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분노의 질주: 홉스&쇼>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분노의 질주: 홉스&쇼’(데이빗 레이치 감독)는 시리즈의 9번째다. 그만큼 강한 흡인력으로 관객을 끌어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시리즈의 양대 산맥 중 폴 워커는 사망했기에 당연히 브라이언은 없지만 간판인 도미닉(빈 디젤)마저 제외된 채 홉스(드웨인 존슨)와 쇼(제이슨 스타뎀)가 활약을 펼친다.

첨단 과학을 앞세운 신비주의 조직 아테온은 열등 개체를 솎아낼 프로젝트를 세우고 이를 위한 슈퍼 바이러스를 개발해낸다. MI6는 그 위험성을 알고 음모를 막기 위해 아테온 런던 지부를 습격한다. 하지만 아테온이 진화시킨 슈퍼 킬러 브릭스턴(이드리스 엘바)이 등장해 요원들을 전부 제거한다.

요원 중 유일하게 해티(바네사 커비)가 바이러스를 자기 몸에 주입한 뒤 브릭스턴으로부터 가까스로 도망치는 데 성공한다. 그러자 브릭스턴은 MI6측에 해티가 배신했다고 조작한다. 영국과 미국은 해티가 테러조직에 슈퍼 바이러스를 판매하려 한다며 바짝 긴장하고 아테온도 해티 검거에 집중한다.

해티를 잡기 위해 MI6는 DSS 출신 쇼를, CIA는 경찰 출신 홉스를 런던 본부로 각각 부른다. 그러나 서로 안 좋은 감정이 남아있는 이들은 죽일 듯이 으르렁대며 각자 행동하겠다고 갈라선다. 홉스는 자신의 정보망으로 해티를 검거해 본부로 압송하고 때마침 나타난 쇼가 자기 여동생이라며 감싸는데.

▲ 영화 <분노의 질주: 홉스&쇼> 스틸 이미지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트레이드마크를 넘어서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도미닉의 부재가 아쉬울 수도 있지만 격투와 힘자랑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홉스와 쇼가 힘을 합쳐도 쩔쩔매는 ‘블랙 슈퍼맨’ 브릭스턴의 압도적 존재감이 주는 재미는 있다. 홉스와 쇼의 유치한 말장난의 잔재미도 크다.

‘존 윅’, ‘데드풀 2’, ‘아토믹 블론드’를 연출한 레이치 감독은 믿을 만하다. 손에 식은땀이 흥건할 카 체이싱의 규모는 다소 작지만 헬기와의 결투는 그 아쉬움을 상쇄시키고도 남을 만하고 특히 아날로그 액션에 집중하는 레트로 스타일이 눈부시다. 언제나 그렇듯 주제는 할리우드의 전형 가족애다.

홉스는 9살 딸에게 고향 사모아나 가족 얘기를 단 한 마디도 한 적이 없다. 도둑이었던 아버지는 형 조나와 그마저도 도적단 무리에 합류시키려 했고, 그걸 막기 위해 경찰에 아버지를 넘기고 가족 곁을 떠나며 연락을 끊은 것. 조나는 그를 배신자라 여기고 있다. 쇼는 수감된 71살 엄마를 면회한다.

엄마는 여동생과 연락 좀 하라고 하지만 쇼는 그녀가 자신을 반기지 않을 것이라며 괴로워한다. 예전에 그는 브릭스턴과 동료이자 친구였지만 아테온에 가입하느냐, 마느냐로 갈라섰고, 브릭스턴은 쇼와 해티를 이간질했던 것. 이렇듯 우정과 배신, 사랑과 미움, 가족과 원수 등 이원론으로 전개된다.

▲ 영화 <분노의 질주: 홉스&쇼> 스틸 이미지

특히 기계주의와 인본주의가 전면 배치된다. 아테온과 브릭스턴은 인간은 나약한 존재고, 이대로 가면 멸종이 확고하므로 기계적 진화를 통해 우월한 개체들이 새로운 지구를 건설해야 한다는 교리를 신봉한다. 홉스와 쇼는 “우린 심장이 있기에 어떤 기계에도 안 진다”고 인간미의 승리를 확신한다.

초반에 홉스와 딸의 대화에서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거론되는 것도 그렇다. 실천주의자인 그는 개개인이 광활한 우주에서의 고독한 단독자임을 인정(허무주의)했지만 작품에서 “인간은 파괴될 수 있을망정 패배하진 않는다”라는 웅변으로 패배주의를 배격하고 불굴의 의지를 설파했다.

인트로에 양분화된 화면으로 홉스와 쇼의 유사하지만 내용은 상반된 일상이 전개되는 것도 이원론. 홉스는 투박함, 시골, 직설적 성격을, 쇼는 도회적 세련됨, 유행, 융통성을 상징한다. 원수처럼 다투는 가족이나 두 주인공의 말장난이 상당한 유머를 주는데 다른 영화나 주인공의 도입이 기발하다.

함께 일을 안 하겠다는 두 사람은 결국 구조주의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는데 그들은 서로 자신이 한 솔로고 배트맨이라며 상대방은 추바카고 로빈이라고 우겨댄다. 브릭스턴을 공격할 때 “크립토나이트를 먹여주마”라는 식이다. 스스로 블랙 슈퍼맨이라는 브릭스턴은 엑스맨이나 배트맨에 더 가깝다.

▲ 영화 <분노의 질주: 홉스&쇼> 스틸 이미지

그가 부르면 자동으로 달려오고, 자유자재로 곡예를 펼치는 모터사이클은 배트맨의 배트모빌 이상 진화됐다. 레티(미셸 로드리게즈)와 미아(조다나 브류스터)의 부재의 아쉬움은 해티라는 인상적인 캐릭터를 훌륭하게 소화해낸 바네사 커비의 액션과 눈부신 매력이 보완해주고도 남을 듯하다.

디젤과 워커에 대한 향수는 CIA 요원 로크(라이언 레이놀즈)의 데드풀이 무색할 수다와 쿠키가 던지는 다음 편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감이 어느 정도 달랠 듯하다. 주인공들의 이름이 (토마스) 홉스, (버나드) 쇼, (존) 로크 등 사상가들인 건 다분히 의도적이다. 홉스는 해티 앞에서 니체를 거론한다.

하지만 그 화려한 이름만큼의 철학은 그리 많지 않으니 골머리를 썩을 일은 없다. 니체의 ‘권력에의 의지’와 ‘영겁회귀’를 살짝 변형한 인간에의 의지와 고향회귀다. 아테온은 그들만의 권력과 신앙이 지배하는 세상을 꿈꾸지만 주인공들은 기계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루소를 원한다.

자연은 고향이고 가족이다. 사모아, 폴리네시안 전사와 신화를 내세운 건 살짝 ‘모아나’가 연상된다. 인트로와 아우트로에 ‘Time in a bottle’을 삽입한 건 워커에 대한 묵상일까? 1970년대 뮤지션 키스 문(더 후)과 믹 재거(롤링스톤즈)를 차용한 건 어린 시절의 추억에 대한 그리움이다. 14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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