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오동 전투’를 봐야 할 이유는? [유진모 칼럼]

유진모 칼럼니스트l승인2019.08.09l수정2019.08.09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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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봉오동 전투>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섬나라인 일본은 대륙이 절실했고, 소련은 아시아 쪽 부동항이 필요했다. 중국은 대대로 한반도가 제 속주라 여겼고,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의 패권을 거머쥔 미국은 아시아의 전초기지로 조선을 노린 데다 소련도 견제해야 했다. 그렇게 미국과 일본은 뒷거래를 했고 조선은 강제로 점령당했다.

유럽은 BC 4세기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세계 정복 이후 온갖 구실의 전쟁으로 이합집산을 겪는 동안 민족주의와 기독교의 교의를 발판 삼아 힘, 지혜, 이념을 정립한 뒤 침략의 화살을 아프리카, 중남미, 아시아 등 전방위로 쐈다. 조선도 그 영향권이었는데 끝 무렵의 조선은 썩을 대로 썩어있었다.

지도층은 기득권 지키기에 급급했고, 그래서 지식인들의 민주주의를 갈구하는 열망은 분쇄됐으며, 세종의 기대와 달리 한글은 460여 년 동안 민초들의 의식을 거시적으로 깨우치지 못한 상황이었다. 우리가 못났고, 나약했기에 주권을 빼앗겼다는 건 인정할 수 있지만 인식은 저항을 향해야 한다.

영화 ‘봉오동 전투’의 존재의 의의다. 벌써부터 역사 왜곡 운운하는 저급한 배타주의가 횡행하고 있는데 역사란 동영상으로 찍고, 사가가 눈으로 보면서 기록하지 않는 한 사실에 가까운 복원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봉오동 전투’는 교과서가 아니라 상업영화다. 역사에 근거한 픽션의 재미가 중하다.

▲ 영화 <봉오동 전투> 스틸 이미지

이 작품의 논지는 굴욕의 역사가 아닌 자주독립의 의지다. 고려 충선왕, 충숙왕, 충혜왕 등이 원나라에 의해 폐위와 복위를 반복한 데서 보듯 우리의 굴종은 가장 치욕적인 일제 강점기만이 아니었다. 역사는 미래의 근간이기 때문에 왜곡도 안 되고, 좋은 기억만 남기려거나, 미화해도 곤란하다.

그런 준거에 기준할 때 이 영화는 두 가지 확실한 기둥을 세운다. 첫째, 역사를 직시하자는 현실주의와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생존의 몸부림을 통한 희망적 낙관주의다. 둘째, 대한독립신문의 기사 하나에서 모티프를 얻어 완성도, 재미, 스타일 등에 공을 들인 상업영화적인 전략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수작 ‘덩케르크’는 전쟁영화의 클리셰인 승리의 카타르시스가 아닌, 패배에 가치를 부여하고 그걸 모든 동물의 본능인 생존과 더불어 인간이 가진 상호이타적 호혜주의를 넘어선 희생정신으로 승화한다. ‘봉오동 전투’도 전쟁의 참화 속에 핀 인류애와 의지의 주의주의를 부각한다.

기록은 후안산에서 독립군과 소규모 전투를 치른 일본군이 후퇴하는 독립군을 봉오동까지 추격하지만 주변의 산에 매복 중이던 독립군의 총공격에 3시간 정도 응사하다가 150여 명이 사살당하고 후퇴함으로써 1920년 6월 7일 상황이 종료됐다고 적었다. 수십 명의 사상자를 낸 독립군의 첫 승리다.

▲ 영화 <봉오동 전투> 스틸 이미지

각지에서 자립 결성된 각 독립군의 면모는 출신지도 계층도 다른 남녀노소지만 자립과 자유를 향한 인권의 의지라는 공통의 테제를 기치로 내걸었다. 그들은 정치적 이데올로기도, 경제적 탐욕도, 개별적 이기심도 없다. 아니 다 버렸다. 마적 출신 해철(유해진)과 병구(조우진)는 ‘대의명분’이다.

해철 때문에 총구를 재화 대신 일본의 제국주의로 돌린 병구는 이번 작전이 매우 못마땅하다. ‘이번 한 번만’이라는 약조에 의해 매번 작전에 투입되지만 자신의 목적의식과 다른 독립군 생활에 염증을 느끼게 된 것. 마적은 대체로 공격 대상보다 강한 위치지만 독립군은 일본군에 비해 불리한 편.

그는 작가들이 그리고자 한 독립군의 목적론을 가장 잘 설명하는 캐릭터다. 만약 독립군을 비롯한 숱한 애국자들의 의지로 무장한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됐을까? 운명론이나 기계론에 기초한 나약한 이교에 경도돼 자주정신을 포기하고 얄팍한 안위만 추구했다면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

모든 독립군, 독립운동가, 만세를 외친 민초들이 완벽한 거룩하고 숭고한 애국심으로 싸웠을까? 그중에는 복수심이 앞서는 장하(류준열)도, 관성화된 해철도, 부화뇌동한 병구도 있었을 것이다. 작가들이 외형상 해철과 장하를 주인공으로 세운 동시에 병구를 튀게 만든 건 사실성을 노린 전략이다.

▲ 영화 <봉오동 전투> 스틸 이미지

다소 황당한 일본 소년 병사 유키오란 포로에, 마을에서 생존한 그 또래의 춘희와 개똥을 넣어 외전적 시퀀스를 만든 것은 아직도 진심 어린 사과는커녕 생떼를 쓰는 일본을 향한 점잖은 훈계다. 싫지만 우리와 일본은 유사한 점도 있다. 양국의 보수우익의 거울 같은 일규주의는 소름 끼칠 정도다.

일본은 어긋난 민족주의의 아들 선민사상이 낳은 황민사상으로 보수 권력을 유지했다. 유키오도 그 정신무장으로 참전했지만 포로로서 독립군의 비장미와 숭고미를 깨닫고, 제국주의의 잔인함과 아집을 확인함으로써 인격을 형성한다. 일본이 부끄럽다는 그의 대사는 실제 우리가 듣고 싶은 말이다.

그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존재론적 객관주의를 깨달은 것이다. 그건 바로 자본주의가 자리 잡은 현대에서 제국주의가 발현된다면 영토전쟁이 아니라 경제전쟁이라는 서글프지만 냉철한 현실적 충고이기도 하다. 비주얼적으로는 전투의 작전만큼이나 지형지물을 활용한 그림부터 시원하고 경쾌하다.

20세기 초라고는 믿지 못할 만큼 속도감으로 질주하는 전투 시퀀스는 다소 과장된 연출이 용납될 만큼 상업적 재미를 선사한다. ‘항거: 유관순 이야기’(조민호 감독)는 상업 장치를 최대한 절제한 독립영화지만 115만여 명의 관객이 눈물을 흘렸다. 액션과 코미디를 부각한 ‘봉오동 전투’는 당위적이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유진모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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