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봉오동 전투>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영화 ‘봉오동 전투’(원신연 감독)는 일본과 일촉즉발의 첨예한 긴장관계가 형성된 때 절묘하게 등장한다. 애국심을 이용해 돈을 벌자는 상술이든, 그 애국심 고취가 상투적이든 의외로 큰 스케일을 자랑하고, 그만큼 풍성한 재미를 담고 있으며, 웅변하는 지점이 확실한 또 다른 ‘태극기 휘날리며’다.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화한 1910년. 두만강 중국 접경지의 청년 해철은 어린 동생과 함께 주린 배를 채우려 일본군의 월경을 돕지만 그들의 폭탄에 동생을 잃는다. 1919년 3·1운동 이후 독립운동이 전국에 확산되고 해철(유해진)은 특히 그 움직임이 활발한 만주 봉오동 일대에서 무장항쟁을 펼친다.

어머니를 여의고 유일한 혈육 누나와 떨어져 해철의 훈련소에 입소, 독립군이 돼 분대장으로 성장한 장하(류준열)는 3·1운동 때 체포된 누나와 재회하는 게 소원이다. 그는 대장 홍범도의 명령으로 일본군을 유인하는 중차대한 임무를 띠고 봉오동 인근에서 해철의 마적 출신 독립군 무리에 합류한다.

대도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해철은 장하를 친동생 이상으로 아끼고, 장하만큼 명사수인 무리의 병구(조우진)를 크게 신뢰한다. 독립군의 기세가 점점 높아지자 일제는 야스카와를 대장으로 한 악명 높은 월강추격대에 아라요시 중위가 이끄는 남양수비대를 합류시킨 뒤 대대적인 토벌작전을 지시한다.

▲ 영화 <봉오동 전투> 스틸 이미지

해철의 임무는 독립운동자금 모집책 이진성을 무사히 남쪽으로 이동시키는 것이다. 해철 하나 보고 독립군이 된 병구는 하루빨리 임무를 마친 뒤 등 따뜻하고 배부른 마적 생활로 돌아가고 싶었다. 일본군 소년 유키오에 어린 개똥과 춘희까지 보호해야 하는 이들은 각기 다른 의견으로 갈등하는데.

역사적 실재를 근거로 한다. 아무리 그래도 ‘1920년대에 정규군도 아닌 독립군이 일본 제국주의의 최정예 군대에 맞서 벌인 전투가 얼마나 재미있는 영화로 탄생했을까’라는 우려나 의심이 살짝 들겠지만 기우다. 외려 액션만 놓고 본다면 ‘태극기 휘날리며’보다 웅장하고, 화려하며, 하드고어적이다.

1920년 6월, 역사에 기록된 이 독립군의 첫 승리는 부지런히 뛰고 또 뛰는 해철, 장하, 병구 등의 활약과 희생정신이 튼튼한 버팀목이 되고, 부녀자와 노인까지 팔을 걷어붙이고 합류한 독립군의 절실한 독립에의 열망과 처절한 생존에의 의지가 기둥이 되며, 지형에 지혜를 더한 전략이 완성한다.

자주독립에의 의지를 향한 매우 간단명료한 메시지가 워낙 강하고 확연해 크게 두드러지는 별다른 메시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다만 해철의 동생의 폭사 때 그곳에 서있던 나무에 불이 붙는 건 향후 해철로 객관화된 독립군 개개인이 불사른 독립을 향한 간구와 활약과 희생정신의 상징성이다.

▲ 영화 <봉오동 전투> 스틸 이미지

또한 최후의 격전지에서의 전투 때 특정인의 한쪽 다리가 절단되는 건 그런 애국심과 희생으로 이뤄낸 해방에도 불구하고 이념 다툼으로 한 민족이 둘로 갈라진 비극을 환유한다. 해철이 일본 군대에 던지는 수류탄엔 ‘속이다’란 뜻의 일본어가 적혀있다. 비열한 일본의 조선 강점에 대한 조롱.

‘그때 실제 그런 스피디한 접전이 가능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주인공들은 쉴 새 없이 ‘러닝맨’이 돼 필사적으로 뛰고 또 뛴다. ‘돌무덤’과 ‘죽음의 골짜기’는 직설법으로 영화의 하이라이트와 재미의 클라이맥스가 된다. 일제의 만행은 마을에서 연 날리던 소년을 사살하는 시퀀스가 웅변한다.

죽음의 골짜기 근처에서 몰살되기 일보 직전의 병구가 “그만 좀 쏴, 이놈들아”라고 절규하는 시퀀스 역시 그런 맥락이다. “일본군 수는 알아도 독립군 수는 몰라. 어제의 농사꾼이 오늘 독립군이 되니까”라는 대사는 최근 소녀상에 만행을 저지른, 역사를 모르거나 왜곡한 이들에게 섬뜩한 메시지다.

시종일관 장엄하고, 엄숙하며, 비통하지만 손에 땀이 흐르는 액션의 스릴과 더불어 해철과 병구의 쏠쏠한 유머가 재미있고 아라요시가 엄청난 신스틸러 역할을 수행해낸다. 해철과 장하가 진지하고 엄숙한 구도라면 해철과 병구는 티격태격, 아옹다옹하는 긴장 완화의 구조로써 유머를 뿜어낸다.

▲ 영화 <봉오동 전투> 스틸 이미지

아라요시는 과하다는 느낌이 들 만큼 악랄하고 비열한 캐릭터가 극대화됐는데 끝까지 웃음을 책임지며 주인공들 못지않은 강한 임팩트로 여운을 준다. 그 역할을 해낸 박지환은 향후 위상이 확 달라질 듯하다. 개똥과 춘희가 유키오와 서로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과 그 맺음은 참 주제일 수도 있다.

류준열의 차가운 캐릭터야 자주 봐왔지만 모처럼 오열하는 유해진의 시퀀스는 희소가치와 더불어 그 뛰어난 표현력으로 큰 감동을 준다. 하지만 복선은 사실 그의 캐릭터가 이중적이라는 것. 칼은 잘 다루지만 총 솜씨는 개똥만도 못하다. 그가 마지막으로 일본군을 유인하는 대사가 “야마 도니?”다.

일본군에 붙잡힌 포로의 진짜 임무는 훌륭한 반전이고, 그와 더불어 홍범도를 맡은 배우의 우정출연은 꽤 즐거움을 줄 듯하다. 독립군대엔 팔도 사람들이 다 모이다 보니 각 사투리 탓에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다는 설정이 기발하다. 유해진의 ‘말모이’가 연상되는데 특히 제주도 사투리가 재미있다.

매복한 독립군의 총신 위에, 그리고 가까스로 도망친 아라요시의 눈앞에 각각 나비 한 마리가 난다. 해철은 일본 장교에게 역지사지를 설파한다. 나비는 꿈과 현실, 차안과 피안을 묻는 상징이자 회의주의적 염세론이다. 실제 봉오동 전투에 참전한 태극기 신은 비장한 숭고미를 보인다. 8월 7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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