 그리워/사람은 벌레처럼 구먹에 살고/세월은 시냇물처럼 따라가누나/어버이께 설술을 올려보고파/솜옷을 부쳐주 아내 보고파/ 정치의 급무는 외교에 있고/일일랑 능한 분께 물어보소/그릇된 옛법은 선뜻 고치고/신식도 좋으면 받아들이소(인보길의 ‘이승만 다시보기’에서)

-감옥에서 여러 동지들을 만나지는 않았습니까.
“많이 만났지요. 신흥우를 비롯해 의정부 전 총무국장 이상재, 전 승지 이원긍, 농상공부 전 회계국장 유성준, 전 참사관 홍재기, 전 경무관 김정식, 강화진위대 장교 유동근, 이상재의 아들 이승인 등이 투옥되었습니다. 신흥우는 1901년 덕어학교 재학 중 박영효를 영입해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가 투옥되고 유길준 쿠데타 사건으로 알려진 국체개혁 음모 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들 중 유길준의 동생인 유성준만 2년반 선고를 받았고 나머지는 일찍 석방됐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1880년대 온건 개화파에 속하다 1900년대에는 기독교로 개종한 양반 기독교도라고 할 수 있지요. 정신적으로는 독립협회 중심으로 한 개화파이며 지역적으로는 기호지방, 계층적으로는 고급 관리 출신이었습니다. 관리와 양반사회에서 처음으로 기독교 신자가 된 사람들이었죠. 기독교계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됐고 특히 1910~1930년대 국내에서 나를 핵심적으로 지지하는 인물로 활동했습니다. 감옥에서 정순만과 박용만을 만나 이승만까지 합쳐 ‘3만 결의형제’를 맺었고 1913년 하와이로 뒤이어 망명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다음과 같은 자료를 참고 인용했다.>
신화에 가린 인물 이승만(2002, 로버트 올리버 지음, 건국대 출판부), 이승만과 그의 시대(2011, 이주영 지음, 기파랑), 우담 이승만 연구(2005, 정병준 지음, 역사비평사), 독립정신(2010, 이승만 지음, 동서문화사). 이승만과 대한민국임시정부(2009, 유영익 외 지음, 연세대학교 출판부), 김자동 회고록(2018, 푸른역사), 이승만 다시보기(2011. 인보길 엮음, 기파랑), 독부 이승만 평전(2012. 김삼웅 지음, 책보세). 임시정부 시기의 대한민국(2015, 김희곤 지음, 지식산업사)

▲ 김문 작가 – 내 직업은 독립운동이오

[김문 작가]
전 서울신문  문화부장, 편집국 부국장
현) 제주일보 논설위원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