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유전>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최근 개봉된 ‘미드소마’(아리 에스터 감독)는 흥행 성적과는 상관없이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미 ‘유전’으로 에스터의 값어치를 알아본 관객들은 충분히 예상했을 법하지만 그 외의 관객에겐 거의 패닉의 입구였을 것이다. ‘유전’과 ‘미드소마’는 전혀 다른 환경과 설정이지만 맥락은 같다.

'유전’은 미국 교외의 한 중산층 가정이 배경이다. 디오라마 작가 애니는 의사 스티브와 결혼해 고교생 아들 피터, 13살 딸 찰리와 함께 친정엄마 엘렌을 모시고 살다 그녀의 죽음을 맞는다. 어느 날 밤 피터가 파티에 간다고 하자 찰리에게 따라가라고 강요하고, 피터는 내키지 않지만 데리고 간다.

견과류 알레르기가 있는 찰리는 땅콩이 들어간 케이크를 먹은 뒤 호흡곤란을 일으키고, 피터는 다급하게 운전을 한다. 목이 답답해 창밖으로 고개를 내민 찰리는 그만 전봇대에 부딪쳐 사망한다. 엘렌의 무덤이 훼손되고, 애니와 피터는 팽팽하게 갈등하는 가운데, 노년의 조안이 애니에게 접근한다.

영화는 잔잔하게 시작되지만 어이없는 찰리의 사망 이후부터는 굉장히 그로테스크하고 미스터리하게 확장된 후 ‘미드소마’ 같은 비극의 카타르시스로 매조진다. 대사 하나하나, 매 컷마다 의도와 의미가 담겨있어 잠시도 한눈을 팔 수 없다. 장례식장의 “더 슬퍼해야 하나”라는 애니의 말이 그 시작.

▲ 영화 <미드소바> 스틸 이미지

엘렌은 루시퍼의 가장 충실한 악마 파이몬을 숭배하는 비교 집단의 사제였다. 그들의 목적은 여성스럽지만 남성인 파이몬이 들어갈 적당한 남성 베슬(현세의 육체)을 제물로 바치는 것이었다. 애니는 아버지가 우울증으로 식사를 거부해 아사했고, 오빠는 16살에 자살했다고 가족사를 고백한다.

파이몬은 여성의 몸에 들어갈 수도 있지만 남성을 선호한다. 그러나 베슬의 의지가 강하면 들어갈 수 없다. 엘렌은 아들의 몸에 파이몬을 모시려 했고, 이를 알아챈 남편은 스스로 죽음을 택했으며, 의지가 강한 아들은 자살함으로써 파이몬의 현현을 막았다. 그러자 엘렌의 시선은 애니로 옮겨졌다.

애니는 엘렌의 주술에 세뇌됐지만 몽유병이 발현될 때는 제정신이 돌아온다. 그녀가 피터를 임신했을 때 유산시키려 했던 것도, 몽유병에 걸린 채 피터와 찰리를 불태우려 했던 것도 파이몬을 막기 위해서였다. 피터가 찰리를 죽인 건 우연이 아니라 엘렌의 사주를 받은 애니의 철저한 계획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피터의 의지를 약화시켜 파이몬을 영접하려는 의도. 즉, 이미 파이몬의 기운은 찰리에게 어느 정도 들어와 있었던 것. 조안은 파이몬교의 충실한 신자였다. 애니가 완벽하게 엘렌의 명령을 수행하지 않을 것을 우려해 그녀를 인도할 길라잡이 역할을 하기 위해 강령술을 가르친다.

▲ 영화 <유전> 스틸 이미지

‘미드소마’는 교환학생의 초대로 스웨덴 헬싱글란드의 자치구 호르가 마을에 초대된 미국 대학생 대니와 크리스티안 커플이 미드소마(하지축제)에 참석해 겪는 끔찍하고 기이한 주술적 제의의 경험을 신비주의적으로 풀어낸다. 호르간은 공산주의자처럼 모두 한 가족이 돼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다.

그들은 오르페우스교와 디오니소스교를 적절히 융합한 토속신앙을 가졌다. 환각제를 상용하고, 나무에 조상신을 모시는 물활론을 지녔다.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인 신비주의 철학자 피타고라스를 따라 숫자에 강박증적 신념을 갖고 있다. 기하학과는 아무 관계없이 18의 배수를 인생철학에 대입했다.

피타고라스와 불교의 윤회 및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영혼불멸론을 신앙으로 살기에 죽음은 고통도 공포도 아니다. 18살이면 봄이고, 72살이면 겨울(끝)이기 때문에 새 생명을 위해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그걸 당연하고 영광스럽게 여긴다. 따라서 검소하게 살며 성교는 오직 종족보존의 주술 의식이다.

즉 욕심부릴 필요 없이 함께 노동하고 같이 나눠먹으며 성관계는 종의 보존을 위해서만 하되 그걸 부끄럽거나 색욕적이거나 부정하게 여기지 않는다. ‘유전’이 사교나 밀교 같은 악마 숭배 사상이라면 ‘미드소마’는 오래전부터 전승된 민족 토테미즘이다. 다른 듯하지만 시대착오라는 게 공통적이다.

▲ 영화 <미드소바> 스틸 이미지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에스터 감독은 여러 종교에 대한 관심이 엄청난 것 같다. ‘유전’의 엘렌은 애니에게 남긴 유서에 ‘우리의 희생은 보상받을 것’이라고 썼다. 그 ‘보상’은 뭘까? 기독교의 목적은 속죄, 사랑, 희생 등을 통한 구세와 하느님 나라에서의 영생인데 파이몬교도 영생은 맞는 듯하다.

죽은 자들이 모두 살아나 파이몬을 숭배하는 마지막 시퀀스가 그것을 증명한다. 그건 ‘미드소마’의 호르간 신앙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에피큐로스 학파와 퓌론의 회의주의자들의 신앙을 합친 아파테이아(무념무상무욕)를 추구하고 우주 생명 주기설을 믿은 스토아학파의 영향을 받은 게 확실하다.

스토아학파는 우주가 일정한 주기로 소멸하고 새로 생성되며 생기를 유지한다고 주장했다. 호르간의 72살 주기론이 매우 유사하다. 스토아학파는 인류는 공동체라는 의식으로 범신론과 유물론을 믿었으며 최고의 선은 덕이라고 주장했다. 금욕만 조금 다를 뿐 그 외 대부분의 의식이 호르간과 같다.

두 작품 모두 엄청난 공포와 비극으로 끝남에도 불구하고 주인공들은 마치 차안을 떠나 피안에 오른 신선 같은 해탈한 표정을 짓는다. 에스터는 ‘샤이닝’의 스탠리 큐브릭을 잇는 ‘어스’의 조던 필과 호러의 양대 산맥으로 설 듯하다. ‘유전’의 말미에 흐르는 곡 ‘Both side now’는 모순의 이원론을 뜻한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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