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나랏말싸미>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영화 ‘나랏말싸미’가 역사 왜곡 문제로 연일 뭇매를 맞고 있다. 세종대왕을 폄훼하려 했는지의 속내는 오롯이 조철현 감독의 몫이지만 영화가 감독 혼자 만드는 게 아니라는 점에선 조 감독 외 나머지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와 자본, 그리고 한글의 우수성으로 완성한 서사는 묻혀선 곤란할 듯하다.

물론 훈민정음 해례본과 언해본의 착각 혹은 미필적 고의, 정설로 굳어진 세종의 역할의 희석, 의심의 여지가 많은 신미의 과대평가 등에 대해선 논의와 해명은 필요할 듯하다. 그럼에도 영화가 그리는 세종의 백성을 아끼는 천인합일과 조화 사상만큼은 사극에서 보기 드물게 프로메테우스적이다.

그리스 신화의 티탄족 프로메테우스(먼저 생각하는 이)는 제우스에 대항한 종족과 달리 동생 에피메테우스(뒤에 생각하는 이)와 함께 제우스 편을 들었다. 제우스가 형제에게 생명 창조를 명령하고 동생이 아무 생각 없이 잽싸게 각종 능력을 부여한 생명들을 만들자 인간을 창조한 형은 허탈해진다.

이에 형은 무리하게 제우스가 숨긴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달해 문명을 가르쳐준다. 분노한 제우스는 판도라를 만들어 그 형제에게 보낸다. 에피메테우스는 형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결혼함으로써 ‘판도라의 상자’ 사건을 야기해 인류에게 수많은 불행을 안긴다. 제우스의 징벌은 멈추지 않는다.

▲ 영화 <나랏말싸미> 스틸 이미지

프로메테우스를 코카서스의 바위에 쇠사슬로 묶어 낮에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지만 밤엔 회복되는 영원한 고통이 반복되는 벌을 준다. 오랜 시간 뒤 헤라클레스가 나타나 독수리를 사살하자 아들의 용맹을 기특하게 여긴 아버지 제우스는 비로소 프로메테우스의 모든 죄를 용서해 사면령을 내린다.

제우스는 절대군주제의 왕을 의미한다. 그리스 신화엔 근친상간이 다반사인데 제우스의 아내 헤라도 친누나다. 이는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재산과 왕권을 지키기 위해 근친결혼을 해온 풍습을 뜻한다. 제우스가 헤라의 질투에도 불구하고 숱한 여인들에게서 2세를 얻는 것도 왕의 사생활을 반영했다.

그런데 ‘나랏말싸미’에서의 세종은 제우스가 아니라 프로메테우스적이다. 명나라를 섬기는 사대부는 백성들이 쉽게 배우고 쓸 한글 창제에 결사반대한다. 문자와 지식은 곧 그들의 권력을 유지해주는 결정적 도구이기에 그걸 천민과 공유한다는 건 곧 자신들의 지위와 재산의 박탈이란 걸 알기 때문.

즉 한글은 불이다. 행복을 주는 지식과 지혜다. 반상의 구분이 엄연하고, 조선은 이 씨 소유며, 그걸 뒤에서 조종하는 자가 소수의 사대부란 인식이 지배했던 시대에 세종은 자신의 기득권을 누리기보다는 사대부들의 권력을 백성들에게 나눠줌으로써 사람이 사람대접을 받는 나라를 만들려 한 것.

▲ 사진 출처=픽사베이(록펠러 광장의 프로메테우스 동상)

이 평등의식의 민주주의적 발상이 조선시대 3대 민중운동이라는 홍경래의 난(1811, 순조), 임술민란(철종, 1862) 그리고 동학운동(고종, 1894)보다 훨씬 앞선 15세기에,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닌 왕에게서 우러났다는 게 무척 중요하다. 물론 그래서 세종 폄훼 의도의 진위 여부도 가려져야 하겠다.

영화는 세종이 신미를 만나는 데 소헌왕후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그린다. 뿐만 아니라 그녀가 내조를 잘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강조한다. 실제 소헌은 사후 선인제성(宣仁齊聖)이란 별칭을 얻을 만큼 인자하고 질서정연한 삶으로 세종을 잘 보필했다고 한다. 영화 속 그녀는 꽤 진취적이다.

조선은 새 유학사상인 성리학을 건국 철학으로 삼았다. 따라서 그들이 믿는 신은 공자였는데 소헌은 붓다를 섬겼다. 이는 세종의 정적들에게 결정적인 구실이 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역모죄 등 모든 난관을 이겨낸 그녀의 업적은 고 전미선의 정적이지만 불같은 연기력으로 재현된다.

‘신미의 활약을 줄이고, 소헌의 존재감을 더 확장하면서, 세종의 인간적 고뇌와 한글 창제의 공로에 조금 더 집중했다면’이라는 아쉬움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는 건 아닐까? 변변한 지도자 하나 만나는 게 하늘의 별 따기인 요즘 국민들에게 당시로선 파격적이었던 세종은 신적인 존재이니까.

▲ 영화 <프로메테우스> 스틸 이미지

리들리 스콧 감독의 ‘프로메테우스’는 인류의 기원을 찾는다. 오래전 외계인 엔지니어(티탄족) 한 명이 자신을 희생해 지구에 세포를 퍼뜨리고, 그 세포들이 진화해 각종 생명체가 탄생한다. 2085년 그 증거들이 발견되자 대기업 웨이랜드사 웨이랜드 회장은 인류의 기원을 찾을 탐사대를 꾸린다.

초반의 엔지니어는 프로메테우스(세종)이고, 후반에 인류를 멸절하려는 엔지니어는 제우스(사대부)로 대입할 수 있다. ‘에이리언’ 시리즈에서 안드로이드는 매우 중요한데 전반적으로 생명 창조, 혹은 변태에 대한 준엄한 경고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성 위에 군림하려는 사대부가 오버랩된다.​

‘에이리언: 커버넌트’에서 안드로이드 데이빗은 엔지니어들을 전멸시킨 ‘지렁이’를 에이리언으로 진화시키며 웨이랜드에 이어 창조주가 되려 한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스스로 국부(國父)라며 왕 노릇을 하려 했다. 그러니 조선시대라면 왕이 ‘짐은 곧 나라’라고 외쳐도 이상할 게 없었다.

역사와 한글 창제가 소재인 ‘나랏말싸미’는 그리스 신화가 근간인 ‘프로메테우스’와는 전혀 상관없는 영화지만 권력자가 군림 대신 백성을 널리 이롭게 하려 자신을 희생하거나 금기에 도전했다는 점에선 일맥상통한다. 역사 왜곡 논란은 세종이 단군의 홍익인간을 계승한 성인이기 때문이 아닐까?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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