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스테이시 패슨 감독)는 미국 영화지만 유럽‘스럽고’, 적지 않은 예산을 들였지만 독립영화‘스럽다’. 숲속의 블랙우드 가문의 성에는 메리(타이사 파미가)와 콘스탄스(알렉산드라 다드다리오) 자매가 하반신이 마비된 삼촌 줄리안을 돌보며 산다.

6년 전 의문의 독극물 사건으로 부모를 잃었다. 줄리안은 음식을 조금만 먹었기에, 메리는 아버지로부터 금식의 벌을 받았기에 생존할 수 있었다. 당시 콘스탄스가 요리를 했기에 용의자로 지목됐지만 무죄로 풀려났다. 마을 사람들은 자매를 마녀라 부르며 두려워하고, 공격하며, 추방하려 한다.

콘스탄스가 광장공포증 탓에 외출을 못하기에 18살의 메리가 매주 화요일 마을로 나와 생필품을 구매해간다. 하지만 동네 아이들은 그녀를 놀리거나 저주를 퍼붓고, 대다수의 사람도 슬금슬금 피한다. 메리는 이런 불안으로부터 언니를 지키기 위해 아버지의 유품과 은화를 땅에 묻고 주술을 건다.

메리는 매우 주눅 들고 겁먹은 듯하다. 콘스탄스는 마냥 밝아 보이지만 어딘지 가식이 엿보인다. 줄리안은 사건 당시의 신문 기사를 스크랩해놓고 자신이 직접 그 내용을 쓰고는 매번 콘스탄스에게 자문을 구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를 빼닮은 사촌 찰스(세바스찬 스탠)가 나타나 균형을 깨는데.

▲ 영화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 스틸 이미지

고딕 미스터리 소설의 일인자라는 셜리 잭슨의 동명 유작이 원작이고 비주얼은 고독과 절망을 담는 화가 에드워드 호퍼를 참조했다. 후반부의 성은 다분히 호퍼의 ‘두 개의 불빛으로 비추는 등대’를 연상케 한다. 아일랜드 더블린 로케이션은 마치 중세 혹은 연대 미상의 공간인 듯 착시현상을 준다.

미스터리와 서스펜스에 있어서만큼은 단연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데서 재미가 보장된다. 영토 내 각종 독초의 종류와 그 기능을 줄줄이 꿰고 있고, 내내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며, 주술에 집착하는 메리와 마냥 착하고 순진해 보이지만 뭔가 숨기는 것 같은 콘스탄스 자매의 우애조차 의심스럽다.

‘그날의 진실’을 아는 듯하면서도 애매모호하며 ‘사건 일지’가 운명인 듯한 줄리안. 사촌동생을 도우러 왔다는 찰스는 그들에 비해 정상적인 듯하면서도 속내를 파악하기 쉽지 않다. 블랙우드 가문에 적대적인 다수와 달리 자매에게 친절을 베풀려는 부모의 소수의 친구들까지 모두 미스터리하다.

성은 블랙우드의 재력과 권력의 상징이다. 가문은 대대로 권위적이었고, 가부장적이었다. 그래서 자식들을 엄격하게 키웠다. 자매는 경제적으로 남부러울 게 없었지만 자유는 박탈당했다. 유럽 귀족주의의 권위주의에 대한 조소가 짙게 깔려있다. 자매의 대인공포증, 광장공포증, 폐쇄성이 그 환유.

▲ 영화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 스틸 이미지

철저하게 니체의 ‘권력에의 의지’와 군인 숭배 사상을 해체한다. 헤라클레이토스의 로고스보다는 플라톤의 이데아 쪽이다. 스피노자의 자유고, 존 로크의 관용이다. 더불어 자본주의에 대한 조롱 혹은 환멸이기도 하다. 시민들은 “블랙우드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됐다”며 자본주의를 비난한다.

심한 빈부격차로 인한 박탈감도 참기 힘든데 블랙우드가 주민들에게 우월주의적 배타적이고 폐쇄적이니 분노가 커진 것. 성은 마치 신성불가침 지역인 듯하다. 주민들의 행동은 민중 봉기다. 봉건제나 귀족정의 붕괴를 향한 혁명. “세상은 나쁜 사람들로 가득하다”는 자매는 그 틈새의 피해자다.

그래서 그들이 꿈꾸는 건 달이다. 메리는 정원 한구석에 ‘달의 정원’을 만들어놓고 있다. 심란하거나 괴로울 땐 여기서 잔다. 또한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언니에게 “내가 달에 데려갈게”라며 희망을 준다. 메리의 방 창밖으로 보이는 달이 보름달이었다 찰스의 등장 후 크게 기운 건 의미심장하다.

“주문이 반대로 되고 있다”는 메리의 독백 역시 세상의 큰 변화를 뜻한다. 세상은 주의주의대로 흘러가기 힘드니 차라리 이성적 주지주의가 낫다는 것. 자매는 선의와 악의가 헷갈리고, 줄리안과 함께 냉소주의자가 됐다. 찰스는 어설픈 이탈리아 경험과 언어로 피렌체의 대성당 두오모를 언급한다.

▲ 영화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 스틸 이미지

귀족주의의 폐쇄성에 길들여져 있던 콘스탄스는 그런 그에게 “아빠가 좋은 것들은 다 미국에 있다고 해서 해외여행의 필요성을 못 느꼈다”고 응한다. 찰스는 자본주의에 기생하는 이기주의다. 황금만능 사상이 필연적으로 만연시킨 개인주의, 이탈리아 자본주의 권력의 대표 메디치 가문의 의인화다.

그는 아버지의 교육대로 은행을 불신해 집안 금고에 돈을 보관하는 콘스탄스에게 “은행을 이용하라”고 충고한다. 후반부로 갈수록 내용은 더욱 그로테스크해진다. 찰스를 줄리안은 형으로, 자매는 아빠로 각각 부른다. 찰스는 “메리는 고아원에서 죽었다”고 횡설수설하며 혼란을 더욱 부채질한다.

메리 캐서린 블랙우드가 풀 네임인 메리를 사람들은 메리캣이라 부르고 그녀는 유독 검은 고양이와 친밀하다. 그 상징성은? 주민들은 폭동을 일으키지만 얼마 후 사과하고 친절을 베풀며 화해를 청한다. 콘스탄스는 이제 루바브 파이를 만들어준다. 루바브는 열을 내려주지만 독성도 함께 가졌다.

사람들의 배려 없는 관심은 때론 그 대상에게 큰 피해를 끼칠 수도 있다. 그 시선 탓에 상처받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그건 고립을 낳게 한다. 미뉴에트부터 ‘Daddy's home’ 등 올드 팝까지 음악도 훌륭하다. 두 여배우의 걸출한 연기력에 몰입도는 최고다. 화려한 미장센은 보너스. 7월 11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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