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사일런스>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애나벨’(2014)로 제임스 완 사단의 총아로 부상한 존 R. 레오네티 감독의 새 영화 ‘사일런스’는 지적인 스릴러이자, 고급스러운 호러다. 미국 북동부에서 동굴 탐사대가 오랜 고립으로 돌연변이로 진화한 베스프들을 본의 아니게 세상에 내놓고 그들이 서쪽으로 이동하며 피해가 확산된다.

뉴저지 주. 9살에 사고로 청력을 잃은 여고생 앨리(키에넌 시프카)는 부모 휴(스탠리 투치)와 켈리(미란다 오토), 남동생 주드, 외할머니, 그리고 애완견 오티스와 함께 단란한 생활을 하고 있다. 어느 날 한밤중 이상한 분위기에 가족이 잠에서 깨고, TV 뉴스를 통해 재앙이 찾아온 걸 알게 된다.

하늘을 뒤덮은 베스프는 박쥐의 습성에 작은 익룡의 형태를 한 육식 변종으로 오랜 암흑 생활에 시력을 잃고 오로지 청력으로 먹이활동을 하는 포악한 포식자다. 정부는 집안에서 머물라고 권유하지만 사람들은 안전한 곳을 찾아 피난을 가고, 앨리 가족도 휴의 친구 글렌과 함께 차로 이동한다.

그런데 앞서 달리던 글렌의 차가 베스프를 피해 날뛰는 사슴 떼 때문에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중상을 입은 글렌은 설상가상으로 차 안에 다리가 끼인다. 휴가 도움을 청하러 가려고 자동차 시동을 켜는데 돌연 오티스가 심하게 짖는다. 청력을 잃고 다른 감각이 발달한 앨리가 시동을 끄라고 한다.

▲ 영화 <사일런스> 스틸 이미지

베스프가 몰려와 차 유리창이 깨질 위기에서 글렌이 총성을 울리고 베스프는 전부 그에게 향한다. 그 틈을 타 휴 가족은 차에서 내려 도보로 이동한다. 숲에서 잠시 쉬던 중 주드가 망원경으로 근거리의 별장을 발견하고 가족은 그리로 이동한다. 문을 열고 나온 중년 여인은 매우 배타적이다.

그녀는 떠나가라며 총을 쏘고 이 때문에 베스프가 그녀에게 달려든다. 가족이 하수구를 통해 집에 들어가던 중 켈리가 베스프의 공격에 다리를 다친다. 간호사 출신 외할머니가 이대로 두면 상태가 심각해진다고 하자 휴는 항생제를 구하기 위해 앨리와 함께 조심스레 다운타운을 향해 가는데.

그저 내용과 비주얼대로 충분히 호러 장르를 만끽할 수 있으면서도 의외로 깊고 다양한 메시지도 얻을 수 있다. 키워드를 좁히면 번식, 진화, 소음, 소문, 종교 등으로 압축할 수 있다. ‘The sound of silence’에서 사이먼&가펑클은 케네디 암살의 의혹을 은유해 부정적 의미에서 침묵을 노래했다.

하지만 여기서의 침묵은 긍정적이다. 앨리가 “만약 내가 선천적으로 안 들렸다면 부모는 덜 괴로웠을 것”이라고 독백하는 배경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얘기가 있다”는 말도 소음의 폐해를 환유적으로 표현한 것. 세상은 과하게 시끄럽다. 저마다 제 잘났다고 외치고 장삿속의 선전을 떠든다.​

▲ 영화 <사일런스> 스틸 이미지

종교적 색채를 띤 한 무리가 나타나 휴에게 ‘우리를 따르세요. 함께해요’라는 글을 보여준 건 광신도들의 소음에 가까운 포교활동을 비꼬는 시퀀스다. 그들이 스스로 혀를 자른 건 그 소란스러움의 반어법이다. 제목은 침묵이지만 내용은 다분히 행복을 방해하는 종교에 대한 비판적 색채가 짙다.

그 종교를 특정하진 않았지만 당연히 광적인 사이비 종교일 터. 또 공인됐지만 그걸 핑계로 새 신도를 억지로 끌어들이려 평안을 깨고, 공공질서를 어지럽히는 광신도를 뜻하기도 한다. 유일신일지 다신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단지 종교의 자유는 보장되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강요하는 건 금기다.

베스프는 인간의 욕심이 자연법을 거슬러 이교를 만들고, 봉인된 금기를 깼다는 ‘판도라의 상자’의 우의다. 인트로에서 빠르게 지나가는 각종 동물들의 자료 화면은 인류는 물론 지구상 모든 종들의 진화, 변화, 생존, 유전, 약육강식 등을 의미하고 그건 인류, 베스프 등 모든 종의 존재의 의의다.

그걸 한 축으로 모으면 진화가 된다. 앨리가 청력을 잃은 뒤 다른 감관이 살아나 남다른 감각을 갖게 되는 적응력이다. 베스프는 파충류(익룡)거나 포유류(박쥐)의 한 분지(分枝)일 것이다. 아주 오랜 세월 지하 깊은 곳에 고립돼있었기에 시력이 불필요해 퇴화됐지만 대신 청력이 급상승한 것이다.

▲ 영화 <사일런스> 스틸 이미지

또 먹이활동이 척박한 공간에서의 생존을 위해 식탐이 강한 매우 공격적인 성향이 된 것. 베스프는 박쥐처럼 강추위에서 생존이 불가능하다고 설정돼있다. 그러나 인간은 북극과 남극에서도 생존이 가능하다. 종의 보존을 위한 다른 동물의 진화능력에 비해 뒤지지만 지혜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제목은 진화론과 더불어 공기를 뜻한다. 소리는 공기를 매개로 전달된다. 즉 생물적 존재자에겐 공기가 필요한 만큼 청력도 생존에 필요하지만 그게 과하면 재앙이 된다는 과유불급의 교훈을 던진다. 감독은 무신론자이거나 최소한 이신론자인 듯 종교를 빌미로 성범죄를 일삼는 밀교를 경고한다.

홀연히 등장하는 비교 집단은 인류의 생존인 종족보존을 그럴듯한 논리로 내세워 야비한 욕심을 채우려 한다. 감독은 사회에 만연한 아전인수식 논리에 대해 도덕률을 설파하려는 것이다. 베스프의 습격으로 멸종의 위기에 처하자 시민들이 공공기물을 파괴하는 폭도로 변한다는 외면하고픈 진실!

결국 가장 무서운 존재는 인간이라는 이 시퀀스는 등골이 서늘해진다. 베스프는 극장을 벗어나면 객체계의 존재가 되고, 그 현상계에서의 가장 공포가 되는 존재는 사람! 인종차별적인 뉘앙스가 풍기는 지하철 시퀀스는 옥에 티다. 라이징 스타 시프카는 새 ‘에이리언’ 시리즈를 예고한다. 17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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