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거 하우어, ‘블레이드 러너’ 명장면 남기고 떠나다 [유진모 칼럼]

유진모 칼럼니스트l승인2019.07.30l수정2019.08.06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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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블레이드 러너>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이슈&피플] 할리우드 스타 룻거 하우어가 지난 25일(현지 시각) 75살의 나이로 떠났다. 많은 영화에 출연했지만 다수는 ‘배트맨 비긴즈’(2005)의 브루스 웨인을 배척하던 얼 이사가 연상되고, 미셸 파이퍼와 중세의 아름다운 사랑 얘기를 펼친 ‘레이디 호크’(국내 개봉 1988년)가 인상에 남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존재감은 뭐니 뭐니 해도 ‘블레이드 러너’(국내 개봉 1993년, 리들리 스콧 감독)의 반란 리플리컨트(복제인간)의 리더 로이일 것이다. 1982년 미국에서 개봉돼 혹평 속에 흥행에 참패했지만 2017년 속편 ‘블레이드 러너 2049’(드니 빌뇌브 감독)가 제작될 정도로 가치가 재평가됐다.

2019년 LA. 핵전쟁으로 환경이 파괴된 도시는 햇빛 보기가 어렵고 시시때때로 산성비가 내린다. 오염 탓에 농산물 및 가축 생산량이 급감했지만 인구는 증가함에 따라 전체주의 정권은 다른 행성으로의 이주를 결정하고 대기업 타이렐에 새 거주지 개발에 투입할 리플리컨트 제작을 의뢰한다.

그런데 임무를 수행하던 5‘개’가 로이를 리더로 옹립하고 반란을 일으켜 지구에 침투한다. 리플리컨트의 생존기간이 4년인 걸 알고 그걸 연장해줄 장본인인 타이렐 회장을 만나기 위해 반동적으로 바뀐 것. 정부는 은퇴한 리플리컨트 사냥꾼(블레이드 러너) 데커드에게 그들의 처리를 명령한다.

▲ 영화 <블레이드 러너> 스틸 이미지

관객들이 가장 잊지 못하는 장면은 클라이맥스의 데커드와 로이의 마지막 혈전이다. 건물 꼭대기에서 아슬아슬한 생존의 혈투를 벌이는데 피지컬이 뛰어난 로이가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 로이는 데커드를 죽이려던 순간 돌변해 자신을 죽인다. 이때의 하우어의 허무적 표정은 긴 여운을 남긴다.

이 작품이 철학의 정수로 재평가를 받은 이유는 철학의 오랜 숙제인 존재론을 기저로 관념론과 유물론, 합리론과 경험론, 주관적 관념론과 객관적 관념론의 경계(Blade)를 달리는 존재자(Runner)를 묻기 때문이다. 데커드도 리플리컨트지만 그걸 몰랐던 데 반해 로이는 알고 있다는 데서 선각자다.

로이는 잔인하고, 연인 프리스는 광적이지만 그건 인류에 비해 핸디캡투성이이기 때문에 발생한 방어기제의 하나일 따름이다. 프리스를 잃고 고통과 외로움과 죄책감에 휩싸인 하우어의 표정은 내내 여성 관객들의 뇌리에 남아있을 것이다. 그만큼 하우어의 존재와 외양은 남성적이며 염세적이다.

많은 사상가들이 ‘인간은 탐욕의 동물’이라 했다. 각종 범죄와 인본주의 사상을 보면 맞는 듯하다. 하지만 깨어있는 식자들은 인본주의보단 자연주의 편에 선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 아니라 세계를 구성하는 모나드의 하나일 뿐, 최고의 모나드는 오직 신밖에 없다는 단자론(라이프니츠)으로 기운다.

▲ 영화 <블레이드 러너> 드로잉

라이프니츠가 맞든 틀리든 인간의 탐욕과 무지가 많은 종의 멸절을 초래했고, 수많은 환경보호자들과 자연과학자들이 생태계 보존을 외치는 걸 보면 인본주의는 위험하다. 자연은 모든 생명에게 공통 수여된 것이고, 인간은 그 유닛일 뿐이며, 그래서 모든 종은 보존될 가치가 있다고 그들은 외친다.

작품은 리플리컨트가 과연 생명이냐, 도구냐의 존재론적 인식론을 묻는다. 또한 과연 사람은 창조주의 영역에 도전해도 되는가의 목적론도 논제로 삼는다. 리플리컨트는 탄생과 생존기간만 다를 뿐 인간에 거의 근접해있다. 창조론대로라면 피조물의 생명을 신은 약 80년, 인간은 4년으로 정했다.

사람은 아무리 건강해도 150년을 살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신이 인간의 생명을 그렇게 짧게 정한 걸 원망할 수도 있다. 리플리컨트도 그렇다. 유신론이 맞는다면 신은 무한한 생명으로 공간과 시간을 초월한다. 리플리컨트 입장에서 볼 때 자신들이 못하는 걸 인간은 자유롭게 하고 더욱 오래 산다.

인본주의는 독아론에 가깝다. 어쩌면 교의(도그마)도 그렇다. 로이가 자기들의 생명을 연장시켜주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하자 타이렐 박사는 허망한 표정으로 “그럴 수 없다”고 한다. 감독은 교묘하게 니체와 손을 잡고서 창조론에 도전장을 던진다. “왜 그랬어요? 당신은 있기나 한 건가요?”라고.

▲ 영화 <블레이드 러너> 스틸 이미지

마치 로이가 타이렐의 답에 절망해 울부짖듯 분노하듯이. 다수는 타이렐의 결론을 보고 인간은 신의 영역에 도전해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읽을 것이다. 조금 더 생각한다면 창조론에 대한 도발도 느낄 것이다. 신의 뜻에 의해서만 모나드가 창조되고 소멸된다는 라이프니츠에 대한 반발이 부각된다.

하이데거에 대입하면 리플리컨트는 본래적 존재를 복사해 ‘세계-내-존재’에 피투시킨 현존재, 즉 사람이다. 데커드가 자기 정체성을 모른 채 리플리컨트 레이첼과 사랑에 빠졌을 때도, 그 후 알았을 때도 유물론적으로 그는 분명히 인간이었고 인간이다. 생명을 연장하려던 로이도 당연히 인간이다.

관념론적으로 ‘복제’인간은 인간이 아니지만 로이와 그의 영향을 받은 데커드가 실존적 ‘인정투쟁’에 나서는 건 마르크스적 유물론(계급투쟁)이다. 데커드를 비롯한 리플리컨트의 기억은 공권력에 의해 조작됐다. 사회를 계급화하고 국민을 획일화하려는 전체주의 정부에 대항한 혁명의 용틀임이다.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 리플리컨트는 임신과 출산을 한다. 만약 호르몬 조작으로 복제인간의 생식능력이 제거됐다면 반대의 방식으로 재생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해리슨 포드 이상으로 임팩트가 강했던 룻거 하우어의 인생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철학은 ‘에이리언’ 시리즈가 진행 중이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유진모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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