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엑시트>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재난 탈출 영화 ‘엑시트’(이상근 감독)가 개봉 이틀 만에 92만여 관객을 동원하며 텐트 폴 시즌 최강자로 우뚝 섰다. 외형상 훨씬 웅장해 보이는 ‘사자’와 할리우드의 ‘라이언 킹’을 거뜬하게 제친 내용이 돋보인다. 다수 매체는 흥행의 비결을 ‘극한직업’과 유사한 설정과 그 입소문으로 분석한다.

두 영화는 코미디라는 장르는 같지만 플롯과 서사는 재난극과 수사극이란 구분이 명확하다. 그런데 디테일에 있어서 ‘엑시트’는 어렵게 구한 일자리를 지키려는 생존의 몸부림을 ‘짠내’나게 그린 ‘극한직업’의 프리퀄 같은 연관성을 띤다. 자리를 지키려는 자와 ‘취준생’의 현실을 벗어나려는 자!

졸업 후 수년째 ‘취준생’인 용남은 도심의 연회장에서 엄마의 칠순잔치를 연다. 대학 때 클라이밍 동아리 후배 의주를 짝사랑해 마음을 고백했지만 보기 좋게 딱지 맞은 적이 있는데 그곳 직원으로 취업한 그녀와 재회한다. 그렇게 다시 설렘을 찾는 순간 원인 모를 유독가스 유출사고가 벌어진다.

둘은 헬기의 무게 한도가 초과하자 다른 사람들을 모두 대피시킨 뒤 고립되지만 클라이밍 실력을 발휘해 안전지대로 옮겨간다. 이 자그마한 서사가 어떻게 그렇게 많은 관객을 순식간에 사로잡을 수 있었을까? ‘극한직업’의 주인공들이 정의감이 아니라 생존본능에 집중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 영화 <엑시트> 스틸 이미지

실적이 없어 마약반이 해체될 위기를 맞자 해당 형사들은 마지막 승부를 걸기 위해 치킨집을 인수하지만 의외로 문전성시를 이루자 본분을 망각하게 된다. 하지만 사실은 그게 그거다. 그들은 이 나라에서 마약을 퇴치하겠다는 사명감에서라기보다는 오로지 먹고살기 위해 불철주야 뛰는 것이다.

용남과 의주도 ‘눈썹이 휘날리도록’ 뛰고, 손바닥이 까지도록 건물을 오른다. 이는 편협적이고, 배타적이며, 잔인한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N포세대’ 젊은이들의 필살의 생존기의 메타포다. 가스 사고는 자본에 배신당한 한 지식인이 그 분노로 도시 한가운데서 벌인 테러가 야기한 재난이다.

기득권과 자본가는 젊은이의 패기를 인정하지도, 그들의 미래를 걱정하지도 않으며, 또한 장인의 기량이나 지식인의 지혜를 재화보다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환유다. 도시가 아비규환의 지옥도를 그릴 때 탐욕적인 청년들이 그걸 촬영해 방송사에 팔아 이익을 챙기고, 방송사는 더 큰 수익을 낸다.

방송사는 바로 현대의 거대 자본, 혹은 재벌의 상징성이다. ‘국가부도의 날’은 1997년의 외환위기 사태를 현사실적으로 그려 375만여 관객의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당시 주가와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자 자본가들은 그것들을 대거 매입함으로써 훗날 경기가 회복됐을 때 엄청난 이익을 거둬들였다.

▲ 영화 <엑시트> 스틸 이미지

그때 그들의 건배 테제가 ‘지금 이대로’였다고 한다. ‘엑시트’의 방송사 간부의 표정이 바로 그렇다. 대형 인재사고가 발생하건 말건 그걸 이용해 수익을 올릴 수만 있다면 ‘지금 이대로’인 게 현대 자본주의의 진면목이라고 웅변하는 것. 살벌하지만 피부로 겪는 체감온도이기에 관객들은 열광한다.

용남은 친척들을 만나는 게 매우 불편하다. 대학을 졸업한 서른 넘은 나이라면 으레 받는 질문이 불친절하다 못해 가학적인 ‘어디 다니니?’ ‘결혼은 했니?’의 획일화이기 때문이다. 의주와 재회하자 대기업 간부라고 거짓말을 한 것은 자기 뜻대로가 아니라 남의 시선대로 사는 게 격률인 세상의 풍자!

의주라고 별다를 게 있을까? 단지 용남보다 한 걸음 먼저 나아갔을 뿐. 용남이 간신히 취업이 되더라도 반드시 겪게 될 과정에 앞서 진입했을 따름. 그녀는 점장에게 ‘갑질’은 물론 성추행까지 당한다. 매달 통장에 찍히는 급여의 숫자가 그녀를 옭아매고 있는 것. 취업은 됐지만 유지가 험난한 직장인!

그런 면에서 세상은 숫자로 이뤄졌다는 피타고라스의 ‘숫자 구성주의’는 맞았다. 용남이 의주에게 대형 빌딩을 가리키며 “생존하면 꼭 저런 데 다닐 것”이라고 큰소리치는 건 니체의 ‘권력에의 의지’다. 군주정, 귀족정, 자본주의를 이끄는 건 권력이고 현대의 권력이 돈이라는 건 ‘버닝썬’이 입증했다.

▲ 영화 <엑시트> 스틸 이미지

코미디지만 내적 메시지는 서글프다. 다수 지식인이 철학 그 자체로 추앙하는 플라톤은 영혼과 육체의 이원론을 주창했지만 자본주의는 플라톤은 물론 그를 호모 플라토니쿠스라고 비웃은 저 숭고한 디오게네스의 견유주의마저도 코웃음치고 있다. 일부 관객은 이런 내면까진 못 볼 수도 있다.

다만 용남과 의주의 ‘웃픈’ 현실에 격하게 공감하며 마치 자신이 주인공이 된 듯한 ‘아바타 경험’으로써 이 눈물겨운 코미디를 즐기며 잠시나마 한숨이 나오는 걸 잊을 것이다. 연회장 건물 옥상에서 구조신호를 외치는 ‘따따따’ 합창부터 오너의 아들인 점장의 만행에서 B급 예술의 정서를 읽는 것.

그뿐이랴! 용남과 의주의 탈출기는 마치 전략게임의 레벨 깨기나 무협지의 도장 깨기를 연상하게 만들며 스릴과 카타르시스를 주는 재미다. 용남 누나 정현 역의 김지영, 점장 역의 김기영, 용남 부모 역의 박인환과 고두심의 적절한 역할 분담과 의외로 큰 비중을 차지한 존재감도 흥행의 조력이다.

감독은 장편 데뷔지만 류승완 감독의 ‘다찌마와 리-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연출부 출신답게 주변 활용의 실사구시적 방법론의 시퀀스로 청룽(성룡) 식의 재미를 잇는다. 그는 관객들이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일부 시퀀스에 의미를 더한 쿠키로 마지막까지 청의 흥행 방정식을 구사한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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